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으로 발령을 받고 두 달쯤 지났을까. 한 학생이 급식실로 나를 찾아왔다.
"학생, 무슨 일 때문에 왔어요?"
"선생님을 뵈러 왔는데요."
"나를"
"네"
"무슨 일?"
"아니! 그냥! 가족들과 떨어져서 시골에서 일하시느라 힘들죠?"
어디서 나에 대해 주워들었던 모양이다.
웃음이 났다. 통념을 깨는 말에서 느끼는 '어쭈 제법이네', '거 참 귀엽네'와 같은 생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지어 지는 웃음과 진정 흐뭇해서 웃는 웃음이 반반 섞인 웃음이랄까.
아이답지 않은 표현이었다. 인격이 영글어야 할 수 있는 말이기에 흐뭇했다. 말을 하는 내내 쑥스러워할 만큼 진지했다. 별 다른 용무 없이 이 말을 하려고 왔으니 고마웠다.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내가 선택한 일이니 나름 즐기고 있어요. 학생이야말로 힘들지, 공부하느라."
그 학생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뭐 힘들긴 하죠. 그럼 둘 다 힘든 거네요."
"그러게! 그럼 우리 서로 열심히 살아 봅시다."
"네, 그러죠."
그날 그 학생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인상착의를 들어 선생님들께 물었더니 6학년 우빈이라고 했다.
사람 마음 속에 한번 들어온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 잠들기도 하고 휘몰아치기도 하며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사랑도 하고, 때로는 실망도 할 것이다.
그 일 이후 우빈이가 눈에 띄었다.
체육관 문을 자주 잠그는 모습도 눈에 띄었고, 다른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 앞에 줄을 서서 배식을 받는데 우빈이는 주로 선생님 뒤에 줄을 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인사만 하지 않고 꼭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 이틀째인가 우빈이가 나를 보고 그랬다.
"오랜만에 뵙네요."
"어제도 봤잖아요."
"그래도 방학 동안 아주 오래 못 봤으니 오랜만이죠."
"그렇기는 하네."
우빈이를 특별히 더 살갑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특별했다. 그렇게 특별했던 우빈이가 다음주면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마음이 착잡하다. 서운해서 그럴 것이다. 중학교와 함께 급식을 하니 우빈이가 중학생이 되더라도 계속 볼 수 있는데 뭐 그리 서운할까 싶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는데 논리적인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소속이 달라지니 그럴 것이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초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고 떠나니 그럴 것이다. 뭐 이런 이유를 애써 붙여 본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향기가 남는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 향기를 떠올리며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면 아주잘 살았다는 것 아닐까. 우빈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너무 거창하지만 우빈이에게는 그런 향기가 있다.
'우빈 학생 떠나려니 서운합니까?'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겠지.
'뭐 자주 볼 건데요. 그래도 마음은 좀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