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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콤보 May 19. 2022

나의 첫 해커톤 참가기

이 글은 "나의 첫번째 사이드잡 실패기"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드디어 나의 첫 해커톤 참가 날이 되었다. 

해커톤은 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인데 보통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의 포지션으로 참여한 참가자들이 1박 2일 동안 팀빌딩부터 데모 버전의 프로덕트를 만들어 경연하는 것까지 진행되는 행사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대학생부터, 진심으로 참여한 현직 스타트업 대표들까지 다양한 컬러를 가진 참가자들이 어울리는 좋은 행사이다.


대게 행사는 기획자가 가져온 신선한 아이디어를 엘리베이터 피치 하는 것부터 시작되게 되는데, 이게 아주 꿀잼이다. 기획자들의 피 튀기는 아이디어 배틀을 보는 것이 빅재미이기 때문인데, 해커톤을 신청했다면 행사에 늦지 않아야 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김범수, 이해진 같은 제 아무리 훌륭한 창업자가 계급장 떼고 참여하더라도 이 기획자들의 40초 정도의 진검승부에서 환영받기란 쉽지 않다. 좋은 사업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보통은 당장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이 승리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참가자 중 가장 유망한 사업계획을 가진 기획자라 해도, 엘리베이터 피치에서 당장의 청중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이것은 실행하기도 전에 벌써 죽은 사업이 되어버린다.


얼마 전 토스에서 파운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와 비슷한 창업자들의 엘리베이터 피치가 소개되고 있다. 창업 예능식 구성인 듯한데, 필자도 저 자리까지 온 창업자들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에 흥미롭게 보고 있지만 마냥 가볍게 볼 수만은 없어서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다. 


어찌 됐건, 토스의 파운드에서의 엘리베이터 피치의 평가는 해커톤의 그것과 너무 결이 달랐다. 사업을 직접 실행해오거나 옆에서 파트너로서 같이 빌딩 해본 경험 많은 선배 창업가 입장에선 후배 창업가의 40초의 피치에서 캐치해내는 포인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 피 튀기는 1차 진검승부가 끝나고 살아남은 기획자들만이 행사에서 자신의 사업계획으로 팀빌딩을 시작하여 실행이란 걸 해 볼 수 있게 된다. 살아남지 못한 기획자는 다른 기획자 팀의 팀원으로 합류해야 한다. 행사에 아이디어 발제자로 참여하지 않은 청중들은, 이 기획자들의 발표 내용과 청중을 휘어잡는 스피치력 등 무대에서의 모든 행동과 표정 변화까지 관찰하며 참여할 팀을 정하게 된다. 


당시 필자는 (어설픈) 개발자이지만 꽤 근사한 아이디어를 가진 기획자라고 생각해서(흔히들 '기발자'라고 한다),  아이디어 피치에 참여해 팀빌딩을 해보고자 했다. 


지난 첫 번째 사이드잡 실패의 교훈을 새기며, 이번에는 비즈니스 모델을 좀 더 작게 그리고 구현도 빠르게 가능한 랭킹 서비스 사업을 기획했다.


나의 사업 아이디어는 이랬다.


우리가 집에서 쓰는 초고속 인터넷을

이사를 왔든, 약정기간이 다 되어갈 때든 신규 가입하려고 할 때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베네핏을

가장 많이 주는 업체를 랭킹 순으로 알려주는 앱 


앱 이름은 '내가 젤 마니줘'였다.

다시 상기하자. 당시는 2NE1이 활동하던 2011년이었다. 


우리는 보통 월 3만 원 내외로 집에서 쓰는 초고속 인터넷과 IPTV 등 요금을 지불하며, 약정기간을 채우며 쓰다가 약정기간이 만료될 즈음 다른 통신사로 갈아타거나, 현재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해지하겠다고 하고 요금감면을 받아 몇 달 더 계속 쓰게 된다. 


당시에도 그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실제 상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의 영업이나 마케팅 방식이 현재와 비슷했다.


'내가 젤 마니줘' 앱을 실행하면 SK, LG, KT개의 바텀 메뉴가 있고 각 페이지엔 1위부터 10위까지 사은품을 많이 주는 순으로 업체 리스트가 있었다. 업체를 눌러서 세부 페이지로 넘어가면, 월요금, 사은품 금액을 표로 확인할 수 있고, 맨 아래 CTA버튼으로 업체에 전화하기 버튼이 있었다.

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서버에 기록되고, 업체에게 CPC로 약정된 금액을 받는 것이 대강의 사업계획이었다.


해커톤에서 충분히 해볼만큼 작은 사업계획이었고, 확실한 BM이 있는터라 더 애착이 가는 사업 아이디어였다. 마찬가지로 당시 습관을 들이고 있던 아이디어 노트에서 나온 기획이었다.


이 사업계획으로는 기획자들의 배틀에서 난 승리하지 못했다. 다른 쟁쟁한 기획자들은 '데이팅 앱', '요리 레시피 앱', '헬스 앱' 등 당시 젊은이들이 관심이 있던 분야에 집중되고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현란한 사업계획으로 참가자들은 매혹당했다. 

이어지는 팀빌딩에서도 해당 아이디어를 발제한 기획자에게 쏠림현상이 있었다. 대게 해커톤의 대부분 참가자들이 20대이고, 학생인 경우가 많아 이런류의 아이템이 인기가 많았다.


보통의 행사에서는 나처럼 탈락한 기획자는 팀빌딩 기회조차 얻을 수 없지만, 그 당시 행사엔 다행히 기회가 주어졌다. 나와 같이 '내가 젤 마니줘'를 만들어보려는 참가자는 없는 듯했으나 한 명의 남자 멤버가 합류했다. 대학생 디자이너였던 그 멤버는 왜 이 팀에 합류했냐는 물음에 "형께 제일 빨리 끝날 거 같아서요"라고 무심히 답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해커톤이 팀원 2명으로 시작되었고, 이틀간의 해커톤 행사기간 내에 우린 최선을 다했으나, 데모 프로덕트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그렇기에 우리도 제작 중인 화면만 가지고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예상대로 수상의 영예는 다른 팀에 돌아갔다. 


최종 발표를 들었지만 다른 팀들의 사업 아이디어가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숱한 비슷한 서비스들과 무엇이 다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들도 나의 사업이 뭐가 다른지 알고 싶지도 않아했다.


여하튼 해커톤 기간 동안 열심히 기획과 코딩을 했음에도, 완성까지는 먼산처럼 보였기에 합류한 디자이너에게 일주일만 더 같이 진행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괜찮다고 사양하며, 만든 디자인은 형이 다 쓰셔도 된다며 쿨하게 작별을 고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해커톤은 맹숭맹숭하게 끝이 나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지난번 실패의 경험으로 누군가와 같이 하고 싶었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대신 대학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사업을 설명하고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앱은 내가 만들 테니 사업자를 내고, 제휴영업 및 계약 행정처리만 부탁했기에 다행히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다음 글은 나의 첫 프로덕트 제작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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