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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May 07. 2020

그 해 봄, 당신

우정과 연애감정, 그 사이

 


당신의 첫인상은, 술 잘 마시는 부산 사나이.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했다.



성장 배경에 공통점이 있어서 잘 맞을 것 같다며 친구가 소개해 준 당신을 만난 그 첫자리, 그 땐 정말 이렇게 호감을 갖게 될 줄도, 너의 안부와 일상을 궁금해 할 줄도, 내 통화 목록이 너에 대한 발신으로 채워질 줄도 정말 몰랐으니까. 홀로 떠난 짧은 홍콩 여행의 끝자락, 그렇게 너라는 사람을 알아갔다. 서로 매일 주고받던 인스타 스토리와 메신저들 사이에서 서로 잘 알지 못하니까, 서로의 사소한 것들을 궁금해했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그렇게 넌 어느새 내 친한 랜선 친구가 되어있었다.



서로 야근에 찌들어 있던 금요일 저녁, 술 마실 사람이 없다는 너의 한마디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술친구가 되어겠다던 내 말은 어쩜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그리곤 만취로 집에 돌아가던 택시안에서 네가 걸어온 느닷없는 전화 한통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일 수도 있었겠다. 내가 너한테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게. 나 있잖아, 통화 내용 하나도 기억안난다? 너의 고민 들어주면서 공감하면서, 너의 목소리 자장가 삼아 누워있었어. 다음날 아침에 찍힌 긴 통화시간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감정의 온도를 종 잡을 수 없는 메세지 보다는 높낮이가 있는 목소리를 더 좋아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가득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걸 좋아한다는 것.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걸 잊고있던 내게 네가 오랜만에 깨닫게 해준거였어.




하지만 아쉽게도, 그 다음주 당신이 내게 전한 건, 곧 떠날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아쉬웠다. 이제 시작된 관심이었는데, 이제 너라는 사람을 조금 알 것 같은데 이렇게 떠나 보내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맞이한 주말 여느때와 다름없던 술자리에서 내가 요즘 자주 연락하는 남자가 있다는 소식에 너를 궁금해 했던  내 지인들은 널 부르라며 난리 부르스를 치던 그 일요일. 어짜피 곧 떠날 사람인데, 불러서 재밌게 놀자는 마음으로 널 불렀어. 솔직히 그 자리에 널 부르는게 큰 결정이었어. 니가 오면, 관심이 호감으로 발전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정말 친한 친구가 될 것 같았거든, 니가 곧 떠나버릴 것도 있었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그냥 널 불렀지. 생각보다 짖굳었던 내 지인들 사이에서도 잘 어울려주는 니 모습이 괜찮아 보였어. 비록 그렇게 네가 만취할 줄은 예상 못했고, 오빠들 다 있는데서 계속 나한테 뽀뽀해 댈 줄도 몰랐고, 취한 너 먼저 집에 보내고 집가겠다며 나온 취한 우리가 함께 집에 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던 일이지만.




다음날이 월요일이었다는 사실을 둘 다 살면서 그렇게 까지 후회해본건 처음이었지? 날은 밝았고 출근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둘 다 만취고, 왜 같이 있는건지도 멘붕이고. 그래도 꾸역꾸역 출근하려던 날 붙잡은건 너였다. 함께 병가 쓰자고. 그 때라도 내가 병가를 쓰지 않고 출근 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소주잔 편히 기울이는 친구사이였을까? 그렇게 병가를 내고 너의 팔베게를 베고 누워있는데 묘한 기시감이 들었어. 안지 한달된 너랑 있는데, 아늑했고 편했어. 하도 메세지를 주고받아서 그런가. 남녀관계는 설렘이라지만, 오래 알아온 남자친구처럼 편했어. 난 왜 널 우리집에 데려왔으며, 넌 나 혼자 사는 집도 아닌데 왜 따라왔는가, 너는 술취해서 기억이 안난다는 이유로 계속 답해왔지만 답은 서로가 알고있겠지. 해가 느릿느릿 넘어가고 나서야 저녁을 먹고 넌 집에 갔지만 난 그날을 아직도 후회한다고 하면, 넌 뭐라고 할까. 우리가 그날 선을 넘진 않았지만 그 때 널 데려오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마음 아플 일은 없었을 것 같아. 잘 못낀 단추는 다시 푸를 수 없다는 거. 그냥 니가 날 쉽게 봤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3년만에 내 방에 온 남자는 네가 처음이었어. 솔직히 우리 그냥 해프닝으로 끝내버릴 수 있는 사이였는데, 그래도 계속 되었던 우리의 통화에 나는 그렇게 너에 대한 호감을 키워갔었던 것 같아.




