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원형 May 07. 2022

한결같은


*

바삐 지내느라

꽃이 피네, 이렇게 몇 번 쳐다보는 와중에

꽃대 다섯 개 중 네 개에선 이미 오래 전에 꽃이 다 졌고

마지막 꽃대에 핀 꽃 송이 두 개 가운데

하나가 오늘 베란다 바닥에 떨어져있다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지


군자란은 겨울 내내 추운 베란다에서 지낸다

환기를 위해 어지간해서는 일년 열 두 달 창을 조금 열어두는 그 추운 곳에서

겨울을 나야 비로소 화려한 꽃을 피운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아무리 추워도 그냥 베란다에 둔다.

꽃대를 올리고 꽃봉오리가 주홍빛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거실로 옮겨다놓는데

몇 년 사이엔 그것조차 게을러져 안 하고 그냥 베란다에 둔다.


어느 해엔가 꽃대 두 개가 올라온 걸 보고는

그해 겨울 추워지기 시작하자 거실로 옮겨놨다

그랬더니 이듬 해 꽃이 아마도 안 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깨달은 게 극한의 경험이 있어야 꽃이 핀다는 거였다


꽃대가 하나씩 늘어나 재작년인가 네 개가 되더니

올해 드디어 다섯 번째 꽃대를 올렸다

이 얘긴 아마도 화분에 적어도 다섯 포기가 넘는 군자란이 오밀조밀 모여있다는 의미일 게다


우리 집에 온 지 이십 년이 뭔가

훌쩍 넘은

그 세월동안 딱 한 번 분갈이 해주고

비좁은 곳에서 화분이 터질 것 같은 그런 환경에서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든 없든

해마다 꽃을 보여주는

고마운 군자란님!

한결같은 모습에서 배운다


2022.5.7



매거진의 이전글 집이 최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