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 그거 자궁에 문제가 있을 때 하는 거 아니예요?
회사 선배는 내가 자궁경을 해보기로 했다고 말하자 놀라며 되물었다. 자기야말로 미혼이지만 건강검진 때 용종이 보여서 용종을 떼기 위해 자궁경 수술을 하기로 했단다. 아,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요, 선생님 얘기로는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수술하기도 한대요. 자궁경 직후 이식 때 착상 가능성이 높나봐요. 정말요? 나는 너무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는데.. 용종이 없는데도 수술을 하야한다니, 고생이 많네요.
에이 뭘요.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론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아무리 단순 수술이라해도 수술은 수술이지 않은가. 그것도 전신마취까지 해야하는.
코로나 검사, 그리고 자궁경 수술
때는 바야흐로 올해 2월. 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날 나는 차병원 맞은편에 있는 코로나 검사실을 찾아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자궁경도 수술이기에 검사는 무조건 받아야 한단다. 에효. 대체 이게 몇 번째 코로나 수술이더냐.
자궁경 당일에는 신랑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지금까지는 차병원 여성난임센터 건물만 방문했는데, 이번엔 차병원 본관에 있는 수술실로 가야 한다. 수술실 앞에 다다르자 비로소 '수술'이라는 게 실감 난다.
수술실에 들어가 환복을 하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 학창시절, 조례 서기 싫을 땐 가끔 꾀병을 부려 간호실에 누워있곤 했는데, 그 때 천장에 그려져있던 지렁이가 병원 천장에도 있다. 오랜만에 지렁이 숫자나 세볼까.
한 마리, 두 마리..
침대 사이사이 쳐진 커튼에도 기하학적인 무늬가 있다. 여기 무늬는 또 왜 이렇게 불규칙적이야. 무늬 갯수도 찬찬히 세볼까. 작은 원 한 개, 두 개, 큰 원 한 개, 두 개..
20년이 흘러도 사람의 습관은 변하지 않는다.
000님, 들어오세요.
멍때리다가 잠시 얕은 잠에 들었을 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간호사들이 들어오더니 내 침대를 스르르 옮기기 시작했다. 무척 철없는 생각이지만, 수술실에서 다른 사람이 내 침대를 옮겨줄 땐 정말이지 너무 편하다. 솔직히 말하면 마취도 편하다. 아픔을 느끼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나면 그만이잖아?
안녕하세요.
수술모자와 마스크를 쓴 교수님이 반갑게 웃었다. 선생님, 수술 잘 부탁드립니다. 네 그럼요, 잘 되실 거예요. 이 수술은 마취 주사바늘 꼽을 때만 아파요. 주사바늘이 두껍거든요. 마취하고 나선 그냥 깊이 푹 주무시면 돼요.
마취과 선생님이 내 팔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앗,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이번엔 스무스하게 잘 꽂힌 것 같다. 다 됐습니다. 이제 마취약이 들어갈 건데요, 가끔 근육이 아프다는 분이 계세요. 그런 경우 손을 들어주시구요, 이상 없으면 그냥 스르르 잠 드세요. 분명 의식을 부여잡고 팔근육의 느낌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나도모르게 잠이 푹 들어버렸다.
눈이 떠졌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간호사들이 뭔가 웅얼거리며 내 의식이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무슨 말이었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말미에 이제 회복실에서 대기실로 이동합니다라는 이야기만 들렸을 뿐.
아까와 같은 천장, 지렁이그림, 침대커튼의 무늬. 한 30분 쯤 있었을까. 몽롱했던 정신이 차차 말똥말똥해졌다. 그 때 의사선생님이 내 침대로 찾아왔다.
000님, 자궁경을 해보니 딱히 용종은 없었어요. 다만 착상 잘 되라고 자궁 아랫면을 좀 긁어놨답니다. 이제 다음번 생리 시작 2-3일에 내원하셔서 2차 시험관 들어가시죠.
아프세요? 라는 간호사의 물음에 아뇨, 라고 답했다. 딱히 어떤 고통이나 불편함이랄 게 없었다. 뾰족한 무언가가 내 몸을 헤집고들어와 자궁 아랫면을 긁었다는데도 이렇게 느낌이 없다니. 마취의 효과같기도, 내 면역력과 건강한 몸의 결과같기도 했다. 어찌됐든 나는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은 상태로 무사히 자궁경을 끝냈다.
인사 후 환복을 하고 수술실을 나오자, 나를 보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신랑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