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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희수 Jan 31. 2021

앞만 보는 어른들은 읽어보세요.

조남주 소설 '귤의 맛'을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간다'라는 말이 있죠.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라고 합니다. 상대성이론으로 나이든 사람한테만 시간이 빨리간다는 건 아닙니다. 머리 속에 남는 기억이 점점 옅어져서 시간이 빨리 지나간거라고 느끼는 거라더군요.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 짤막한 지식은 계속 머리 속 언저리에 남아있습니다. 아마 매일 조금씩 더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어른의 하루엔 지나간 기억까지 잡아둘 여력이 없습니다. 오늘도 온 힘을 앞으로 나가는데만 썼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그걸 지금 필요한 곳에 쏟아내며 하루가 끝났습니다. 직장과 일,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나면 지난주, 지난 달, 작년의 기억이 교차되고, 내 머리 속 기억은 그렇게 점점 단편적으로 짧아져만 갑니다. 앞만 보는 어른은 하루살이입니다.  


눈물이 차오를 땐 고갤들어..


귤의 맛을 읽었습니다. 귤의 맛은 무려 청소년 소설입니다. 청소년 소설을 네가 왜 읽어? 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읽고나서는 왜 굳이 청소년과 어른의 구분을 둘까 하는 의문스러움이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른을 위한 이야기였거든요. 소설엔 은지, 해인, 다윤, 소란. 친구 4명이 등장합니다. 4명이 거쳐온 중학교 3년의 시간이 이야기 속에서 교차합니다.


입시에 도움도 안 되고 인기도 없는 중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만난 네 친구가 있다. 하루종일 학원을 가고 문제집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영화를 못 보는 것이 당연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중얼중얼 암기하는 학생이 '반듯하다'고 칭찬받는, 한국 중학생이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하는 기형적인 일상. 마음껏 푸르러야 할 시기에 드리워진 각자의 그늘을, 네 친구는 서로를 버팀목 삼아 함께 통과한다. 치열하게 싸우고 바닥을 보이며 어긋나다가도 어느새 새어나간 진심에 서로를 보듬으며 단단해진 우정. 중학교 3학년을 앞두고 처음으로 함께 떠난 제주 여행에서 네 친구는 충동적인 약속을 하고 만다. 꼭 지키자는 염원과 함께 타임캡슐에 담아 땅에 묻은 약속. 공통된 희망이지만 저마다의 이유는 너무도 다르다.



대학생때 잠깐 중학생들을 가르친적이 있습니다. 아직 보송보송한 얼굴과 달리 커버린 몸이 어딘가 기이했고, 마냥 철들었다고 하기엔 아이 같았고 마냥 아이라고 하기엔 어른의 눈을 한 기이한 집단이었습니다. 그런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어내기에 중이병이라고 희화화 되는 것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친구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던 시기, 내 스스로도 잘 이해되지 않는 감정에 휘둘렸던 시기, 아무도 모를텐데 얼굴에 난 여드름 하나가 가장 커보였던 그런 시기. 우리 모두가 겪어냈던 시간입니다. 작은 돌부리도 가볍게 지나칠 요령이 없어서 쉽게 넘어졌고, 이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하는 듯 외로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꼭꼭 일기를 써왔지만 그 시기만큼은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듬어지지 못한 감정들이 날 뛰는 나를 보고싶지 않았거든요.


책의 마지막엔 친구들이 제주도 여행을 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시에서 먹어 본 귤과 달리 싱싱하고 단 제주도 귤의 맛에 놀랍니다. 파랗게 덜 여문 귤이 도시에 가는 동안 홀로 익어갈 때, 제주도의 귤은 나무에 달려 끝까지 익어가기 때문이죠.


귤의 맛을 읽으며 잃어버렸던 10대의 나를 다시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린 나의 서툴렀던 감정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책의 한 구절, 부모님이 스쳐갔습니다.그 시절의 나는 지금 커서 이런 어른이 되었구나. 도시에 진열된 마트 귤처럼 외로운 줄 알았던 나도 사실은 나무 끝에서 익어간 귤이었습니다.


'고립무원'이란 사자성어가 있죠.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혈혈단신 외로이 서있는 모양을 뜻합니다. 도시 속 팍팍한 어른의 삶을 살아가며 종종 머리 속에서 되내이던 단어입니다. 성장기가 지나간 나는 가지에서 떨어진 귤이 되어간 걸까요? 아직도 나무에 달려 익어가는 중이라 믿고 있습니다. 지금도 나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양분을 주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조금씩 익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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