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몸에 뵌 습관이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정말 바꾸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 푹 한번 잠을 자보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매일 같이 초조한 지, 사업 시작 후 하루도 마음 편하게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아침형 인간 습관이라고 해두자. 지금 시각 새벽 5:00 어김없이 일어나서 스케줄을 정리하고, 책을 보며, 한주, 하루 정리를 시작한다.
구매하는 책들을 보면 요즘 내가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하찮은 일 할 사람이 아냐"
vs
"나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어떤 목표가 있는데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거야"
일을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가끔은 "나는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 지금은 하는 거야"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굉장히 불편한 순간이기도 하지만, 참고 넘어가는 일이 많다.
가령 어떤 일이든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맡아서 하고 있는 일도 잘할 확률이 극히 낮다는 점과 비슷한 맥락이고, 일을 시키는 사람도 그 사람에게는 어떤 일도 믿고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할 확률이 99%
(장담은 하지 않겠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하찮은 일은 평생 그 일을 해야 할 것이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지만, "나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어떤 목표가 있는데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거야"
이게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 말의 작은 차이가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 잘 아실 거라 생각한다.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꼭 본인이 100% 인지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를 남에게 비쳤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고3 때 피자헛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대학생 때는 엄마 친구 숯불 닭갈비 집에서 숯불을 피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전역 후 우체국, 세무서 등 관공서 아르바이트도 겸했었다.
급전이 필요할 때는 1일 공사판 현장에 가서 일했다.
밤에는 대리운전과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고, 주방일을 했었다.
주말 낮에는 화장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시간을 만들어서 블로그에 1만 개 정도의 포스팅을 했었다.
이 모든 일들은 19살에서 27살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리고 그 경험들을 나에게 다시 생각해보고 정리를 해보았다.
나는 고3 때 피자헛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 나의 몸값을 올리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처음으로 자격증, 보건증 등을 통해 일을 할 수 있는 서류 자격에 대한 경험을 했고, 피자헛이라는 대형 프랜차이즈에서의 서비스와 CS에 대해 배웠다. 그때는 몰랐다. 그때 아르바이트 시급이 2650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배달이라는 아르바이트는 가장 많은 시급을 받을 수 있었다. 4000원에 건당 500원 정도로 기억하는데, 하루 일당이 그럼 8시간 근무하면 32000원에 배달을 20개가 면 42000원 정도가 되니 보통 아르바이트의 2배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주방으로 들어가서 면허를 따고 배달로 전직(?)을 하며, 시간당 효율을 높였던 경험이었다.
또 나는 서비스가 익숙하다. 고객 접점에 늘 있었다. 하루는 피자 배달을 갔는데,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집이었다. 아무래도 첫 고등학교 진학 후에 선생님이 셔서 우리 집 가정 형편을 잘 알고 계셨고, 난 그 집을 가서 헬멧을 벗지 못했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나를 알아보셨는데, 거스름돈을 그냥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그 아파트 호수가 기억날 정도로 생생한 순간이었으니깐 말이다. 처음에는 혼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내 격려를 해주셨는데, 내가 왜 헬멧을 벗지 못했고, 왜 걱정을 했을지를 생각해보면, 상대방 입장에서가 아니라, 내 입장에서 이런 모습이 초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랬다.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된 것 들이다.
대학생 때는 엄마 친구 숯불 닭갈비 집에서 숯불을 피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 현장에 필요한 기술을 나만의 노하우로 만들어 효율을 높이자.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어렵고 고된 일일 수 있다. 매일 같이 입술이 부르 텄으니 말이다.
그때 당시 숯불 닭갈비라 손님이 오시는 만큼 숯불을 펴야 했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다치거나 속도를 못 맞춰서 불만이 생긴다거나 하는 일들이 생겼다. 하루는 출근하자마자 숯불 하나를 완전하게 익히는 연습을 했다. 생각해보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고, 나는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했었다. 처음에는 그때그때 숯을 익혀서 내보내려고 했는데, 그것보다 잘 익은 숯을 베이스로 주변에 새 숯을 둘러주면 더 좋다는 걸 알았고, 그 이후로 계속 그렇게 속도도 숯을 아끼는 효율도 몸소 배워갔다.
지금 생각보다 숯에 불도 잘 안 붙고, 무겁고, 뜨겁고 생각해보면 참 힘든 일이었다. 지금도 이모에게는 너무 감사하다, 장사가 잘 안돼도 월급을 꼬박꼬박 친구 아들이라고 챙겨주셨다. 지금은 가게 문은 닫으신 상태다.
전역 후 우체국, 세무서 등 관공서 아르바이트도 겸했었다.
>> 문서로 일하는 방법, 책상 앞에서 일하는 방법과 이동하면서 일하는 법을 배웠다.
