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디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urva May 13. 2016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빅 픽처(The Big Picture, 2010), 로망 뒤리스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텅 빈 자유와 마주하게 되면 두려움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란 끝없는 무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니까. 타인을 통해 자신을 고백하던, '용기가 없었나 보죠'.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의 고독, 진정한 나는 존재하는가? 


그러나 그 모든 건 내가 뷰파인더 뒤의 인생을 포기하는 대가로 얻은 것들 있였다.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학창 시절 때부터 나는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았다. 열심히 출석 체크를 해서 중학교 졸업식날 개근상을 받고 , 아버지께서는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해주셨다. 라디오, MP3, PMP, CD플레이어, 노트북 등을 이어 구입했지만 카메라만 못했다. 셔터를 누르는 동시에 순간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네모난 그것은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그때의 감정들, 햇살, 공기.. 모든 것이 기록되는 듯했다.

쏟아지는 신간 책 구경보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에서 머물기를 좋아해, 나는 매주 서점에 간다.

눈에 띄는 책들 중 하나였던 <빅 픽처>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Douglas Kennedy)의 작품들은 기욤 뮈소처럼 표지 일러스트가 인상적이지만, 나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소설이란 장르를 미친 듯이 좋아하지 않아도 책을 가리는 편이 아닌데 왜 읽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도 않았을까? 서가 앞에 한참 동안 멈춰 섰다. 페이지의 첫 글귀가 와 닿아서, 무섭도록 끌려서 그랬나 봐.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림자와 실체'. 라....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빅 픽처>는 진정한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 이야기이다. 사무실에서 선배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요즘 읽는 책'으로 대화 주제가 바뀌었고, 가방에서 동시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빅 픽처>였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친구에게 읽던 책을 건네주고서 로망 뒤리스의 연기를 보게 되었다.





주인공 벤 브래드포드(책), 폴 엑스벤(영화)은 앞날이 탄탄하게 보장된 뉴욕 월가의 변호사다. 직업, 연봉, 재산, 행복한 가정.. 모두가 부러워할 대상이지만 그 자신은 조금도 즐겁지 않다. 그의 오랜 소망은 사진가가 되는 것이지만 호사스러운 취미로 남았을 뿐이다. 자아의 대한 자괴감과, 이웃집에 사는 자유로운 사진가 게리 그렉과 아내 사이의 의심으로 마찰만 커져간다. 그러던 어느 날 설마 했던 불륜을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말싸움이 격해져 그렉을 죽이게 된다. (책에서 텍스트로 표현된 상세 묘사와 영상, 음향 때문에 더욱더 긴장감이 돌았던 살인 은폐 장면들이었다.) 그렉의 여권부터 수첩 등 중요한 것을 챙긴다. 허무하게 울던 그는 참혹한 심정으로 바람난 아내에게 그렉의 계정으로 마지막 메일을 남긴다. 사랑한다고. 잠시만 떠날 거라고. 

정말이지 결혼은 사랑만큼이나 의리가 중요하다는 걸 더욱 실감했다. 불륜으로 인한 살인이라니. 변호사 직업과 재산을 모두 버리고 도주를 한다. 그리고 몬태나 주 마운틴 폴스에 정착을 한다.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구입한 건 필름과 렌즈 등의 중고 카메라 장비들이다.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해 마운틴 폴스의 주민들을 찍고, 그들의 섬세한 감성을 담는다.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시킨 외로움에서 새로운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끼고 또 새로운 사랑을 한다. 말 없는 예술가로 살아가던 어느 날 철봉 하는 남자의 모습을 찍어 지역 신문에 실리게 된 후로 의 사진은 점점 더 인정을 받아 전시회까지 열게 된다. 사진가였던 그렉 본인이 아닌, 바람난 여자의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 '예전 사진들보다 훨씬 좋다'라는 말로 인정을 받게 되고 (자신이 죽인 남자의 이름을 빌려) 그토록 원했던 사진가라는 삶을 살고 있는 변호사의 소망이 이루어진 참 아이러니 한 상황이다. 


