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이 온다>를 읽고
앞으로의 5일간 바쁜 일정을 앞둔 오늘. 아무 일정도 없이 집 앞에서 빈둥거리다가 점심을 먹고는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고 나니 나가고 싶어 졌다. 매일 합정으로 출근을 하니, 오늘은 그와는 반대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싶어 졌다. 오랜만에 목동 현대백화점을 가보아야겠다.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오목교역 앞에서 내려 지하로 내려가 무빙워크를 통해 백화점으로 진입했다. 식품관을 들러 앤티 앤츠 프레즐 하나를 먹고, 반디앤루니스 서점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에스컬레이터 앞 스타벅스는 여전히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매대 사이를 휘휘 걷다가 발견한 <90년생이 온다>
어딘가에서, 아마도 페이스북에서 봤던 기억이 났다. 내가 만나본 90년 대생들의 공통점들이 그 책에 담겨 있었다. 80년대생인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도 있었고, 내가 바라는 미래가 그들의 취향에서 보이기도 했다.
책의 광고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90년대생이 직원이 되었을 때, 그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고, 일터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고 하며, 참여를 통해 인정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 90년대생이 소비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외면한다."
나는 이들의 솔직함과 재미가 좋다. 그들이 바라는 삶의 많은 부분이 내가 바라온 삶의 모습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이들이 만드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도시계획과 정책 결정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만, 제도적으로는 지자체장이 승인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자체장은 정치인인 경우가 많다. 유권자를 의식해야 하고 당색이라는 것도 갖고 있다. 그 정치적 결정에는 자본의 힘도 작용한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의위원이라는 이름으로 결정에 참여한다. 학계의 교수님이나 박사님, 업계의 대표님들이 참여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시민들이 중요한 주체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도시계획 및 정책 결정에 있어서 시민을 초대하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계획을 수립하고 결정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놓고, 능동적인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자체장의 정치적 입장이나 전문가의 의견도 중요하게 작용하겠지만, 앞으로는 점점 시민들의 입김을 무시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쉽게는 도시재생사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자체장은 도시재생활성화지역을 선정한다. 선정된 지역에 예산을 투입하게 되는데, 그 예산은 주민들이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을 추진하는데 쓰인다. 주민들을 모으고, 주민들이 직접 그룹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리고 주민들이 결정한 계획대로 행정에서 예산을 집행한다.
이러한 결정에 참여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승인권자인 지자체장, 공무원, 전문가들은 50-60대가 많다. 60년대, 70년대생들이 대부분이다. 주민참여 활동에 참여하는 주민들도 이와 비슷한 나이대이거나 더 연세가 많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 지역에 이권이 관련된 부동산 소유주나 상인들이 참여를 열심히 하시는데, 그들의 연배가 그즈음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정도 연배가 되어야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도시를 만드는 데에는 주로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참여하고 계시다. 그들이 우리 도시의 미래를 그리며 계획하고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어른들이 그리는 미래와
90년생이 그리는 미래가 같을까? 아니 비슷하기라도 할까?
우리 도시는 지나치게 압축성장을 해왔다. 어느 나라에나 세대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나라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으며 세대 간 차이가 더욱 심하게 벌어져 있는 듯하다. 아마 지금의 윗세대는 90년대생을 이해하기 정말 어려울 것이고, 90년대생도 윗세대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목표로 하는 삶의 모습이 많이 다를 것이다. 서로 많이 다르고, 이해하기 힘들기에 <90년생이 온다>라는 책도 출간되고 화제가 된 것이리라.
현재의 어른들, 그리고 30년 후 우리 사회의 어른이 될 90년대생들.
30-40년의 시간이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다. 우리처럼 속도 빠른 나라에서 30-40년이라는 시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일 것이다. 그만큼 어른들과 90년대생 사이는 동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많이 다르다.
나는 책을 읽고 나서, 상상을 해봤다.
지금 우리 도시에서 계획하고 결정하는 '도시'는 앞으로 20-3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그리는 것이다. 20-30년 후의 미래에는 지금의 90년대생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 살아가고 있을 미래이다.
만약, 지금의 90년대생들이 도시계획과 정책을 결정하는 데에 의견을 제시하고, 어른들과 함께 참여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워라밸이 중시되는 도시, 병맛이지만 재밌는 도시, 소비자를 우롱하지 않는 실속 있는 도시, 광고가 최소화된 도시... 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내가 그런 도시에, 90년대생 취향이 반영된 도시에 살고 싶어 져서 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20대가 도시에 관심을 갖고 많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물론 90년대생이 아니라,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지역참여활동과는 거리가 멀게 여겨져 온 20대, 현재의 90년 대생들이 참여한다면 우리의 도시, 지역이 생각보다 빨리 변하고, 좀 더 소통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살아남을 시간도 없어서, 도시 따위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을 수 있을 게다. 그럼에도, 어차피 앞으로 자신들이 살 도시이니, 미래에 살게 된 도시에 보험을 드는 셈 치고, 지금의 도시계획 및 정책 결정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어 참여하면 어떨까? 그들이 살게 될 도시를 그들이 참여해서 그들의 취향대로 계획해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