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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Feb 15. 2021

나 없이도 안녕할 당신에게

한 뼘만큼 큰 내가, 또 하나의 운명을 찾아서



잠깐이었지만 누군가가 내 삶에 들어온 것은, 그 사람과 나의 작은 하루를 나누는 일이었다. 따분하게만 느껴졌던 나의 삶에 감성 필터를 하나 끼웠다고 해야 할까. 매일 나누는 비슷한 일상의 대화이지만, 그 사람과 함께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일상이 된 것만 같은 기분. 하지만 당신이, 당신과의 연락이 그저 좋았던 난, 잊고 있었던 거였다. 아무 사이 아닌 우리 관계를, 애인 아닌 관계에서 우리는 보고 싶다고 할 이유도, 서운하다고 할 자격도,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할 이유도 없는 사이라는 것. 마음아, 제발 아무에게나 기대지 말고, 아무에게나 얹히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쉽게 주지도, 받지도 말아줬으면 해.




우리의 마지막 전화통화는 실은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해 주고 싶었던 거였는데, 또 그냥 네 이야기 듣고 있는 게 좋아서 그렇게 바보처럼 또 말도 못 꺼내고 듣고 있었다. 고구마 백만 개다. 우리가 조금 더 일찍 만나, 정말 친한 친구로만 만났더라면, 너랑 더 허물없이 정말 절친한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연인보다는 친한 친구가 더 잘 어울렸던 거 아닐까 하는 후회도 해.



내가 널 좋아하고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평소 같으면 그냥 던졌을 농담도, 더 부담 없이 주고받았을 연락도 다 너무 어려웠어. 한 때는 선을 넘는 게 가장 힘들었던 내가 있었는데, 선을 넘고서 후회하고 힘들어하는 건 매한가지구나 싶어서 또 느껴. 그래도 누군가가 좋아진다는 게 어떤 거였는지 니 덕에 오랜만에 깨달았어. 그리고 항상 마음을 주고 상처 받아 더 이상 줄 마음이 없는 줄 알았던 나에게도, 또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었다는 거, 그것도 네가 느끼게 해 준 거였다. 그것만큼은 정말 고마워.



너는 어땠어. 돌아보면 어떻게 견뎌낸 건지 모를

그해 유난히도 힘들었던 봄. 너의 일상에도 내가 있긴 있었어? 다정하게 안부를 물었던, 밥은 먹었냐며 퇴근은 잘했냐며, 너의 일상을 물어주고 궁금해하던 내가 보이긴 했을까. 두, 세 시간이 넘어가던 우리의 소소한 수다 속에서 너도 위안을 얹고, 그 해 봄을 버텨낼 동력이 되었던 걸까.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에 소극적이기만 했던 내가 표현에 더없이 인색한 너를 좋아해서 내 딴엔 처음 해본 노력이었어. 생각해보면 그 흔한 술 약속, 밥 약속, 뭔가를 하자는 이야기도 다 내가 먼저 꺼낸 거였네. 나랑 이제 주고받는 대화들이 재미가 없는 걸까, 이제 질린 걸까라는 생각들로 오늘도 잠 못 자고, 또 답장이 오지 않을까 봐 먼저 메시지도 못하고 있는 고구마 백만 개의 내가 그때 키보드 앞에 앉아있었다.








우리가 멀어지고, 내가 내 마음을 평온히 들여다볼 수 있을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알게 되었다. 남녀 간의 문제의 대부분은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온도이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 관심 있고, 보고 싶고, 그리웠으면 당신은 연락을 했겠지만,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는 오늘에 그냥 너한테 나는 그 정도의 사람이었던 걸로. 아 너는 그때 날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나는 너에게 별 거 아닌 사람이었구나. 내가 없이도 잘 지낼 것만 같은 당신에 비해 당신 없이는 잘 지내지 못할 것만 같은 내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일찍 괜찮아져 버린 내 자신도 있다.  



당신에게 듣던 굿모닝을 좋아했던 내가, 또 다른 사람의 아침을 굿모닝으로 열어주고 있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 내가 궁금하다며 알고 싶다고 하는 또 다른 당신에게 전화를 거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너와의 관계를 통해 나도 한 뼘만큼은 더 대담해지고, 한 발자국만큼은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는 걸 어려워하지 않게 되었구나 하고 느껴. 내가 없이도 안녕할 당신에게 내가 보내는 마지막 인사이자 편지를 대신하는 글.




조금의 긴장 속에, 늦은 일요일 오후 울리는 나의 착신음은 이번에는 새로운 당신의 마음속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이번에야 말로 당신이 내 운명일까.

그렇게 한 뼘만큼 큰 내가, 또 하나의 당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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