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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l 12. 2023

나이에 계절이 있다면

맹렬한 여름, 가을 길목에 서서



한여름에 태어난 사람답지 않게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여름에 태어났다고 해서 여름을 좋아하는 법이란 없지만) 그래도 태어나는 순간 뜨겁게 느껴졌던 열기, 주변의 소음, 잠들었던 어느 날엔가 들었을 매미소리들을 생각해 보면 태어나기 전부터도 제법 친숙한 계절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난 여름이 싫었다.


벗어도 벗어도 덥고 걸어 다니면 팔다리에 물이 맺혀 뭘 해도 축축 쳐지게 만드는 이 계절은 나의 이십 대를 그대로 담은 계절 같다.



나이에 계절이 있다면 나는 어느 쯤에 서 있을까.

구름이 걷힌 제법 높아진 하늘 아래 아직 낮은 뜨겁지만 가을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 끝자락 즈음이 아닐까.



여름은 참으로 맹렬한 계절이다. 나의 이십 대도 맹렬한 세월이었다.


끝을 몰라서 그리도 가열차게 우는 건지 끝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치열하게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매미소리와 같이 나의 이십 대는 한없이 치열했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스무 살, 중반, 서른을 바라보던 후반까지 매 순간이 낯설고 도전의 연속이었다. 후반 즈음엔 끝이 다가온다는 불안감에 더욱 치달았던 것 같다.


 

자라기만 할 뿐 딱히 수확이 없는 여름처럼 내 이십 대의 결과물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스무 살 진입부터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한 덕에 자존감은 낮아지고 노비 마인드가 장착되었다. 학교를 다니며 각종 캠프, 대회에 참여했지만 이력서 몇 줄과 자기소개서의 경험란에 쓰일 몇 줄이 더 생겼을 뿐 취업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공부를 했던 스물 후반엔 서른이 다가온다는 불안감과 모두 다 실패했다는 좌절감을 안고 시험에 도전했지만 떨어졌다. 맹렬하게 울다가 스러져버린 매미가 꼭 내 신세 같았다.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설레는 여름 끝자락의 밤처럼 서른 중반의 요새는 하루하루가 설레는 나날들이다. 특별한 성과는 보이지 않는 가을의 초입처럼 가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언젠가는 곧 다가올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과 같이 든든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조금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여유도, 웬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함을 갖추게 되었다. 대신 걸어 다니는 길목에서 문득 바라본 하늘을 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


어디선가 본 구절이다. 오늘의 행복을 주으러 다니는 나날들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춥고 혹독한 겨울이 올 수도 있겠지. 

그럴 땐 따뜻하게 있을 수 있는 아랫목과 같은 평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좋은 순간을 살면 좋은 삶을 살게 될 테니까."

-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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