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작가를 무대에 세우다
북콘서트는 마술쇼와 같다. 평면적인 책이 입체적인 공연으로 재탄생한다. 작가는 마술사가 되어 관객을 홀리고 책의 변신을 연출한다. 나는 북콘서트 기획자이기도 했고, 여러 차례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서기도 했다. 책을 출간하고 나면 책을 홍보를 하기 위한 여러 마케팅 수단들이 사용된다. 그중 홍보효과나 파급효과가 제법 큰 오프라인 활동이 북콘서트다. 신인 작가라면 아마도 북콘서트 무대에 서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 당신을 위해 북콘서트에 관해 궁금할 만한 것들을 11가지로 정리해 본다.
1. 북콘서트는 출판기념회와 어떻게 다른가
북콘서트가 관객과 교감이 필요한 마술쇼라면, 출판기념회는 단체 영화 관람과 같다. 출판기념회는 그야말로 저자를 위한 일방향의 축하 행사다. 북콘서트가 유행하기 전에는 출판기념회라는 형식이 일반적인 홍보 행사였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책을 출판하는 출판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아무나 책을 내기도 어려웠고, 또 책이라는 상품에 부여된 의미나 가치가 상당히 진중했다. 그래서 책을 내고 저자가 되면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고,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쉽지 않은 일을 해냈으므로 자랑할 만하고 기념할 만해서 모여서 축하해주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게 출판기념회다.
행사 프로그램도 출판사 사장이 나와서 발간 경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 유명인사나 지인들의 찬양성 축사로 채워진다. 독자들이 오는 게 아니라 하객들이 초대돼 와서 몇 권씩 책을 사들고 가거나 눈도장을 찍고 금일봉을 전하고 가는 행사였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 행사가 대목이다. 이날의 판매량이 저자의 영향력이나 가치를 입증하는 셈이 된다.
북콘서트의 핵심은 공연이다. 주인공은 저자이지만 축하의 목적이 아니라 독자와 만남과 소통을 전제로 하는 자리이다. 모여서 책 이야기만 하면 딱딱하니까 공연 형식을 빌려 재미를 추가한 것이다. 주최 측의 의도된 식순에 따라 연출되는 저자에 의한, 저자를 위한 출판기념회와는 개념이 확연히 다르다.
2. 북콘서트는 누가 주최자가 되는가?
북콘서트의 주최자는 출판사가 되기도 하고, 저자 자신이 되기도 하고, 공공도서관 같은 제 삼자가 되기도 한다. 누가 주최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내용이 달라지고, 규모나 형식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출판사가 나서서 북콘서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출판사 입장에서 썩 선호하지 않는다. 동네서점이나 공공도서관 같은 데서 작은 규모로 이루어진 독자와의 만남 행사들이 자주 열리기도 하고, 또 투여되는 예산 대비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모객은 결국 작가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작가가 영향력이 없다면 객석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영향도 있고, 행사에 투여되는 인적자원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 등에서 진행하는 북콘서트 프로그램이 있다. 이런 경우 상업적 행사가 아닌 도서관 회원을 상대로 한 독서 진흥 차원의 행사이므로 저자가 모객을 하고 홍보를 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 또 초청비도 받을 수 있으므로 여러모로 좋다.
3. 프로그램에 무엇이 들어가면 좋은가?
대개 음악 공연이 동반된다. 경험상 어떤 장르의 연주자가 와도 큰 차이는 없다. 어차피 독자들은 저자를 보려고 온 거니까. 무리한 비용을 들여 고급 연주자를 초청할 필요가 없다.
오프닝으로 음악 공연이 끝나면 저자의 짧은 강연과 독자와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반드시 책 낭독 시간을 넣어달라고 주최 측에 부탁한다. 독자들에게 무대에 나와서 자신이 좋았던 부분을 낭독해달라고 요청하는데 목소리들이 다 달라서 꽤 다채롭고 청중의 관심을 끈다. 대화체 문장이 있을 때 즉흥적으로 독자와 저자가 함께 읽는 것도 재미있는 이벤트 거리가 된다. 낭독자들은 주최 측에서 미리 정하고 연습해 오도록 하는 게 좋다. 긴장되는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낭독하면 실수를 연발하기도 하고 느낌을 살려 읽기가 힘들다. 낭독자들에게는 매우 신선하고 특별한 추억이 된다.