곧 떠날 너에게 생긴 나의 호감이 안타까웠어. 맘껏 좋아하고 싶어도 도대체 어느정도의 마음을 줘야 내가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널 좋아할수 있는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네가 너희 집가서 한잔 더 하자고 했을 때 선 뜻 따라 나섰던 거야. 그냥 선을 넘고, 끝내는게 더 깔끔하게 느껴졌달까. 그냥 선을 넘으면, 너도 다른 남자들 처럼 흥미를 잃을까 싶기도 했고, 그러면 아프긴 하겠지만 내 마음정리는 더 빠를테니까. 근데 니 품은 또 따뜻했고, 편안했고, 할 것없는 나른한 일요일 오전과 오후를 그냥 서로 누워있으면서 보내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함께 밥을 먹고, 드라마를 보고, 낮잠을 자는 이런 일상적인 데이트가 난 참 많이 그리웠었나봐. 그 때 부터였어 내 확실한 호감은. 너와 함께했던 일요일이 좋았어. 정말 별것 없는 일요일이었지만. 그래서 내심 너의 연락을 기다리면서도, 니 연락이 오면 좋으면서도, 슬펐어. 이 나라에 있을만큼 있으면서, 내가 떠나보낸 사람만 한 트럭이라 어느 순간 부턴가 마음을 주는게 너무 어려웠거든. 한 명 한 명 떠날 때마다 가슴에 구멍은 커져만 가고, 내 일상에도 구멍이 생기는 누군가를 잃는 일. 하지만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을 돌아보니, 내 마음이 다 너한테 가 있었더라. 그래봤자 매일 술먹고 후회하는 우리의 일상이었지만, 소소한 일상을 나눌수 있는 네가 있어서 좋았고 어느새 익숙해진 불쑥 찾아오기 시작한 너와의 긴긴 통화들이 좋았어.




물론 새벽에 만취로 날 찾아왔던 너의 만행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다. 이건 너의 흑역사야. 새벽에 맘취로 스타를 하겠다며 우리집에 찾아왔던 당신. 와서는 야식해달라고 조르고, 나에게 팔 한짝 내준 채로 코골며 잘도 자더라. 네가 날 처음 울린 날이었다. 이게 연애도, 엔조이도 아니고 뭐 하는건가 싶더라.그래서 그 때 처음 이제 호감을 접을 때가, 내 마음을 접을 때가 되었나보다 고민했었어. 물론 너의 느닷없는 전화와 드라마 이야기로 또 다짐은 말짱 도루묵이 되버리고 말았지만. 널 더 알아갈 시간도,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없다는 걸 아는데, 매일 야근이라는 너를 붙잡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넌 절대 뭘 먼저 하자고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난 매일 애를 태우고.



여느 주말, 방 에어컨이 고장나서 호텔을 잡을 수밖에 없어서, 널 초대해서 같이 영화가 보고싶었어. 하지만 회식가서 만취한 넌 술 마시느라 바빴고, 내가 다음날 같이 방에서 영화보자는 그 말도 기억도 못했을꺼야.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연락한다던 넌, 또 신나게 놀러나가 하루종일 연락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막 상처가 늘어갔는데, 넌 나한테 상처준 줄도 모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알면서 그런걸까.




