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지방의 올여름은 유난히 비 오는 날이 적어 무더위가 극성을 부렸다. 극성 맞은 더위는 늦여름의 꼬리를 잡고 추석 때 까지 이어졌다.
뒷골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는 우리에게 더위가 가시지 않은 채 추석을 맞는다는 것은 별 반찬도 없는데 국까지 싱거운 격이다. 좋은 날씨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길인데 진땀을 빼야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산소 가는 길이 멀고 험했다.
어렸을 때는 올해처럼 더울 조짐이 보이면 명절날 비나 왔으면 하고 생각했고, 요행으로 나의 바람이 들어 맞아 성묘를 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산소 가는 대신 외지에서 오신 친척들만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다녔었다. 집 식구들 중에 나처럼 산소 가기 싫어하는 사람은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올 추석날은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창을 통해 들어 온 햇빛이 흔들리는 나뭇잎과 율동을 같이 하며 얼굴 위를 오르내리는통에 잠에서 깼다. 늦잠 잔 닭 울음 시간의 기상이라도, 명절날 특별히 할 일 없는 내게는 아침의 여유를 가져다 준다. 산소 갈 채비를 마치고도 성묘객 일행들이 올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다.
마을 안쪽의 친척들이 음식 바구니와 술을 들고 우리집 방향으로 오자, 잽싸게 대문을 나서며 인사를 드렸다. 나도 성묘객 행렬에 합류해서 마을 입구 쪽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의 둘째 동생댁을 끝으로 친척들이 다 모이면 본격적인 성묘길 산행이 시작된다. 올 성묘객은 여덟 명이다. 해 마다 인원 수가 줄어 들기는 했지만 열 명 이하가 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예전에는 30명 가까운 인원이 성묘길에 나섰고, 그 인원들이 산길을 일렬로 나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요란하지 않은 잔치행렬이었다. 돌아가신 분을 뵈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후손들이 조상의 이름을 빌어 단합대회를 하는 것이었다.
작년에 할아버지의 둘째 동생께서 돌아가셨지만 그 분이 성묘길 행렬에서 이탈하신지는 십오 년쯤 됐다. 내가 어렸을 때의 성묘길은 아침 8시에 출발하면 오전 10시 반 쯤에는 끝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할아버지 동기간이 모두 돌아가셔서 성묘 시간이 한 시간은 족히 더 걸린다. 성묘객은 줄어드는데 성묘시간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지병이 있거나 연세가 있으시면 산행이 불가능하다.
성묘길 행렬에서의 이탈은 성묘 받을 처지로 조금씩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동생들도 성묘길 행렬에서 이탈하실 때면 한결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이구 나도 이제는 늙어서 이 번 성묘부터는 빠져야겠다' 그렇게 성묘를 불참하신 어른들 중에 현재 살아 계신 분은 없다. 성묘 불참 기간은 제 각각 다르지만 그 이후 다들 돌아가셨다. 지금은 산에서 우리를 맞아 성묘를 받고 계신 것이다.
어렸을 때는 불참하겠다고 말씀 하시는 할아버지들이 왜 그렇게 부러웠는지! 성묘를 안 가도 되는 할아버지들이 마냥 부러웠던 것이다.
올해는 아버지께서 성묘를 불참 하셨다. 10년 전 발병한 파킨슨병이 점점 심화되어 본인이 산을 오르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신 것 같다. 아침식사 중에 올 추석 성묘는 가기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렸을 때는 몰랐던 성묘길 불참의 의미가 내 머리 속을 맴돌며 이제 나의 아버지 차례까지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흔을 넘어서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데 아버지는 골백 번도 생각하셨을 것이다. 저 번 명절 때 산에서 "나가 엊그저깨까지만 해도 젤로 막내였던 것 같은디 세월이 산바람처럼 휘 흘러, 벌써 작은 아부지들도 다 돌아가시고 인자 나 위에는 아무도 없다." 고 말씀 하시며 쓸쓸한 웃음을 지으셨는데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진작에 알고 계셨던 것이다. 성묘길 대열에 참가를 못하는 것이 사람 일생에서 어디쯤 해당되는지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성묘길에 불참하고 싶지 않으셔서 새벽마다 마을 분들과 함께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셨을 것이다. 올 추석은 운동을 너무 무리하게 하셔서 성묘를 못 가신 것으로 믿고 싶다.
설에는 아버지께서 성묘길 대열에 꼭 참석하시기를 빌어 본다. 후손들이 즐기는 요란스럽지 않은 잔치행렬의 맨 앞에 서시길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