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이 가르쳐준 한가지
- 그래도 2세는 있어야지.
- 네 시아버님 생신 때 아기가 있으면 얼마나 분위기가 좋겠니.
- 나중에 너희 둘이 적적하다.
어른들이 오며가며 툭툭 던지는 오지랖성 멘트는 그래도 넘길 만 하다. 인생의 대소사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레퍼토리라서 어느정도 단련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정확히 말하면 ‘나눌 것이라고 착각했던’ 친구의 말은 타격감이 다르다. 가령
- 언니는 왜 아기를 안낳아?
라든가,
- 병원? 아기를 낳는데 병원을 왜 가?
라든가,
- 시험관 그거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만 하는 것 아냐?
라는 류의 말.
진짜 몰라서 그러는건지, 약올리려고 일부러 그러는건지 헷갈리는 말.
오전 반차를 쓰고 새벽 진료를 다녀온 후 대학 동기이자 전직장 후배인 친구와 티타임을 할 때였다. 무슨 소리야? 아기를 낳는데 병원을 왜 가? 라는 물음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너 허니문베이비 생긴 거 진짜 복받은 거야. 새벽잠 이겨내고 겨우 난임 병원에 가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대기 두 시간은 기본이야. 몇사례 시술 실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한 맘으로 기도하며 수술방에 들어가서 채취하고 이식하고 누워있어. 여자는 배랑 팔에 어마무시한 양의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고 남자는 적막한 방에서 불편하게 채취를 해야해.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라는 문자들이 순간 머릿속을 팽팽하게 채웠지만, 단 한마디도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단번에 임신을 해버린 친구에게 난임병원에 대한 이해를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냥 뭐.. 생기면 생기고 안생기면 안생기는건데, 나이가 있으니까 병원 다니면서 준비해보든 하려고.
그래, 뭐 애 있어서 뭘해? 힘들고 피곤하기만 한걸. 안낳고 잘 사는 사람들 투성이야. 나는 가끔 부러워 애 없는 사람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더이상 친구와 말을 섞기 싫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일을 웃음거리나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싶지는 않았다. 그런 사람은 내 친구가 될 자격이 없다.
그런데 자기 직전 침대에 눕고 나니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항상, 늘 따뜻한 응원의 말만 했나? 나도 때론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가시돋힌 말을 하지 않았나?
그 친구는 나에게 언제나 차가운 말만 던졌나? 때론 힘이 되는 응원도 해주지 않았나?
그 친구가 의도적으로 그런 말을 던졌다고 장담할 수 있나? 단번에 임신이 되었기 때문에 정말 왜 병원을 가야 하는지 몰랐던 건 아닌가?
하루동안 내 머릿속을 채운 수많은 생각들 중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일까?
나는 어떤 감정을 믿고 어떤 감정선을 따라야 할까?
마음이 복잡해진 나는 내일 아침 일어났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따르기로 하고 잠들어버렸다. 내 머릿속은 잠자는 사이에도 열심히 일할 것이고, 결국 진짜 솔직한 감정과 맞는 생각만이 남아 아침의 나에게 답을 알려줄 것이다.
결국 나는 친구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오전의 내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미워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사람은 모두 다른 환경에 놓여있기에 상대방을 100%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그 아이는 내가 난임병원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나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자신의 행동을 미안해할 할 것이다. 진짜일지는 모르지만, 아무쪼록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행여나 누군가가 나에게 쉬웠던 일을 어렵게 해내고 있다면 이유를 묻기보다 따뜻하게 응원해주어야지.
냉정하던 내가 이렇게 부드러워지다니. 다른 사람의 마음부터 헤아려주다니.
우습지만 그토록 날 괴롭게 하는 난임은 때로 유익한 가르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