4. 장소는 어디가 좋은가
라이브 공연장, 아트홀, 도서관 강연장, 북카페, 음식점 등 장소는 다양하다. 라이브 공연장이나 아트홀은 생각보다 대관료 부담이 크다. 또한 객석 규모가 있어서 인원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무대가 화려하고 규모가 클수록 공연성이 강해지고 북토크는 약해진다. 어느 쪽에 중점을 둘 지 미리 콘셉트를 정해야 한다.
장소 선택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행사 시설에 따라 방음이 취약하거나 주차 여건이 열악하거나 오디오 시스템이 구비되지 않은 곳이 있을 수 있다. 마이크 소리나 음악 연주 볼륨이 높아 주위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도 있다. 다양한 음악가가 동원되는 경우, 악기마다 연결될 마이크 장치 및 오디오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곳이어야 한다. 조명 장치까지 염두한다면 그런 무대장치를 다룰 줄 아는 기술 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 연주 음악 장르를 선택하고, 장소를 섭외할 필요가 있다.
5. 무료가 좋은가, 유료가 좋은가?
장단점이 있다. 어느 게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료가 훨씬 집중력을 높이고, 모객 인원에 맞게 장소를 빌릴 수도 있다. 공공기관이나 출판사 주최가 아닌 경우, 즉 상업적인 장소에서 할 때는 유료가 알맞다. 무료인 경우는 불특정 다수라서 노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어느 정도가 올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유료라 하더라도 과하지 않은 금액이어야 한다. 카페나 음식점 같은 공간이라 하더라도 행사가 시작되면 개별적으로 음료나 음식물을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번거롭기도 하고 좌석에서 사소한 실수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6. 저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강연 주제는 책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 위주로 준비하면 좋다. 북콘서트는 강연회가 아니라서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고 독자들이 지루해한다.
주최 측에서 관객 이벤트용으로 책 선물을 준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과 별도로 저자 자신이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면 좋다. 낭독자나 사회자, 애쓴 관계자 몇몇 분들에게 따로 감사와 성의를 표시하면 좋다. 저자의 정성이 담긴 가벼운 선물을 무대에서 전달하는 것도 관객들과 호응하고 저자에게 집중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주로 행사 말미에 이루어지는 ‘독자와의 대화’ 시간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독자들이 원활하게 질문을 잘하는 경우도 있지만, 질문을 유도해도 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공백시간을 메꿀 이야깃거리를 한두 가지쯤 준비해두면 좋다.
7. 사인회를 잘하는 요령은 뭔가?
프로그램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사인회를 하게 된다. 대개 밤늦게 행사가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독자들을 오래 줄 세우지 않고 빨리 귀가시키려면 몇 가지 요령이 필요하다. 무대 행사가 끝나고 사인회를 여는 것만 하지 말고, 북콘서트 시작 전에 일찍 온 독자들에게 사인회 시간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즉 본 프로그램 앞뒤로 사인회 시간을 분산하라는 의미다.
사인회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이유는 사인받는 독자들이 사진 촬영을 원하기 때문이다. 또 사인할 때 사인받을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물어봐야 해서 시간이 지체된다. 이때 사인회 도우미가 배치돼 있으면 원활하게 진행하는데 도움이 된다. 도우미가 사진사 역할도 해주고, 줄을 선 독자들에게 미리 포스트잇을 한 장씩 나눠줘서 사인받을 이름을 적게 하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포스트잇의 효과는 다른 데도 있다. 독자 중에는 지인들이 많이 섞여 있는데 그들은 저자가 자신의 이름을 잘 알 거라고 믿고 이름을 말하지 않고 책을 내민다. 이때 그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거나, 성씨가 헷갈리는 경우에 매우 난감해진다. 물어보기도 뭣하고 안 물어보자니 잘못 사인할까 봐 염려된다. 포스트잇을 미리 나눠주면 이런 난감한 사태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
8. 행사장에서 책 판매를 해야 하나?
책 판매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할 수 없는 장소가 있다. 공공도서관이나 공공기관 등에서는 판매가 불가하다. 그러나 출판사가 주최를 하거나 카페 등 상업적인 장소에서 할 때는 판매를 할 수 있다.
