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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희수 Dec 06. 2021

자조적 감자 수프 레시피

춥고 쓸쓸한 연말,  자기 비하하기 좋은 계절에 만드는 요리  


재료

- 오래된 감자 3알

- 우유 한 컵

- 생크림 3분의 1 컵

- 양파 반개

- 대파 흰 부분

- 버터  80g


1. 오래 방치한 감자는 싹이 텄습니다. 회생불가 일지 모를 감자의 싹을 도려내 봅니다.


2. 전자레인지에 3분간 감자를 익혀줍니다.


3. 양파를 잘게 썰어줍니다. 대파도 잘게 썰어줍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4. 버터를 냄비에 넣고 녹여줍니다.


5. 버터에 잘게 썬 양파와 대파를 넣고 갈색빛이 돌 때까지 볶아줍니다.

눈물 젖은 양파와 대파가 풍미를 만들어 냅니다.


6. 익은 감자의 껍질을 벗겨줍니다.

뜨거운 감자를 찬물에 바로 넣으면 껍질이 쉽게 까집니다.


7. 감자를 깍둑썰기 한 뒤 갈색빛 대파와 양파에 넣어줍니다.


8. 물을 넣어주고 팔팔 끓여 재료를 푹 익혀줍니다.


9. 어느 정도 끓으면 우유, 생크림을 넣고 소금 간을 해줍니다.


10. 핸드블랜더로 내용물을 갈아줍니다.


11. 물 또는 우유를 넣어 점도를 조절하고 약불에 끓여줍니다.


12. 독이 든 감자수프 완성 


싹이 튼 감자를 잘못 먹으면 식중독에 걸립니다.

방치한 감자는 독을 품기 때문입니다.


‘왜 나를 돌보지 않았지?'

'왜 나를 적당한 때에 사용하지 않았지?'

'어두운 곳에서 싹이 트도록 내버려 뒀지?’


“먹지 말까? 갖다 버릴까?”


하얗고 뽀얀 감자 수프에 위협을 느낍니다.

그러나 홀로 싹을 틔운 감자의 정성을 생각해 한 입 먹어보기로 합니다.


사실 나는 싹튼 감자가 나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나는 딱히 고민하지 않았고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면 됐지 하며

사실은 불안을 어둠 속에서 켜켜이 쌓아왔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보니 이곳저곳 싹이 텄고

나는 독을 품었습니다.


나의 싹은 칼로 도려낸 듯 사라질 수 있을까요?


다행히 감자스프는 맛이 좋습니다.

식중독의 위험성이 느껴지지 않는, 추운 날씨에 따듯하게 몸을 데워주는 맛입니다.


싹이 튼 감자가 멋진 요리가 됐듯

내년에는 따듯한 맛을 지닌 감자수프가 되길 빌며


이룬 것 없는 2021년 연말에 끓인

감자수프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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