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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an 08. 2024

다시어트#2

고개를 든 강박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근육통이 아닌 특유의 몸살기다. 다이어트 시작을 선언한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 체지방이 빠지는 신호라고 보긴 어렵다. 이건 지나치게 오버페이스로 지내왔다는 신호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제일 먼저 시작한 건 아침 운동이다.

지금까지 주로 저녁에 PT를 받거나 간단히 유산소를 해왔었는데 여의치 않아 지자 아침 운동을 결심하고 일주일 정도 수행했다.


당직이 아니면 이른 새벽부터 움직이는 일은 드물었는데, 다짜고짜 새벽부터 일어나서 운동을 하기 시작하니 피로가 누적됐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 이긴 한데 문제는 페이스 조절을 못한 것 같다.


안 하던 새벽운동을 하는 것도 몸이 놀랄만한 일인데 전날 늦은 저녁까지 야근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못할 때에도 벌써 이러면 안 된다며 채찍질을 해가며 저강도로 유산소라도 타고 오곤 했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산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강도의 유산소를 타고 오니 상쾌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몸만 더 피곤해졌다. 피로만 더 쌓인 몸으로 일을 하려니 집중해야 하는 일에도 지장이 온다.




운동 강박.


바디프로필이 끝난 후 얻은 선물(?)이다. 무모할 정도로 달리기만 한 덕분에 헬스장 근처에도 가지 않으면서 운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끊임없이 느끼는 운동 강박이 생기는 역풍을 맞았다.


프로필을 준비할 당시 먼저 찍은 사람들의 유튜브를 끊임없이 시청했다. 화면 속의 그들은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했고 결국엔 10프로대의 체지방률을 달성하고 찍었다. 보면 나처럼 과체중인 상태에서의 시작이 아닌 표준 체지방률에서 표준 이하로 내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난 이 공식을 내 상태를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적용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비교하고 좌절했다. 다른 사람들은 천국의 계단을 1시간씩 매일 탄다는데 20분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싫으니 더 피하게 되고 좌절하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자꾸만 지난번에 유산소가 부족해서 살이 덜 빠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고 아침마다 유산소를 탄다. 당연히 안 하던걸 하게 되면 피곤하고 습관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안다.


문제는 나를 위한 운동인데 또다시 이 목적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운동이 아니라도 뭔가 하나를 시작하면 총력을 다하는 특성상 자신을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쉴 때는 잘 쉬어야 몸도 회복되고 수행능력도 높아진다.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는데 여전히 잘 안된다.


그리곤 하나마나한 저강도의 유산소를 타고 온다. To Do list에 체크를 하듯 어떻게 했냐를 보지 않고 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의무가 된다. 의무가 된 운동은 곧 또 다른 노동으로 이어지고 하기 싫은 일이 된다.




내일 아침은 쉬세요.


운동하는 동안 지금 트레이너 선생님께 처음으로 쉬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잡은 장기적인 기간에 비해 초반부터 너무 타이트하게 식단을 잡고 있으며 무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래서 첫 단추가 중요하다. 내게는 다이어트하면 늘 배고프고, 웨이트는 힘들고 그 웨이트가 끝나고 하는 유산소는 죽을 맛이라는 기억의 다이어트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번에도 삼시 세 끼는 비록 사 먹긴 하지만 탄단지 정량의 다이어트 도시락 혹은 샐러드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세끼 외에 군것질은 절대 하지 않는다. 커피 외에는 대체당이 들어간 음료도 먹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초반부터 지나치게 무리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몸이 안 아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급격히 바뀐 생체리듬, 큰 폭으로 감소한 섭취량, 늘어난 피로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강박이 얼굴을 드러냈다.


이제 2주 차다.

한 달을 기준으로 이상적인 체지방 감소량은 3~4Kg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체중은 일부러 재지 않고 있기는 한데 다음 달 잴 인바디에서 줄지 않아 크게 좌절할까 봐 벌써 걱정이 된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속상하다.


여지없이 드러낸 강박과 초조함. 이걸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운동이 습관이 되어야 하듯, 쉴 때는 푹 쉬는 걸 습관으로 들이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뜬금없지만 요새의 나는 직장에서도 총력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야근을 하고 부족하면 주말에도 출근을 한다. 그런 와중에 이 에너지를 쪼개어 다이어트에 쏟아붓고 어느 것 하나 대충 하기 싫어서 달리다 보니 결국 병이 났다.


이렇게 해서는 오래 달릴 수 없다.


페이스 조절, 다이어트 첫 주차의 교훈이다.




다이어트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니 바디프로필 준비하던 때가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네요.


누군가 새 해 목표로 바디프로필을 계획하고 있고 심지어 그것만을 목표로 한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고 싶어요.


바짝 말린 몸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을 얻고 운동강박과 식이장애를 얻었고요.

그리고 그걸 극복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겨냈다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했는데도 또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강박을 느끼고 나니 쉽지 않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보여주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면 멈추세요.

더군다나 재미없다고 느끼면서도 남들이 다 한다는 이유로 헬스를 하고 있다면 그만두세요.

본인이 했을 때 재밌는 운동을 하시는 걸 추천해요.


정말 다양한 운동이 있고 습관이 들기 시작하고 건강해진 나 자신이 느껴졌을 때 준비해도 늦지 않는 게 프로필입니다. 프로필만을 위해 준비한 몸은 심하면 한 두 달안에 금방 돌아옵니다.


어떤 순간에도 운동의 목적은 나를 위한 목적이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저 또한 금세 잊어버린 것 같아서 다시 다짐하면서 노파심에 덧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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