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시술에 개인 일정이란 없다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환자가 가장 힘든 건, 개인 일정을 잡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시험관 과정 중 모든 일정이 내 개인적인 스케줄과 상관없이 잡히고 변경되고 취소된다. 나같은 회사원 여성에게 이는 매우 큰 스트레스다. 아주 중요한 회의가 잡혀있어도 병원에서 오라고 하면 득달같이 달려가야 하니까.
이식일도 그렇다. 시험관 시술은 아내 몸에서 채취한 난자, 신랑 몸에서 채취한 정자를 외부에서 수정/배양한 다음 아내 몸 속에 이식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런데 수정란의 상태에 따라서 채취 후 4일 배양을 거쳐 이식하기도 하고 5일 배양을 거쳐 이식하기도 한다. 어쩔 땐 바로 이식하지 않고(신선), 냉동을 해버린다(동결). 따라서 나는 매번 병원의 일방적인 ‘날짜 통보’를 기다리는 수 밖엔 없다.
아, 정말 내 마음과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난자 채취일에 교수님은 4일 배양 후 이식할 확률이 가장 높아요. 일정이 바뀔 경우 병원에서 연락이 갈 겁니다. 라고 얘기하셨다. 나는 죄인의 얼굴을 하고선 팀장님에게 4일 후 배아를 이식할 예정이라 연차를 쓸 예정인데 바뀔 여지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은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 맘 편한 게 최고다 라고 얘기하셨지만, 가뜩이나 소심한 내가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위축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다행히 내 일정에 변화는 없었다. 4일 배양 확정. 난자 채취일로부터 4일이 지난 날, 나는 이식을 하기 위해 신랑과 병원을 찾았다.
몸보다 마음이 힘든 배아 이식
난자 채취 때엔 마취를 해야해서 그런지 손발톱 네일도 깨끗하게 제거하고 금식도 해야했다. 하지만 이식 때엔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다. 내가 병원에서 들은 말은 '배아가 향을 싫어하니 이식 당일에는 향이 센 향수, 바디로션같은 건 지양해주세요' 뿐이다.
드디어 이식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병원에 들렀다. 간호사에게 슬쩍 물어보니 내가 채취한 9개 난자 중 6개가 정상적으로 수정됐고, 그 중 5개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 중 2개는 이식할 것이고 나머지는 지켜보다가 상태가 좋으면 냉동을 한다고 했다. 기특한 배아들. 잘 버텨주었구나.
간호사를 따라 안쪽 시술 방으로 들어간 뒤 분홍색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번엔 팔뚝에 링거주사도 꼽지 않고 마취도 하지 않는다. 채취 시술에 비해 이식은 매우 간편해보인다.
무수한 포스팅을 뒤져보니 이식은 아프지도 않고 10분이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고 했다. 나는 환자용 대기 침대에 앉아 내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30분 쯤 지났을까. 수술방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간호사들이 다가오더니, 누워있는 나의 무릎을 세운다음 침대를 수술방으로 스르륵 옮겼다. 덕분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술방에 다다랐다.
수술방은 분주했다. 누워있는 나의 왼 편에는 모니터 두 대가 있었는데, 여기에 배아로 추정되는 물질 두 개의 확대된 사진이 보였다. 오른 편엔 방 하나가 보였다. 아마도 배양 전문가인 연구원 분들이 계시는 자리같다.
주치의 교수님과 간호사는 내 무릎 근처에서 시술에 필요한 장비 등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배아 두 개 이식할거예요. 모니터에 사진 보이시죠? 배아 상태가 좋아요. 중상급입니다.
주치의 교수님이 방긋 웃었다. 아, 긴장되네요 선생님. 나의 말에 교수님은 아프지 않아요, 소독할 때만 살짝 불편한데 금방 끝나요. 라고 말해주셨다. 잘 될 거예요. 라는 위안과 함께.
000님 배아 이식 시작합니다.
교수님이 시술 시작을 선언하고는 나의 아랫부분에 기구같은 것을 고정했다. 소독합니다. 약간 불편합니다. 잠시 후 기구를 통해 소독 기구같은 것이 훅 들어왔는데.. 아프진 않았으나 교수님 얘기처럼 매우 불편했고, 순식간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왜 신랑도 없이 혼자 수술방에 누워서 하염없이 불편해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서? 서럽고 무섭고 두렵고 괴롭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금이라도 아프고 불편할까 애지중지하던 내 몸이거늘, 지금은 실험용 쥐마냥 가만히 누워 이토록 생소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소독 끝났습니다. 교수님의 말에 연구실 방으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한 사람이 000님 배아 준비하겠습니다! 라고 외치더니 뭔가를 들고 왔다. 나와 신랑의 유전자가 섞인 배아인가보다. 나는 닭똥같은 눈물을 죽죽 흘리며 또다시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다. 그런데…
자, 이식합니다. (10초) 자, 끝났습니다.
이 말과 함께 이식이 끝나버렸다. 과장 아니다. 교수님이 정말 딱 저렇게 말했다. 방금 뭐가 지나갔냐? 싶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교수님은 확인사살까지 해주셨다. 작은 모니터 보이시죠? 이게 000님 자궁인데요, 여기 흰 점, 이게 배아예요. 좋은 위치에 잘 들어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라 모니터에서 흰 점을 찾아볼 여유따위 없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내가 뱉은 말은 선생님, 고생하셨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였다.
일년같은 일주일, 긴 기다림의 시간
이식 후 다시 수술대기실에 누웠다. 간호사는 무거운 것 들지 마라, 임신한 것처럼 술, 담배 등은 하지 마라, 향 센 제품은 당분간 피해라, 배아가 열을 싫어하니 뜨거운 건 피하는 게 좋다 라는 당부를 했다.
커피, 커피는요? 내가 중독자마냥 물어보자 간호사는 커피도 하루에 한 잔 정도는 괜찮지만 안드시는 것도 좋아요. 라는 애매한 말을 했는데, 아직도 마시라는 건지 마시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수술방에서 나가자마자 신랑에게 생생한 이식 경험담을 전하며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아, 커피는 혹시 몰라서 디카페인으로.
옛말 그른 것 하나 없다. ‘애 떨어질라’라는 단순하고 흔한 표현도, 실은 아주 오랜 기간동안 무수한 경험과 레퍼런스를 거쳐가며 생명력을 더해온 역사적 결과물이리라. 애초에 주의력이 부족한 나지만 이식 이후로는 행여나 ‘애 떨어질까’ 싶어 작은 자극에도 극도로 조심했다. 누가 옆에서 소리만 질러도 심장이 벌렁거렸고 갑자기 새가 휙 날아가도 너무 놀랐다. 속도방지턱에 덜컹거리는 차체에도 신경이 쓰여 신랑은 운전을 아주 젠틀하게 해야했다.
배아가 잘 붙어있는지, 다시 말해 임신인지 확인하려면 이식 후 일주일은 지나야 한다. 이 기간에 나는 대학 입시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초조했는데, 애가 떨어지지 않도록 몸까지 신경써야 하고, 설상가상 회사 눈치까지 봐야해서 너무나도 힘들었다. 일주일이 일 년처럼 느껴졌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