그래서 널 그렇게 불러낸 일요일, 너한테 저녁을 먹자고 했던거야. 그날 너한테 그냥 다 얘기하고 싶었어. 나의 호감을, 너 좋아하는 마음을. 용기가 안나서 소주 몇 병은 마시고 시작해야하는 이야기였지만. 넌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 였을 수도 있지만. 너의 상황이 이해는 가지만, 씁쓸했어, 호감을 가지기 까지의 과정도 난 참 어려웠는데 서로 호감이 있어도 연애 감정으로는 발전시킬 수 없는 상황이. 그래도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너의 말에 내가 오늘까지 왔던 거 같아. 그냥 나를 그렇게 까지 좋아하지 않는 너의 변명이었을 수도 있고, 너의 완곡한 거절이었을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말해줘서 좋다는 너의 그말에 내가 택시안에서 더 솔직해 질 수 있었던 것 같아. 더 같이 있고 싶다고. 그날이 우리가 본 마지막 날이었다. 어쩌면 그날 조금 더 널 잡은게 잘한 일이었나, 이렇게 두 달 못볼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영영 볼 일이 없는 사이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렇게 긴 락다운 생활은 시작되고. 더이상 연락이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너에겐 계속 연락이 왔지. 호감이 있어도 연애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연락을 이어간다는것 자체가 참 이상한데 우리가 처한 상황이 특수했기 때문일꺼야. 하루종일 재택 근무에, 더군다나 넌 혼자 사는 상황이니까. 근데 아이러니 하게 참 이때부터 난 그냥 너와 더 친해진 느낌이 들었어. 혼자니까, 연락이 늘어가고, 더 사소한 뉴스랑 일상을 공유하고. 굿모닝으로 시작해서 굿나잇으로 끝나는 나날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틈 없이 계속되는 연락이었다. 이렇게 너가 내 일상을 침범하게 두질 말껄. 널 도와줄 요량으로 시작했던 영어 첨삭도 나름 재미있었고. 주고받는 시덥지 않은 농담들도 좋았고. 소소하게 함께보는 드라마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았고. 밥은 먹었냐며 일상을 챙기는 다독임이 좋았어. 일찍 자는 네가 다음날 아침에 내 메시지를 그냥 읽고 씹어버리는게 아니라 굿모닝 하고 하루를 열어주는게 제일 좋았어. 그래서 4월은 참 단짠단짠으로 기억된다.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널 맘껏 좋아하고 있었고, 전화 하고싶을 때 너에게 전활 걸어 맘 껏 통화했고, 한 달 슬기로운 락다운 생활이 가능했던 건 네 덕분인 것 같아서 참 고마워. 매일 끊임 없이 오는 나의 메세지들이 귀찮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오고가는 연락속에서도 난 참 불안했다? 아 이 연락이 뚝 끊어지는 날에 난 또 아프겠구나. 울겠구나 하면서. 서로를 마땅히 뭐라고 정의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건, 어느 한쪽에서 손을 놓아버리면 지속되지 않는 관계인만큼, 그만큼 끝내기도 쉽다는걸 너무나도 잘 아니까.




그렇게 4월의 끝무렵, 너희 회사해서 했던 제안 이야기에 난 가슴이 다 덜컹했다. 아 너를 다시 못볼수도 있겠구나. 진짜 떠날 사람이었던 네가, 진짜 떠나는 날이 조금 더 빨리 올 수도 있겠구나. 마음 한구석에서 넌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거랑, 실제로 그게 일어나는 건 정말 큰 차이라는 걸 깨닫고, 난 또 마음정리에 들어갔지. 근 한달간 행복했던 기억에 그냥 또 잠시 잊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래서 그렇게 연락을 멈췄다. 근데 내 연락이 멈추니까, 너도 날 궁금해 하지 않더라.



넌 그냥 아예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내 일상을 궁금해 해주지 않더라 더 이상. 딱 일주일만에 다시 너에게 연락했을 때 넌 천연덕스럽게 그간의 일상을 전하더라. 그때부터였어 그냥 너가 두려고 하는 거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한게. 더 이상 먼저 연락오는 일은 없었고, 난 끊임없이 너에게 메세지를 했지. 내가 했던 다짐이 있었거든, 이렇게 된 이상 내 마음에 대한 예의는 다 하자라는 거. 그래서 계속 상처 받으면서도 너에게 연락을 계속 해왔어. 근데 점점 내 카톡에 답장도 하지 않는 널 보면서, 더 이상 내 일상을 궁금해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늦게라도 답을 되돌려줬던 내가 좋아했던 니 모습이 더이상 보이지 않는 걸 깨닫고, 이제는 진짜 그만 할때가 된건가 라는 생각을 해. 약 두 달만에, 널 좋아하는게 조금 힘통화하고 싶다는 말에 전화해주는 니 모습이 좋다가도, 그냥 나만 너한테 애타하고, 나만 너를 아직도 궁금해 하는 모습에 아 이게 짝사랑인거구나, 내가 너와 하고 싶었던게 어느새 호감을 넘어선 연애였구나 하는 생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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