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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 Jan 18. 2023

한 걸음 더 가까이

설레고 귀찮은 그런 여행,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대학시절 흑백 사진 동아리 할 때
 전시 준비를 하며 선배들이 내준 과제에는 포트레이트가 있었다.
 
 니콘 FM2 50mm 단렌즈로 포트레이트를 찍으려면 어찌나 가깝게 가야 하는지 ….
 그게 그렇게도 어렵고 힘들어서 구도 사진만 내내 찍다가
 전시를 앞두고 한 선배가 내어준 과제에 포트레이트를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북 지역의 5일장을 돌며 노력은 했지만, 

포트레이트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정쩡한 구도였다.
 사평을 하던 선배가 나를 앉혀 놓고, 조용히 말했다.
 
 문숙아,
 단렌즈로 포트레이트를 찍으려면,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해.

 
 내가 찍는 사람의 눈에 내가 비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
 좋은 포트레이트가 된다.
 
 누군가에게 그 정도의 거리에 다가간다는 것은 믿음이고 사랑이고 용기다.
 
 나는 너를 헤치지 않아.
 너의 눈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어 있어.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할머니, 안 추우세요? 많이 파셨어요? 이건 얼마예요?"로 시작해
 구구 절절 할머니 할머니의 인생사를 들으며,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유… 늙은이 얼굴은 찍어서 뭐해.”
 라고 쑥스러워하시면서도 손녀뻘 되는 대학생의 과제에 동참해 주시던 분들.
 
 1학년 내내 아르바이트 한 돈을
 필름과 인화지에 쏟아부으며


100롤 가까이 포트레이트를 찍었다
 
 어두운 암실에서 빨간 불빛 아래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 엄마, 아저씨…들의 얼굴이 인화지에  떠오르면
 그분들이 이야기해준 것들도 함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포트레이트는 한 사람의 인생이구나.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정해진 질문, 정해진 대답이 아니라
 테이프를 몇 배를 쓰며 인터뷰를 했다.
 편집이 걱정되는 것보다,
 이 촬영을 계기로 누군가의 인생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귀했다.
 
 누군가의 삶엔 늘 깨달음이 있고, 배움이 있고, 드라마가 있다.
 그래서 묘지를 간다거나, 포트레이트 작품을 보는 것을 즐긴다.
 
 몇 년부터 몇 년까지 살다가 떠났다. 어떤 사람이었다…라는
 간결한 문구 너머 그 사람을 생각해 보는 것.
 포트레이트 한 장에 그 사람의 인생을 유추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루이지애나에서는 평생 인물 사진을 찍었던 아우구스트 잔더 작품을 오래오래 봤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모두 역사고, 큰 작품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사진을 다시 찍고 싶다고 생각했다.
 
 멋진 풍경과 예쁜 것들 말고

누군가의 눈을 들여다보고, 

천천히 한 장 한 장 찍는 그런 사진

그리고 그렇게 공을 들여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시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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