작은 안식도 행복이라 여길 때쯤 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가 되자 자살로 은폐시킨 살인사건이 들통나게 생겼다. 세상이 두려워진 그는 철저히 언론을 차단한다. 그리고 다시 철봉 앞에 선다. 또다시 세상에서 사라지는 방법을 택한다. 남미로 향하는 배안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반사적으로 사진 촬영하다 들켜 카메라와 함께 그대로 바다에 던져진다. 다행히도 완전 방수의 필름 통과 함께 바다에서 살아난 그는, 경찰에 살인 사건 사진을 넘겨 돈을 받고 억척스레 살아가게 된다. (너무 영화 같고 소설같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명백한 살인자인 그가 동정표를 얻도록 표현된 의도는 뭐였을까?

꿈을 버린 채 가족을 위해 살고 있는 가장을 표상하고, 불륜에 배신당하는 등 세상의 고독을 버티며 위태롭게 살아가는 안타까움 때문인가. 철저히 혼자라 오히려 더욱 고독한 세상이란 감옥에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유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가. 말 못 하는 사진기는 모든 것을 과감 없이 진실로 담아내기 때문에 거짓과 비밀 투성이인 그와 너무나 대조적이다자신이 찍은 사진들로 예상치 못하게, 세상의 전면에 서게 되었을 때의 남자의 표정은 가히 동물적이다. 기쁨을 넘어 자만하고 오만하기까지 하다. 그에게 사진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연적(벼루에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아두는 그릇)의 기술일 거라고 생각했건만, 평가는 너무나 좋았고 움막 안에 숨어서 살고 싶었건만, 급기야는 덮었던 거적마저 들추게 만든 힘. 

자기 자신을 잃어가며 힘들게 찾은 꿈은 진정한 인생의 종착지로 이끌 수 있는가? 사랑 없이 외롭고 고독한 인생을 합리화할 수 있을까? '용기가 없었나 보죠.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어요.'라고 다른 사람 말하듯 자신을 고백한다. 사랑과 꿈이 공존할 때 비로소 세상을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다시 한번 되뇌게 된다. 

그림자를 붙잡느라 실체를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나는 브라우니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본 순간 그 즉시 사로잡혔다. 마치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개의 이미지로 시야를 좁힐 수 있어 주위 모든 사물을 다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한 여섯 살짜리 꼬마를 가장 만족시킨 건 렌즈 뒤에 몸을 숨긴 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꼬마는 카메라 렌즈를 자기 자신과 세상 사이를 가로막는 벽처럼 사용했다.

... 기자는 청소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장면의 세세한 부분들을 모은다. 그 세세한 것들이 한데 모이면 '큰 그림'이 완성된다. 사진가는 늘 상황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영상 하나를 원하지만 작가는 작은 일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세밀한 묘사가 없는 이야기는 맥없고 심심할 수밖에 없으니 좋은 글을 쓰려면 균형감을 유지해야 한다. 글 전반에 작가의 시각이 담기지 않으면 독자는 작가가 관찰한 바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식탁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갖가지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흰 벽, 수공 소나무 캐비닛, 조리대, 주방 기구들, 장식장에 깔끔하게 쌓인 흰 웨지 우도 접시들, 메모판에 핀으로 꽂은 가족사진, 냉장고를 장식한 학교 알림장과 애덤의 그림.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공간을 채우고, 시간을 채울 것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 축적되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누구나 인생의 비상을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덫에 더 깊이 파묻고 산다. 가볍게 여행하기를 꿈꾸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걸 축적하고 산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순전히 자기 자신 탓이다. 누구나 탈출을 바라지만 의무를 저버리지 못한다. 

경력, 집, 가족, 밎. 그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발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안전을,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제공하니까. 선택은 좁아지지만 안정을 준다. 누구나 가정이 지워주는 짐 때문에 막다른 길에 다다르지만, 

우리는 기꺼이 그 짐을 떠안는다.


이제 와서 가장 참기 힘든 게 뭔지 아나?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는 거야. 변화를 모색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거나 다른 생을 꿈꿀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리란 걸 알면서도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인 양 살아왔다는 거야. 이제는 더 이상 환상조차 품을 수 없게 됐어. 인생이라는 도로에서 완전히 비껴 난 것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