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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Dec 04. 2018

주민참여,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면

나와 나의 삶, 그리고 주변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국이 도시재생 주민을 찾느라 시끌시끌하다

도시재생사업은 2013년 도시재생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로 인해, 그야말로 전국은 도시재생사업으로 들썩이고 있다. 도시재생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쉽게 이야기하자면, 낙후된 도시공간을 사회문화적, 경제적, 환경적으로 살기 좋게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도시 재개발사업처럼 Top-down의 전면철거 후 개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물리적 환경 개선과 함께 사회, 문화, 경제 등 전반적인 삶의 터전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의 주민에게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 도시재생에서 주민의 역할 (국토교통부 공고 제2013-1094호(2013.12.31)) 
주민은 도시재생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 자원을 새롭게 발굴하고,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사업 시행과 이후 운영·유지관리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한,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지방자치단체, 정부, 민간투자자 및 기업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위의 역할에 부합하는 '주민'은 시간이 있어야 하고 창의력도 있어야 한다. 실행력과 기획력도 필요하고 협상력도 필요하다. 자원 발굴, 아이디어 제안, 사업 참여, 협력체계 구축 등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지역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 내야 한다. 지속적으로 지역을 관리하고 운영해야 한다. 


지역사업을 기획하고 토론하고, 운영해야 하는 도시재생지역의 주민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사는 동네에 '좋은 일' 한다는 명목으로 참여를 권유받는다. 만약 앞으로 내가 사는 동네가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된다면, 주민으로서 지역 커뮤니티의 참여를 권유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야근이 만성화된 기업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일에 참여할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있을까? 게다가 집주인이 임대료를 올리면 떠나야 하는 세입자 입장에서, 동네에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이 작동할 수 있을까? 오래 살지도 못할 동네인데 참여해 봤자 집주인만 좋은 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어쩌다가 '주민'에게 이런 역할을 부여한 걸까? 


이쯤 되면, 의문이 든다. 어쩌다가 주민에게 이런 여러 능력이 필요하게 된 걸까.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면서 도시의 관리와 경영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신도시를 만들며 도시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도시공간과 자원을 활용하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보다 먼저 이런 상황을 맞이했던 북미, 유럽, 일본 등에서는 도시재생정책이 추진되었고, 우리는 이들을 사례로 참고하여 사업을 만들었다. 사례가 되었던 도시들은 산업화와 시민사회의 성장이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져 온 곳들로, 이미 지역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의 실천, 협동의 경제 활동, 공동체 활동 등이 나타나고 있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커뮤니티 조직, 환경단체, 예술가 집단 등의 주체들이 존재했고, 도시재생 차원에서의 공공 지원은 이런 주체들의 활동에 추진력을 더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에서는 협동의 경제활동, 시민참여활동 등이 아직 낯설다. 지역 정책 결정이나 도시계획에 주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은 국가적 프로젝트로 소환되었고, 시작되었다. 지역사회가 허약한 상황이지만, 어쨌든 진행은 해야 한다. 


주민 역할을 할 사람이나 조직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우리의 도시재생사업은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주민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동시에, 그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지역계획을 수립하고 지역사업을 추진하도록 짜게 되었다.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된 곳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대학을 운영하며, 도시재생에서 상정해놓은 주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있다. 또한, 주민협의체를 구성하여 그들이 스스로 지역계획을 세우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 '유도'한다. 그동안 '하면 된다'는 식으로 압축성장해 온 우리나라의 성장시대 문법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외부의 부추김에 의해 참여한 사람들이 과연 지역 활동에 오래도록 몸담을까. 

누군가의 부탁으로 잠깐 참여하고, 더 이상은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도시재생 주민협의체의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한다. 


관련 연구(윤주선 외, 2016)에 따르면, 지역에서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할 주민을 찾는 것도 어려우며, 참여하는 주민들도 50-60대 남성으로 편중되어 과잉 대표성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들로부터 독창적인 기획과 실행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주민 권한의 부족으로, 참여한다고 해도 성취감을 얻기에 어려운 구조이다. 그럼에도 도시재생이라는 정책사업은 이미 '시작'되었고, 사업 프로세스에 따라 '문제없이' 추진되어야 하기에, 몇 안 되는 주민들을 이끌고 용역사와 행정은 사업계획을 수립한다. 그리고 계획에 따라 행정은 지원받은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지원예산이 끝난 후에도 과연 주민주도로 지역이 관리/운영될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실마리를 찾아보기 위해

도시재생사업에서 찾기 어렵다고 하는 창의력과 실행력을 갖춘 요즘 사람들은 무얼하며 살고 있는지 찾아 보았다.  


 #1.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  

몇 년 전부터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커리어를 쌓기 위한 자기 계발에 투자하던 사람들이, 인문학 강좌나 책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열풍은 최근 들어 취향 공동체라는 형태로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독서모임 플랫폼으로 유명한 트레바리, 취향을 나누는 특별한 공간 취향관, 신촌의 문토 등 직접 타인을 만나 관심사에 대해, 세상사에 대해 토론하는 커뮤니티가 유행하고 있다. 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이 세상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관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집이 아닌 전셋집이나 월세집을 꾸미는 것은 돈 낭비로 치부되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잠깐 사는 전셋집이라도 내가 머무르고 싶은 공간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직접 꾸민 집을 블로그나 책으로 공개하면서, 셀프 인테리어 열풍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홈퍼니싱 비즈니스가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북유럽의 깔끔한 인테리어가 인기 많아지면서, 다양한 유럽의 브랜드가 한국에 진출하고 있기도 하다. 바쁘게 일만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머물고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에 나서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3. 골목문화, 길을 즐기는 문화의 확산 

이태원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골목이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주말이면 도시를 떠나 교외로 여행을 떠나는 대신, 도심의 오래된 골목을 탐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경리단길, 가로수길, 샤로수길, 망리단길, 익선동, 을지로 등등 서울에는 수많은 골목이 새로운 문화적 공간으로 호명되었다. 급격하게 이목이 집중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심하게 타격을 입은 골목이 나타날 정도로, 골목문화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콘텐츠가 되었다. 우리들은 이제 어느 한 스폿이나 단지로 조성된 놀이동산만을 찾지 않는다. 진짜 도시를 볼 수 있는 골목을 찾게 되었다. 



현재의 삶을 중시하고, 
주변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나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주변 환경과 도시 가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능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은 도시재생사업에 요구하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이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주민'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삶에 대해 고민하는 요즘 사람들이
도시재생사업의 주체로 참여할 순 없을까?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한 독서모임에서는 현대 독일, 영미 철학에 대해 읽고 있다. 많은 현대 철학자들이 지역사회의 참여를 이야기했다. 모임의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도시재생사업에서 역량 있는 주체를 찾고 있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지역사회에 참여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모르거나, 접근하기가 어려워 참여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삶에 대해 고민하고, 지역사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요즘 사람들이 비주류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서울에 많아진다고 해서, 인구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방도시의 재생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와 공동체, 내 공간과 주변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도시재생사업의 외부 강점, 잠재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도시재생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민을 계몽해야할 대상이 아닌, 어엿한 주체로 대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내적 변화를 통한 주민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일방향 강의식 교육보다는 전문가와 주민이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양방향의 교류가 있는 토론이 더 적합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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