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완이의 첫인상은 좀 어리숙해 보였습니다. 5학년은 이제 알록달록한 나비색 옷을 입다 거무칙칙한 번데기 색의 옷으로 점차 탈바꿈을 하는 그런 시기인데요. 개학날 주완이는 5학년은 좀처럼 쓰지 않는 유치한 파란색 돋보기 안경테를 삐뚤게 쓰고 와서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돋보기 안경알엔 잔뜩 잔기스가 나 있어서 왕방울만해진 눈동자가 잘 안보여서 답답하더라고요. 가만 보니 윗도리에는 뭐가 막 묻어있고 머리카락이 삐쭉 뻗쳐있었습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약간 긴장했으나, 웃으며 인사해줬습니다.
앞에 나와서 한명씩 학교에 제출할 사진을 찍는 시간이었는데, 다들 첫날이라 무뚝뚝한 얼굴로 재빨리 찍고 서둘러 자기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김주완.”
주완이가 엉거주춤 앞으로 나왔습니다. 삐뚤어진 파란 안경에 어색한 표정으로 절 바라보던 핸드폰 화면 속 주완이는, “하나, 둘, 셋! 찰칵!”
하자마자 검지손가락을 양볼에 푹 찌르고 얼굴을 잔뜩 구기며 “뀨!!”하고 활짝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주완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친해진 날을 기억합니다. 햇살 좋은 봄날에 저는 조퇴를 쓰고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를 탈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 건너 핫도그 가게 앞에서 한 어린이가 길거리에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상가 벽에 공같은 걸 던지고 다시 줍고 혼자 그렇게 놀고 있는겁니다. 거리에 바쁘게 지나가는 어른들 사이에서 안 어울리는 행동을 하고 있는 주완이가 갑자기 보물같이 느껴져서, “주완아!!” 하고 크게 부르면서 파란불이 깜빡이는 횡단보도를 쏜살같이 가로질렀습니다.
“뭐해?”
“선생님이다! 저 핫도그 기다리고 있어요.”
“핫도그 나올때까지 같이 놀자.”
핫도그 가게에 들어가서 “저 친구가 시킨 거랑 똑같은 걸로 하나 주세요.” 한 다음, 가게 밖에서 주완이랑 공놀이를 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건 공이 아니라 주완이의 애착 인형 ‘개똥이’였습니다. 우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개똥이를 가까이서도 주고받고, 멀리서도 주고받고, 높이 던지기도 하며 놀았습니다. 개똥이가 한손에 착! 하고 감기는 손맛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우리는 합이 아주 잘 맞았고, 저는 좀 우쭐해졌습니다. 개똥이를 하늘 위로 점점 높이 던질 때마다 가슴이 뻥 뚫리며 하늘이 점점 더 파래졌습니다.
그러다가 주완이 핫도그가 나왔습니다. 주완이는 명랑하게 핫도그를 받아들고 점원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나를 가리키며, “우리 담임선생님이에요!” 하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더니 인사도 없이 후다닥 사라지는게 아니겠어요! 내 핫도그는 아직 안나왔는데!
매정한 김주완이 떠나가고, 전 꼼짝 없이 점원과 둘이 멀뚱멀뚱 남겨졌습니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지나가고, 핫도그는 나올 기미가 없고..백번의 고민 끝에,
“주완이를 아세요?”
하고 물으니, 점원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잘 모르겠어요..” 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저는 그날 알게되었습니다. 핫도그는 절대 패스트 푸드가 아니란걸..
그날 이후 저는 더이상 그 핫도그 가게에 가지 않습니다. 주완이도 더이상 개똥이를 가지고 놀지 않습니다. 개똥이는 엉덩이가 터져서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는 왠지 섭섭했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주완이는 기스난 파란 안경을 차분한 갈색 안경으로 바꿔 끼고 왔습니다. 멋지다고 해줬지만 속으론 사실 조금 아쉬웠습니다.
다행히 주완이는 여전히 머리 한줌이 꼭 튀어나온 채로 학교를 오고, 가끔 옷을 거꾸로 입고, 여전히 체육 시간에 운동화 끈 리본을 묶어줘야 합니다. 연필을 희한하게 잡고 글자도 무지막지하게 크게 쓰고 다른 애들은 시시하다고 안쓰는 학교 물통에 물을 담아 마십니다.
주완이가 졸업할 즈음에는 머리도 단정해지고, 글씨도 예쁘게 쓰고, 운동화 리본도 능숙하게 묶게 될 것입니다. 감정도 잘 숨기게 되고 첫날엔 눈치껏 행동하는 법도 알게되겠지요.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엔 내가 알던, 파란 안경을 쓴 주완이는 어디로 가버리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어린 시절의 주완이는 어디에 남아있을까요? 그때도 전 주완이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핫도그는 빨리 익길 바라면서 주완이는 천천히 자라면 좋겠다는 제 마음이 이기적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너무 멀리 가진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개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