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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Feb 20. 2017

1460일, 35040시간

외노자의 싱가포르 생존기

4년, 1460일, 35040시간 동안의 싱가폴 생존기,
첫 직장의 설레임으로 부푼 마음으로 첫 걸음을 내딛던 스물넷의 봄부터
어느새 나의 청춘의 끝자락, 오롯이 내 몫의 1인분을 해내게 된 스물여덟의 봄까지
싱가폴은 항상 나에게는 어떤 새로움이었다.


서울보다 아주 조금 큰, 아시아 동남부 말레이반도 최남단에 있는 공화국 싱가포르(정식명 : Republic of Singapore)은 적도 근처에 위치한 지리적 특징상 1년 내내 여름뿐인 전형적인 열대기후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는 도시국가다.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먹구름이 몰려오며 소나기가 쏟아지기 일 수 이고,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한쪽은 여우비가 내리고, 다른 한쪽은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씨인 장관을 보여주는 심술투성이의 섬나라.


우리나라와 비슷한 식민지의 역사를 지닌 싱가폴이 독립을 거머쥔 것은 1965년이라고 하니, 작년으로 딱 독립 50 주년을 맞이한 젊은 나라. 비록 면적도 작고, 천연자원도 없지만, 인구당 GDP 세계 5위, 당당히 아시아 1위를 거머 쥔 아주 똑똑하고도 야무진 나라이기도 하기에 나는 이 작은 나라를 결코 작게 볼 수 없다. 2016년 IMF 조사에 의하면 싱가폴의 1인당 명목 GDP는 약 5만 3천달라, 이는 우리나라의 약 2배라고 하니 국민 한 사람당 6천만원을 1년에 생산해내는 셈이다.




나의 청춘의 기록, 싱가포르

스물 넷의 봄 아는 사람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떠나온 작은 나라와 나의 청춘을 함께 했다. 매달 한명씩은 반갑게도 싱가폴을 찾아주는 나의 친구들과, 홀로 외롭게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하고있는 내게 고맙게도 싱가폴의 구석구석을 소개해준 현지인 친구들 덕분에 프로 관광객이자 현지인 보다도 더 현지인스러운 입싱 4년차를 맞이 했다. 일상에 지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던 나날들 - 새로운 맛집부터, 새로 생겨난 액티비티, 현지인들 조차 잘 알지 못하는 동쪽,서쪽 구석의 가게까지 - 이 섬 곳곳을 누비고 다닌 싱가폴에는 나의 청춘의 기억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밤 10시이후, 할아버지의 꿀 성대 라이브를 들으며 클락키 브릿지에 걸터앉아 맥주를 걸치던 나날들은 10시 이후 편의점에서의 술 판매와 노상음주를 금지하는 싱가포르 법령에 의해 아쉽게도 더 이상 즐길수 없는 취미가 되었고, 관광객들이 열광하던 싱가폴 최대 규모의 클럽이던 zouk는 임대기간이 만료되어 최근 클락키로 위치를 이전해 리뉴얼 오픈되었다. 싱가폴 슬링이 태어난 발상지인 래플즈 호텔의 롱바는 지난주를 끝으로 영업을 종료했고 1년간의 리뉴얼에 들어간다고 한다.


4년, 수많은 것 들의 시작과 끝을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 그만큼 곁에 왔다가 잠깐 머물고 싱가폴을 떠나버린 소중한 사람들도 너무나 많았던 그런 시간. 싱기폴에서의 일상적인, 때론 일상적이지 않은 낭만적인 하루하루들은 고스란히 남아 나의 청춘의 기록들이 되었다. 하루하루를 여행자가 된 기분으로 촘촘히 채워나갔고, 참 열심히도 먹고 마시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관광객들을 포함한 싱가포르에서 유학하시는 분들, 사업을 하시는 분들, 동종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 그 수많은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싱가폴이 제각각의 청춘들에게 보낸 초대장은 다양했다.


새로움이란 찬란함

새로움에 목말라 했던 치기어린 청춘이 있었다. 하루하루를 새로운 것들로 채우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새로 생긴 맛집, 새로 생긴 칵테일 바, 새로 오픈한 엑티비티. 그저 새로운 것을 찾아 내어 나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이 외국의 생경한 경치와 분위기에 취해 나의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가기에 급급했던 나의 청춘이 이 싱가폴 곳곳에 발자취를 남겼지만, 스물 여덟의 나는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새로움이란 단순히 나의 체크리스트 박스의 조그마한 네모칸을 까맣게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모든 새로움의 순간들이 소중하고 더 없이 눈부셨던건 새로운 것을 찾아떠나는 그 설렘의 순간, 인생에 단 한번 밖에 없을 나의 청춘의 그 한 페이지, 그 한 순간을 함께해 준 소중한 인연들 덕분이었다는 것을. 그 많던 음식점들과 관광지, 칵테일바는 있던 것이 없어지기도 하고, 꾸준히 새로운 곳들이 생겨나지만 4년차 외노자에게는 어느덧 어디든 익숙한 장소들일 뿐이었다. 그 장소를 더 없이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기억과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싱가폴의 작은 길거리, 평범한 쇼핑몰, 흔한 관광지 모두 내가 함께 방문하고, 같은 경험을 나누며 그 짧은 시간을 공유했던 추억들이 아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더 없이 특별하고, 항상 나에게는 새로움이다. 또 다른 누군가와 같은 곳을 방문하게 되더라도 그 시간들이 결코 전과는 같지 않으며, 나는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조금 더 성숙해진 나와 또 한명의 새로운 인연과 써 내려가고 있다는 점에서 싱가폴은 마지막 페이지가 보이지 않는 두꺼운 한권의 소설책 같기도, 사진첩 같기도 하다.


새로움은 항상 설레이는 것이지만, 나는 아직도 새로운 사람과 내게 익숙한 곳을 갈 때면 항상 연락을 하곤 한다. 지금은 싱가폴을 떠나 다른 꿈을 꾸고 있을 그 사람들에게, 아직 싱가폴에서 나의 청춘의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는 내가 짧게나마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냐고, 요즘은 행복하냐고. 나는 당신과 함께 왔던 곳에 지금 와있다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갈 오늘이기에 설레이지만 당신과 함께였던 시간들도 참 좋았었다고. 비록 지금은 함께이지 않지만 한 때 소중했던 그 사람과 나의 기억에 안녕을 묻는다 - 여기 오니 당신이 보고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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