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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방통 Dec 10. 2022

15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의 피아노

이루마, “River Flows in You”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 유튜브 조회수가 1.4억 회가 넘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도쿄 올림픽 때는 클라이밍 결승에서 요상한 리믹스 버전으로 나오더라고..



포항역 주변 땅은 완전히 벗겨져 황량했다. 마지막으로 이 역을 떠났을 땐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지금은 택지 개발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어색했다. 고등학교 앞 터널을 지날 때 즈음해서야 익숙한 거리의 풍경이 기억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15년 만에 내려간 고등학교였다.
고등학교 은사께 연락이 온 건 두어달 전이었다. 모교에서 ‘선배와의 만남’ 강연을 해달라고 하셨다. 삐까번쩍한 교수님 박사님 동기도 많은데 그 친구들한테 맡기면 되지 않겠느냐고 고사하던 와중에, 선생님이 내년엔 학교가 사라진다고 얘기했다. 정확히는 내년 3월에 학교가 새 터로 이사가기로 결정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더 고민하지 않고 내려가겠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장소의 학교, 그 곳의 강당에 있을 피아노가 보고 싶었다.

모든 피아노는 다른 목소리를 가진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면, 특별히 편애한 연습실 피아노가 있지 않은가? 우리 피아노 학원 지하의 영창 그랜드는 솔 음에서 특별한 금속성 배음을 울리는 개성 넘치는 피아노다. 그에 비해 옆방의 야마하 그랜드는 좁은 방에 갇혀있어 그런지 아무리 세게 쳐도 소리와 건반이 무거운 느낌이다.
피아노들은 각자의 기계적 특성은 물론 속한 공간에 따라 각자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공간의 기억을 수반한다. 내게는 살던 곳의 기억을 환기하는 특별한 피아노가 세 대 있다. 대전에 살던 학부생 시절, 소강당에서 쳤던 작은 갈색 그랜드피아노는 닳고 닳아서 까랑까랑한, 거의 하프시코드 같은 금속성 소리를 냈다. 그 피아노로 바로크 음악이나 엘튼 존을 연주했으면 잘 어울렸을 텐데. 서울에 기숙사 지하실에서 만난 피아노는 반대로 가라앉은 대성당 같은 소리를 냈다. 제습기를 일년 내내 틀어놓아도 건반을 누를 때마다 습기가 배어나왔고, 그래서 언제나 눅눅한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그 소리가 내 대학원 시절의 걱정만큼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 피아노가 포항 고등학교 강당에 있는 갈색의 영창 업라이트 피아노였다. 내가 생생히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피아노. 여기저기 부서져서 나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피아노. 군데군데 조율도 어긋나고 건반도 가벼운 피아노. 마땅히 있어야 할 피아노 의자도 없어서 글렌 굴드처럼 불편하고 낮은 의자에 앉아서 쳐야 하는 피아노.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강당으로 올라가봤다. 교실이라기엔 너무 넓고 강당이라기엔 너무 좁은 학교 건물 맨 윗층 한쪽 구석에, 그 피아노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만 뒀던 피아노를 다시 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스트레스를 풀 방도가 없어서였다. 모교는 한 학년에 마흔 여섯명이 다니는 작은 과학고등학교였다. 다모아 백명 남짓 되는 전교생이 2~3년 동안 좁아 터진 기숙사에서 부대끼며 공부했다. 경상북도에서 날고 긴다는 중학생들이 모여서 내신 경쟁을 하니 당연히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어딜 가도 압박과 불안이 느껴지던 곳에서 그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장소가 피아노 앞이었다.
강당 여기저기에 검은색과 갈색 업라이트 피아노, 노래방 기계가 한 대씩 있었는데, 저녁이나 주말이면 학생들이 삼삼오오 강당에 모여들었다. 나는 어떤 날엔 노래방 기계 앞에서 버즈를 불렀고 다른 날엔 친구들이 버즈를 부르는 걸 들으며 악보를 폈다. 자주 이루마의 악보였다.
이루마는 자우림, 말러, 라디오헤드, 쇼스타코비치 같은 이름 만큼이나 내 고등학생 시절을 수놓은 음악가였다. ‘뉴에이지’라는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묶이는 음악이 한창 인기있을 때였다. 친구가 사온 스티브 바라캇 베스트 앨범을 돌려 듣고 서로 이사오 사사키와 유키 구라모토를 추천받고는 했다. 이루마는 그때 막 세 번째 앨범 <From the Yellow Room>을 내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음악가였다. 많은 친구들이 피아노로 이루마를 연습하거나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마 이루마는 21세기에 피아노로 가장 많이 연주된 우리나라 작곡가 아닐까. 나도 그중 한명이었다. 피아노 주변을 얼쩡거리며 조지 윈스턴을 연습해볼까 하던 중, 친한 친구 인혁이가 이루마의 “Indigo 2”를 치는 걸 보고 반해버린 거다(돌이켜보니 이 친구, 나랑 비슷하게 상스러운 놈인 줄 알았는데 너무 멋지게 전주를 연주해서 충격받고 자극받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고른 곡이 “River Flows in You”였다. 화음과 멜로디가 단순하지만 그만큼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움이 있는 음악. 초등학교 3학년 때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둔 후 처음으로 다시 악보를 읽으려니, 한 음도 분간하기 버거웠다. 아랫줄부터 손가락으로 파#, 도#, 라 음을 한 마디씩 짚어나갔다. 몇 마디를 넘기고 나니 잊었던 기억이 돌아오듯 악보를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1학년이 끝나가는 초겨울 무렵엔 일요일 오전마다 피아노를 연습했고 더듬더듬 곡 전체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강당에서 냉기 가득한 건반을 만지다 보면 손이 시려워 손가락이 곱아들었지만, 낮게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이는 먼지는 따뜻해보였다. 악보를 읽고 손가락을 연습할 때는 다가오는 시험의 불안도, 성적 걱정도, 친구와의 고민도 잊고 음악하고만 독대할 수 있었다.
피아노가 위안의 한 방편으로 스며든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였다. 학교는 화장실을 가든, 옥상을 가든, 어딜 가든 다른 사람과 마주쳐야 하는 좁고 폐쇄적인 공간이었고, 그곳에서의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숨조차 고르기 힘든 환경이었음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그 때가 내 마음속에 여전히 아름답고 귀한 시절로 자리한다면, 그것은 아마 다른 좋은 기억만큼이나 피아노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라는 공간에서 피아노를 먼저 떠올린 것도 반대로 그런 이유에서겠지. 그 좁은 곳에서 피아노는 내게 딱 1인분만큼의 혼자됨을 제공해주었다.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혼자가 될 수 있었다. 피아노는 어쩌면 따뜻한 고독의 기계였다.

마침내 “River Flows in You”를 멈추지 않고 칠 수 있게 되었을 때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렸다. 비슷한 때에 조지 윈스턴의 “캐논 변주곡”도 칠 수 있게 되었고, 그 다음은 무소르그스키의 “프롬나드”였다. 이루마를 통해 나는 다시 피아노의 세계로 건너왔다. 아니, 처음 건너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겠다. 어설픈 음표라도 직접 만들었을 때의 기쁨을 아는 피아노 연주의 세계로.
갈색 피아노는 뚜껑과 모서리 여기저기가 닳아 있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지금도 위안을 제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지는 가을 오후 햇살에 피아노의 테두리는 여전히 반짝였고, 나는 이제 곧 없어질 장소의 모습을 카메라처럼 내 안에 최대한 담아두고 싶어서 한참을 빛나는 피아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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