판매가 가능하다면 출판사의 협조를 받아 현장 판매를 하는 게 좋다.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이 공연장 대관료 등에 보조될 수 있도록 하면 좋다. 행사에 오는 모든 독자가 책을 갖고 오지 않는다. 현장에서 구입하는 사람도 많으므로 준비하는 게 좋다. 다만 책을 판매하게 되면 판매를 전담할 인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 대부분 현금 구입보다는 카드 결제가 많기 때문에 카드 체크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만일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판매대에 ‘현금 구매만 가능’하다고 양해를 구하는 문구를 써 붙여둬야 한다. 또 10% 할인판매 문구를 붙여야 할지 고민될 수도 있다. 나는 정가를 표기해두기를 권한다. 그곳은 인터넷서점이 아니니 굳이 할인할 이유가 없고, 독자들이‘책은 제값 주고 사는 문화상품’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유도하는 게 저자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독자들이 저자의 사인을 받을 기회가 그리 흔하지는 않으므로 판매대에 “친구에게 친필 사인본을 선물하세요!”와 같은 문구를 써두면 좋다. 책을 가지고 왔더라도 지인들에게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9. 사회자가 꼭 있어야 하나?
사회자의 역할에 따라 북콘서트 형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책이 논쟁적이거나 깊이 있는 지식을 다루고 있는 저작물이라면 사회자와 저자가 인터뷰 형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는 방식도 있다. 이때 사회자는 저자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어야 하고, 책 내용에 대해서도 통달해야 한다. 물론 사전에 질문지를 작성해 저자와 공유해야 하지만, 행사장에서 사회자의 진행 솜씨에 따라 행사의 품격과 재미를 더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저자가 직접 사회자를 겸해서 하는 경우도 있고, 형식적으로 저자 소개와 행사 순서를 안내하는 정도로만 개입하는 사회자 역할도 있다. 될수록 격식을 배제하고 관객과의 친밀도를 높이고 싶다면, 사회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저자가 세부 내용을 진행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좋다.
10. 관객을 많이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프라인 행사는 모객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 장소를 대관하고 규모가 정해진 경우 모객이 안 돼 당일 썰렁한 상황이 되면 그것처럼 주최 측에 민망하고 미안한 일이 없다. 모객을 주최 측에만 맡기고 나 몰라라 하는 저자는 없겠지만, 저자가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고 연락을 취해서 모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친구나 친인척으로 객석을 채우지 않으려면 평소에 SNS 활동을 열심히 하고, 독자들과 간접적이나마 친근한 유대관계를 맺어놓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독자들은 책 내용보다는 저자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때문에 오프라인 행사에 오기도 한다. 독자들에게는 그가 쓴 글과 그의 인간성을 대조해보고 싶은 심리가 있다. 평소에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글들로 독자와 교감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자주 가지면 좋다. 글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괜찮은 인간이어야 하는 이유다.
11. 북콘서트를 꼭 해야 하나?
여건이 안 된다면 일부러 할 필요는 없다. 소규모의 북토크 행사나 작가와의 대화 같은 행사들을 통해 얼마든지 독자와 교감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 그렇지만 북콘서트 제의가 들어오면 사양하지 말고 하라고 권하고 싶다. 하고 나면 남는 게 많다.
첫째, 사진이 남는다. 그 사진들은 인스타그램이나 SNS에 퍼지고 책을 홍보하는 데에 다시 도움을 준다. 둘째, 고마운 사람들이 남는다. 행사를 준비해주고 멀리서 와준 독자들과 인연이 맺어진다. 눈빛을 맞추고 같은 공간에서 얘기를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훨씬 깊은 교감을 갖게 된다. 셋째, 책은 자신을 있게 만든 책의 주인을 무대에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책은 저자의 삶을 격동시키고 끊임없이 외부와 연결하게 만든다. 북콘서트 같은 유쾌하고 특별한 경험은 저자로 하여금 다시 새로운 책을 쓰게 할 담대한 용기와 자부심을 선사한다. 북콘서트는 작가에게 책을 쓴 이유를, 더 좋은 글을 써야 할 이유를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