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방통 Jul 10. 2021

동생 결혼식 축가를 하게 되었다

이 노래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적, "다행이다"


고등학교 친구의 청첩장 모임에서 동생이 곧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랑 같이 게임하던 리포님 말이지(동생의 오버워치 아이디가 ‘LIFO’였기 때문이다)? 너보다 먼저 가는구만? 응, 그렇게 되었어. 축하한다! 그런데 내가 고민이 있다. 뭔데? 동생이 나한테 축가를 부탁했거든.

사실 동생이 내게 부탁한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년 초에 태어날 조카의 이름. 이 이야기를 들은 소중한 동기들은 그 똑똑한 머리들을 맞대 멋진 이름을 두 다스는 지어줬다(이성계, 이소룡, 이대룡(?), 이행시(?)까지는 그렇다 치는데, ‘이더리움’은 정말 건전한 정신세계에서 나올 수 없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하나가 축가. 축가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였는데, 결혼이 겨우 3주 남짓 남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노래를 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명확한 소거법에 따른 선택이었는데, 가사도 제대로 못 외우고 춤 같은 걸로 뭉갤 수도 없으니 그나마 이렇게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막상 동생이 정식으로 축가를 부탁해오니 식을 망치게 될까 엄청 떨렸고, 한 번의 번복 끝에 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친구들에게 축가를 추천받게 된 것이다.
같이 락페스티벌을 다니던 친구는 새벽에 주차장에서 비틀즈의 “Here Comes the Sun”을 떼창했던 추억을 얘기했고(기타곡이라 탈락), 대학교에서 메탈 동아리를 한 친구는 더 크로스를 넌지시 추천했다(이 친구는 두 주 후 친구 결혼식에서 “당신을 위하여”를 부르게 된다). 나는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비장의 무기인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은 어떻냐고 물어보았고 곡도 가사도 좋지만 너무 올드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최고의 선곡은 다른 자리에서 나온 푸 파이터스의 “THE BEST THE BEST THE BEST THE BEST THE BEST”였는데 내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이적의 “다행이다”였다.

Foo Fighters, <THE BEST THE BEST THE BEST THE BEST THE BEST THE BEST>


다행이다? 이곡이야말로 축가의 정석 아닌가. 가장 친한 친구이자 고등학교 동기 결혼식의 축가를 거의 도맡아 하는 친구 리처드 박인만은 이곡을 일컬어 “구관이 명관이며, 절대로 중간 이상 가는 곡”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이곡은 내게도 알맞았는데, 음역대도 그리 높지 않은 데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리듬도 명확한 정박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좋아하던 노래이기도 했고(물론 이적에 한정 짓자면 “다행이다”보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더 내 감정을 자극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동생이 이 곡을 이미 “너무 진부하지 않아?”라며 한번 쳐냈었다는 거다.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적어둔 노트를 꺼내 훑어봤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소중히 모으고 불러온 노래들의 감정선이 도저히 축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양희은의 “그 해 겨울”? 벡의 “Already Dead”? 톰 요크의 “Suspirium?” 결혼식을 최소 어색한 분위기, 최대 피바다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여기 적혀있는 서른 곡 모두 앞으로 봐도 뒤집어 봐도 축가로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일주일 후, 나는 “My Love”, “다행이다”, “비밀의 화원”까지 세 곡을 건넸고, 짧은 통화 끝에 축가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My Love”가 폴 매카트니의 윙스 시절 최고의 피아노 발라드라고 설명했지만, 이런 부연 설명이 들어가는 순간 축가로서는 이미 망한 것이다. 동생은 비밀의 화원을 골랐지만 생각해 보니 결혼식이 겨우 두 주 남은 상태라 기타 원곡을 편곡할 시간이 없었다.
동생이 “그러면 보기는 뭐하러 줬냐?”는 볼멘소리를 하긴 했지만, 일단 곡이 정해진 후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코드워크를 연습하고, 가사를 외웠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도 한 번 보여드렸다. 돌이켜 보니 꽤나 열심히 연습했다.

Paul McCartney & Wings, "My Love"


20년 동안 만나지 않은 그리 친하지 않은 친척들 수십 명과 건성의 인사를 하고, 동생과 나를 헷갈린 몇몇 사람에게서 결혼 축하한다는 말을 다섯 번 정도 듣고,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너는 결혼 언제 하냐는 이야기를 삼십 번 정도 듣고 나니 축가를 부를 차례였다. 결혼식장의 영창 미니 그랜드는 기대 이상으로 상태가 괜찮았다. 긴장한 탓에 템포가 빨라졌고 중간에 가사를 한번 틀리긴 했지만(‘그대의 저린 손’은 못 잡아주고 ‘그대와 마주 보며 숨’만 두 번 쉬고 말았다), 곡이 중간에 끊기거나 잘못된 베이스음을 내려치지는 않았다.

단음의 멜로디를 뒷받침하는 서정적인 코드워크와 리듬의 단조로움을 메꿔주는 베이스 라인, 일상의 어두운 순간으로 사랑의 감정을 풀어내는 가사까지. 노래를 부르고 있으려니 다시금 정말 멋진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하다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중간에 신랑신부와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둘 다 웃음을 참느라 필사적인 표정이었다. 저 저 쌍놈 새끼. 내가 축가 때문에 얼마나 고민했을지 아는 걸까.


올라오는 기차에서, 이렇게 원만하게 마무리될 축가를 가지고 왜 몇 주 간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걸까 생각했다.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노래를 한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오래 고민했을까. 정작 동생은 별 생각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똑같이 남동생이 있는 내 애인에 따르면, 동생이란 것들은 다 이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생의 결혼식을 망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남의 결혼식에서 20분 간 색소폰을 부는 아저씨가 되는 사태를 피해야 된다는 자의식 때문에?

아무래도 지난 두 달이 우리 가족에게 급작스런 변화의 시기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선언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두 달 동안 동생은 뻔뻔했고, 어머니는 신경질적이었고, 그 소용돌이 사이에서 나는 갈팡질팡했다. 지나고 나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감정을 서로 교환했고, 가족 사이의 마찰은 거의 처음 겪는 일이라 내가 하려고 했던 중재 비슷한 시도는 자꾸 실패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냥 중간에서 어머니와 동생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기만 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어떤 부채감이 축가의 부담감으로 이어졌던 것 아닐까.


뭐 아무래도 다행이었다. 결혼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은 참석한 우리 가족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축가 잘했다는 동생의 카톡을 받은 지금에야 내 가슴 위에 얹혀있던 묵직한 돌도 사라진 기분이다.

이 동생이란 놈은 나보다 키가 10cm는 더 큰 데다 이제 멋진 아내까지 함께하게 되었지만, 내 꿈에서는 아직도 나보다 10cm 작고 머리만 크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모습으로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녀석이 무탈하게 잘 커서, 그리고 내가 그의 인생에 한 구석을 차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휴, 진짜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목표는 하농(딱히 치고 싶진 않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