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 김민철의 기록
어느 날 서점에서 모든 여행의 기록과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남색 책과 흰색 책. 두 권은 흡사 세트처럼 보였고 컬러에 폰트까지 단정했다. 손에 딱 잡히는 책의 모습에 선자리에서 절반을 훑어 읽곤 책을 구입했다.
일상의 이야기를 때론 웃음이 픽 나오게 에피소드를 가진 일상처럼 적었지만 그(녀)의 책을 통해 쓰기의 의미를 느꼈다. 책머리엔 기억하지 못해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고 말하지만, 그(녀)에게 쓰기란
읽고, 듣고, 보고, 경험하고, 지금까지 말한 그 모든 행위가 마지막에 ‘쓰다’에 도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점일지도 모른다. 나는 읽고서 쓰고, 보고서 쓰고, 듣고서 쓰고, 경험하고서 쓴다. 뛰어난 문장가도 아니면서 , 그럴듯한 시나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쓴다. 아무도 못 보는 곳에도 쓰고, 모두가 보는 곳에도 쓴다. 쓰고서야 이해한다. 방금 흘린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방금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왜 분노했는지, 왜 힘들었는지, 왜 그때 그 사람은 그랬는지, 왜 그때 나는 그랬는지, 쓰고 나서야 희뿌연 사태는 또렷해진다. 그제야 그 모든 것들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쓰지 않으래야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 모든 요일의 기록 259p.
이런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보다 그녀가 쓰기에 훨씬 더 노련하고 재능이 있다. 그녀는 쓰는 것으로 먹고살지 않는가?)
기록의 행위를 통해 평범했던 일상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밥을 먹었다”를 간단한 두 단어로 적는 것이 아니라 갓 지은 밥의 따듯함, 시장에 가서 시골 할머니에게 산 콩이 살아있는 청국장 덩어리의 기억, 두부와 버섯, 대파를 송송 썰어 찌개에 넣고 보글보글 끓어 올라오던 청국장찌개의 모습, 집안을 가득 채운 청국장에서 느껴지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 밥 위에 청국장을 한 숟갈 얹고 들기름을 살짝 곁들였을 때 올라오던 구수하고도 고소한 향기를 결합하여 하나의 글이 탄생하는 그 행위가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
이처럼 기억과 느낌, 추억을 섞어 매일의 기록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