군 전역 후 낮시간을 1-2달 정도 비는 시기가 있어서 친구와 함께 관공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우편집중국, 세무서 등에서의 일이었는데, 관공서 단기 알바라고, 그 당시 꽤 꿀알바라고 소문난 일이었다.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했거든...... 와 그런데 생각보다 4시간을 앉아서 문서를 정리하고, 컴퓨터로 일을 하는 시간은 끔찍했었다. 친구 녀석 한놈과 같이 했는데, 내가 그놈 업무까지 해야 할 판이 었으니, 그래도 그 친구나 나나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때 이야기를 꽤 많이 하는 걸 보면, 분명 좋은 기억이라 생각된다.
책상 앞에서 하는 일은 꼼꼼함과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출근을 하거나 퇴근을 하는 시간, 그러니깐 책상 앞에 없는 시간은 오늘은 출근하면 이런 일을 해야지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 이렇게 계획과 실행을 나눠서 하니, 데스크에 앉아서 정리를 하고 생각을 해내려는 친구들과는 달리 우리가 월등했다. 업무 분배도 마찬가지로 친구와 나눠하다 보니 늘 칭찬을 받았다. 우리는 서로 뭘 더 잘하는지 알았으니깐,
지금도 그렇다. 책상 앞에 앉는 순간 아무 생각 못한다. 그때부터는 엉덩이가 일하는데, 그건 하루로 불가능하다. 엉덩이 붙이고 밤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생각한다면 다르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대한민국 대부분이 평균 주 40시간을 똑같이 누구나 일하고 고민한다. 그럼 엉덩이 안 붙어있을 시간에는 머리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게 곧 내가 인정받는 방법이 될 테니 (인정을 받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왕 하는 거 인정받으면 좋지만,)
20살때부터 사용하던 제테크 수첩, 10년만에 꺼냇네.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는 1일 공사판 현장에 가서 일했다.
>>절대 돈 빌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살아가 보면, 정말 급하게 돈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도 대학생 치고 수입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 대신 잠자는 시간이 하루 2시간 정도였지만) 하지만, 얼마를 벌던, 수입이 얼마던 간에 내 용돈은 정해져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재테크, 강제 저축에 들어갔다. 사실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것도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체크카드로 사용을 해왔으니 말이다.
부모님께서 늘 빚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힘들어하셔서, 어려서부터 나도 어쩌면 그 단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했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면 보험이 해결해줄 거라 생각했고, 내가 위에서 말하는 급하게 돈이 필요했던 순간은 무언가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을 때의 상황 인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지금 사지 않아도 내가 살아가는데 지장도 없고, 생각보다 물질의 소유욕은 길게 가지 않는다. 그래서 없으면 안 쓰고 안 먹고 안 입는다. 그리고 당장 돈이 필요하면 그때는 당장 내 건강과 내 시간과 바꿔서 가치교환(?)을 늘 성사시켰다. 지금도 빚은 하나도 지고 있지 않다. 남에게 돈을 빌린다는 의미를 그 사람의 건강과 시간을 빌려온다고 생각하면 과하지만, 그렇게 과하게 생각하면 쉽게 돈을 빌릴 수도 없다.
사업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쉬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갔을 때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시작했다면, 그 전에는 혼신을 다해 사업을 성공시키는 게 훨씬 중요한 것이다. 사업의 성공에는 파이낸스 프리덤이라는 것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동생과의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동생도 돈을 절대 빌려주거나 빌리지 않는데,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평소 탐내던 나의 지갑을 주었고, 나는 다음 날 아침 동생을 데리고, 공사현장으로 가서 우리는 각각 일당을 4만 원 받았고, 그 4만 원은 동생의 동의 없이(?) 나에게 왔고, 지갑은 동생에게 갔다. 그때 동생은 꽤 당황하고 억울해했지만, 그 이후에도 동생도 돈이 필요할 때는 종종 공사현장으로 갔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유일하게 나에게 돈을 꿔준 사람이자, 빚 없는 사람이다. (나보다 동생은 더 일찍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밤에는 대리운전과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고, 주방일을 했었다.
>>야간 근무는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새벽에 나가거나, 밤에 일을 하다가 창밖을 보거나 할 때 가끔 뿌듯하다.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겠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놀고 있네. 그런데 나는 일을 하고 있네, 그러니깐 나는 돈을 조금 더 벌어도 되잖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는 건데, 왜 불평이지? 불만이 있지?
나는 20대 초반 체력이 좋을 때의 모든 건강과 시간을 시급과 바꾼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할 것 같다. 야간에 일을 하면 시급도 더 높았고,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은 그 시간에 돈을 쓰는데 나는 시간이 없어서 돈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니깐, 공평한 시간을 버는 시간과 쓰는 시간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쓰는 시간을 10% 미만으로 줄이면 된다. 그게 내가 잡생각과 잡 소비를 안 하는 비결이었다.
주말 낮에는 화장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좋아하는 일이라 생각되면, 잘 몰라도 주변을 맴돌아라.
