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번째 수업 : 쇼팽, 에뛰드 Op.10-12
12월 22일 수요일.
드디어 에뛰드! Op.10-12을 처음 쳐봤다. 첫 수업이라 정말 별 기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선생님이랑 악보를 끝까지 한번 보기는 했다. 선생님이 보통은 내가 여유 있고 유머러스한 자세로 수업을 받는데(특히 브람스일 때), 오늘은 온몸이 완전 긴장하고 공격적으로 친다고 숨 넘어가도록 웃으셨다. 마음가짐의 차이가 몸으로 그렇게 선명히 드러나나 보다
왜 그렇게 긴장했느냐면 원래 에뛰드를 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당히 우아하고 내성적인 곡을 혼자 즐기려는 것이 목표였지(가령, 브람스 Op.117-2나 Op.119-1 같은) 모두가 아는 화려한 곡은 손대기 두려웠다. 그런데 지난 레슨에서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을 정말 치고 싶은데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했더니, 선생님께서 그 곡은 쇼팽의 곡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곡이라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더 좋겠다고 제안하신 거다. 소나타 2번 1악장을 치려면 우선 스케르초를 하나 쳐보고, 스케르초를 치기 전에 에뛰드 한 두 곡으로 테크닉을 연습하고, 에뛰드가 어려우면 프렐류드를 치는 게 좋겠고, 프렐류드도 어려우면 녹턴 같은 소품부터라도, 하는 식으로.
그래서 에뛰드 악보를 뒤졌다. 먼저 마음에 든 곡은 Op.25-9("나비")였지만 그 가벼움을 내 손으로 절대 표현할 수 없겠다는 좌절감이, 직감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25-1도 칠만해 보이지만 그 부드러움을 만들기는 힘들었다. 10-1은 C장조로 악보가 금방 눈에 들어오지만 손에는 절대 익지 않게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선택된 곡이 "혁명"이라 불리는 Op.10-12였다. 유명세(혹은 악명)와 달리 다른 곡보다 악보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왼손 아르페지오가 복잡하긴 하지만 여튼 악보만 봐도 왼손과 오른손 멜로디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음형 파악이 생각보다 빨랐던 거다.
안전주의자에 겁쟁이라 항상 혼자서도 끝까지 끊기지 않고 칠 수 있을 정도 난이도의 곡을 레슨 받았는데, 이번 곡은 난이도가 무지막지하게 올라서 걱정했다. 막상 쳐보니 배울 점이 엄청나게 많고(피아노 소나타 2번 1악장에 필요한 상당수 테크닉이 앞 두 쪽에서 이미 나온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이렇게 불꽃처럼 연습한 게 얼마만이던가. 그래서 좀 더 오랫동안 붙잡고 연습해보려 한다.
원래는 바흐 이탈리아 협주곡 3악장과 이곡 중에 무엇을 할까, 둘 다 할까 고민하던 차라 두 악보 모두 가져갔지만, 선생님과 한 시간 동안 악보를 보며 난투극을 벌인 결과 앞으로 한 두 달 동안은 이 곡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에뛰드를 치려면 이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하시면서 하농도 이것저것 체크해주셨다. 그리고 차라리 평균율 중에 몇 곡을 같이 치는 게 이탈리아 3악장보다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기대된다. 여름 이후로 바흐를 안친 지 너무 오래되었거든.
그래서, 새해는 아마도 쇼팽과 바흐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