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태주 Mar 05. 2021

나는 사랑한다, 그리운 것들을

그리움의 문장들


그리움은 공평하다. 누구나 그리움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다만, 쓰는 용도가 다르고 다루는 기술이 다를 뿐이다. 방치해 두고 아예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고루하고 구시대적이고 촌스럽다고 숨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움을 적절하게 투자해 행복을 창출하는 데 쓰는 사람도 있고, 그리움을 과다하게 복용해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리움 기술자로서 그리움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낸다. 가까이 하면 좀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하는 구석이 있다. 너무 멀리 하면 수분이 부족한 피부처럼 영혼을 푸석거리게 만든다. 지내기에 쾌적한 실내온도가 있듯이 그리움도 적정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리움에게 단호하게 말해 둔다. 내가 부르기 전엔 달려 나오지 마라, 특히 손님이 왔을 때 흥분하거나 먼저 나대지 마라. 여기서 ‘손님’이란 내가 무언가에 끌려 매혹된 감정, 혹은 찌르르 감전되는 첫 느낌, 호기심이 드는 첫인상처럼 심장의 전기반응을 일컫는 환유이다. 단속하지 않으면 그리움이 제멋대로 작동해 주인을 곤경에 빠트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나는 사랑보다 그리움을 더 좋아한다. 이렇게 발설하면 따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면 그리운 거고, 그리워해야 사랑인 건데 어떻게 둘이 따로따로 분리될 수 있느냐고. 언뜻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전문가적 소견으로 보면 엄밀하게 그건 틀렸다. 사랑이 끝나고 나니 비로소 그리움이 밀려드는 경우도 있고, 서로 그리워하다가 막상 사랑하고 보니 그리움이 증발되고 없더라는 슬픈 사례도 보고 되고 있다. 그리움과 사랑은 한 몸이아니라 이란성 쌍둥이 같은 것이다. 내가 사랑보다 그리움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사랑은 때로 못 견딜 만큼 괴롭지만 그리움은 보고 싶은 바다나 기다리는 첫눈이나 설레는 여행 같아서 참으면 참아진다. 또 참은 만큼 굉장한 기쁨이 있다. 


사랑은 배신하는 일이 있지만 그리움에게 배신당하는 사람은 없다. 사랑은 유지에 드는 체력도 시간도 비용도 필요하지만 그리움은 그런 게 필요 없다. 무엇보다 사랑은 나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어서 권리 주장이 어렵지만 그리움은 온전히 단독 소유다. 저당 잡혀도 눈치 볼 이유가 없다. 


사랑은 이타적일 때도 있지만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이다. 이 결핍, 이 욕망의 충족은 타자와의 호혜적인 관계성에 의존한다. 즉 인정욕구와 같아서 주체적으로 주관하고 해결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사회적이다. 그리움은 어떤가. 지극히 개별적이고 사적 영역 안에 있다. 타의에 좌우되지도 않는다. 내가 생산하고 내가 소비한다. 공급이 과다해 재고가 남아돌아도 상관없다. 제조일자는 있으나 유효기간은 없다. 부패해서 누군가의 배를 앓게 하거나, 너무 높이 적재해 무너져도 타인이 다칠 일이 없다. 사랑은 육감만으로도 들키 지만 그리움은 바코드를 찍고 신원조회를 해도 나오지 않는다. 국가가 내 마음을 압수수색해 디지털 포렌식하기 전에는 그 비밀한 내막이 드러나는 일도 없다. 


사랑에는 고난도의 기술과 각종 매뉴얼이 필요하지만, 그리움은 특별한 학습이나 기술 없이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수분크림 같아서 잘 사용하면 촉촉하고 탱탱하게 마음의 텐션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