"안녕하세요 공주님, 안녕하세요 왕자님 에뛰드 하우스입니다" 고객들이 매장에 들어오시면 늘 하던 인사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했던 브랜드를 위한 브랜딩 같다. 그때는 몰랐는데, 메뉴얼이었고, 좀 쑥스럽고 민망했지만 말이다. 난 어쨌든 그때는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지만, 결국에는 화장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도 우리를 생각보다는 잘 모른다. 화장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할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매장 10군데 넘게 나는 채용이 안되었고, (남자라고) 마지막 순간에 손을 잡아주신 사장님이 에뛰드하우스였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고 관심 많은 브랜드는 누가 뭐라 해도 에뛰드하우스인 것 같다. 살면서 정말 참 많은 기회를 주었던 곳이기도 하고,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곳이기도 해서이다. 늘 화장품 근처에서 수년간 맴돌았던 일은 이번 생애 내가 가장 잘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대학 생활 내에 공모전들, 활동들, 화장품 회사에서의 인턴 경험들, 직장생활에서의 경험들, 지금 창업의 씨앗으로써의 모습들까지도, 내가 왜 화장품을 좋아했는지, 좋아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실행해야 할 것들을 잔뜩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주변을 맴도는 것이다. 확실하지 않으니 일단 다 해보는 거다. 자격증도 따 보고, 공부도 더 해보고, 이럴 때 하는 공부가 입시 공부가 아니라, 나에 대한 공부인 것,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버티컬 한 공부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주변을 맴돌다 보면 보이는 "해야 하는 것" 들이다.
결국 전문성과 연결될 테니깐 말이다. 전문성을 다 갖추고 시작할 필요는 없다. 그저 죽을 때까지 주변을 맴돌며 내려놓지 않고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만들어서 블로그에 약 6-7년간 약 3천 개 정도의 포스팅을 했었다.
>>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6년간 약 3천 개의 포스팅이라면 1년 365일이니깐, 2190일 하루에 평균 1개 이상 찍은 꾸준히 10년간 올렸다는 뜻인데, (현재는 지워진 혹은 지운 포스팅도 상당히 많다)
좋아하는 일이란 먹고 자는 일 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나는 기록에 남기는 일들을 여전히 좋아한다. 누군가 봐주면 좋은 것이고, 봐주고, 좋아한다면 동기부여가 되어 더 많이 쓰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꾸준하게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한다는 것의 의미가 중요하다.
발차기를 1000가지를 한 사람보다, 한 가지 발차기를 1000번 한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1만 시간 동안 그 생각만 하고 그 행동만 한다면 전문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믿는다.
(지금 브런치도 다 써놨는데도 잘 못하고 있는 이유는 어느 순간 싫어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여서 조심스럽게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도 40을 준비하며 내 기록이 중요하기 때문에 조금은 폐쇄적이고 조금은 덜 노출이 될 것 같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일 수 도 있겠다. 우연히 들어온 브런치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것을 이제야 봤다, 댓글 기능도 사실 몰랐다.)
2011년도에 창업해서 아직도 간직하고 있고 쓰고 있는 사업노트, 스케쥴정리, 수첩들. 이 브랜드 좋다.
이거 말고도 더 많은 실행들이 있지만, 그때는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했던 일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 과거의 경험들은 현재의 의사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모습에도 연관되어 삶은 유기적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좋지 않은 경험들 좋았던 경험들, 잘못했던 순간, 잘했던 순간, 부끄러운 순간과 보람 있던 순간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주 아주 중요하다. 내가 지금도 새벽 5시면 일어나서 무언가 할 것들을 찾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하는 하나하나 숨 쉬는 작은 행위조차도 모두 의미 있다. 또 어느 정도 자아가 생기고, 경험이 관습으로 잡혀서 바뀌는 30-40대의 나보다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덜 성장한 20대에게 더 많이 해당되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한 마케팅 포럼에서 찍은 사진, 말해야할 시기와 들어야할 시기가 있다. 무조건 듣는게 좋은 건 아니다.
나는 다신 20대로 돌아가라면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지금은(?) 이야기한다.
돌아가도 내 상황이 똑같다면 나는 그 힘들었던 시기를 다시 또 겪어야 할 테니깐 말이다,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대를 만들자. 후회 없는 20대를 만들자. 이게 20대의 특권이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30대 40대를 만들 수 있다. 갑자기 내가 원하는 30대 40대는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20대라면 지금 무언가 할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다면, 성공의 여부를 떠나서 하루빨리 실행했으면 좋겠다.
그 실행들과 나도 모르는 경험들을 쌓여서 당신의 앞날에 더 큰 성공을 만들어 줄 테니, 그리고 자꾸 말해라.
자꾸 말하면 실행하게 된다.
"하고 얘기해"
세상에 불필요한 경험은 없으니깐, 어떤 일이든 내 일인 것처럼 소명감을 갖고 한다면, 언젠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지 않은 시간은 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