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원형 May 11. 2022

잡초처럼




5년을 잡초처럼!


*


한때 '잡초는 없다'란 책이 제목만으로도 신선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제목에서 너무 애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잡초는 있다. 영원히 잡초는 있을 것이다. 다만 잡초를 하대하는 뜻으로 쓰지 않으면 된다. 저 제목은 어떤 면에서 너무 애를 쓰느라 오히려 잡초란 말에 부정적인 의미만 잔뜩 뒤집어씌운 꼴이 된 게 아닌가 싶다.(글쓴이의 의도가 그게 아니래도.. 그래서 저 책이 유행하던 당시 잡초는 금기어 비스무레했던 적도 있다...)


잡초는 인간이 농경 생활을 시작한 이래 인간에 의해 재배되지 않고 절로 자라는 여러 풀들을 그리 불렀다. 농경이라는 게 생존과 직결되니 경험치를 후대에 남겨야 했고 그래서 구분이 필요했겠다 싶다. 작물 생산이 늘기를 기대했으니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식물을 잡초라 했을 테고. 그런 의미에서 요새 뉴스에 등장하는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인간들을 보면 누가 누굴 보고 잡초래, 이러면서 잡초가 항변할 듯..


산림청이 펴낸 산림임업용어사전에 잡초를 '초본식물로서 묘목을 기르는 밭이나 산지에 발생해서 임업 상 해로운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해롭다? 어떻게 초목을 다루는 곳에서 세상에 식물을 해롭다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이게 정말 제정신일까? 심지어 독초조차 해롭게 이용하니 해로운거지, 그 존재 자체에 해롭다고 정의내리는 일은 얼마나 무지한 발상인가? 


반면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였던(특히 생태!)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잡초를 일러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는 식물들' 이라고 했다. 품위가 느껴지지 않나?


어떤 자들은 해로운 식물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는 아직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유보한다. 우리가 자연을 감히 어떻게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며 해롭다고 정의내려버린 저들이야 말로 아둔하고 해롭지 않나? 그러니 30년 됐으니 늙어 탄소흡수력이 떨어진다며 벌목하는 미친 짓을 일삼지..


어떤 생각과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가 세상을 만든다.


베란다 러브 체인 화분이 하나 있는데 적어도 20년은 되어가는 이 화분은 주렁주렁 길게 자라며 해마다 꽃을 피워내고 있다. 몇 번에 걸쳐 끈으로 묶어서 늘어뜨리고 있는데(안 그랬다가는 베란다 한쪽을 다 덮을 지경) 어느 날 이 화분에 잡초 씨앗이 하나 뿌릴 내렸다. 사초과인 듯한데 거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살고 있다. 가만 들여다보니 화분에 뿌리 한 가닥이 그야말로 '뿌릴 내리고 있'는 거다. 


이 생명력을 어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잡초처럼 살아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아침에 횡설수설 한 마디가...

좀 길어졌네


*

질경이는 나그네의 발자국을 따라 자란다는 말처럼

밟히면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 풀이다

오히려 밟힐 것을 대비하는 구조로 몸을 바꾸며 진화한 풀이다

오년동안 질경이처럼 질기게


2022.5.11



매거진의 이전글 두 걸음 나아가기 위한 한 걸음 후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