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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Apr 25. 2023

17. 7luck, 우리만의 그라운드룰을 세팅하다

난임에도 ”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등학생 시절, 별 보고 등교하고 별 보고 하교하면서도 지리멸렬한 수험 생활을 잘 견뎌낸 것은 끝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몇 년만 더 버티면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간다. 재수 삼수를 하더라도 길어야 일이년만 더 버티면 끝난다. 결국 나는 이 수험생 라이프에서 벗어나 대학생이 된다.

다이어리 맨 뒤에 대학생이 되면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추가할수록 끝은 가까워졌다. 수능이라는 두려움과 끝이라는 설렘이 함께 커졌다. 그렇게 나는 희망과 설렘을 부여잡고 긴 수험생활의 터널을 지났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전체가 그랬다. 아무리 반 친구들이 싫고 선생님이 무서워도, 1년만 보내면 끝이 났다. 그 끝을 바라보면 힘든 일도 힘들지 않게 느껴졌었다. 어차피 새 봄엔 새 학년이 될 것인데 뭐.


난임에도 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어야 일이 년 더 버티면 끝이 오는 일이라면, 아니 오 년 십 년이어도 좋으니 결국 잘 될 일이라면.


하지만 아쉽게도, 난임의 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시험관 한두번 만에 성공했다는 후기도 많지만 열 번을 실패했다는 후기도 많다.

착상은 잘 되는데 유지가 안 된다는 사람,

착상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람,

착상 후 피가 흐르면서 화학적 유산이 된다는 사람,

아기집이나 심장소리가 보이고 들리지 않는다는 사람,

임신 중기에 갑자기 아기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사람.

이들 중 누가 자신이 달리고 있는 터널의 끝을 볼 수 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난임 생활에서 접하는 다양한 임신 실패 후기는, 두렵고 힘든 마음을 더욱 날카롭게 후벼 판다.




병원을 옮기고 진행한 다섯 번째 시험관 시술이 또다시 실패로 끝났다.


”다음 번에는 pgs를 해봅시다. 유전적으로 우세한 수정란을 이식하면 성공률이 더 높아질 수 있어요.“


의사선생님의 말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제까지 이 괴로운 과정을 계속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착잡했다.


Pgs를 해서 우수한 배아를 고른다 한들 착상에 성공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Pgs를 통과할 수 있는 배아가 많지 않다던데. 만약 수정된 배아가 모두 pgs를 통과하지 못하면 돈과 시간만 버리는 것 아닌가?

시술 방식을 고민하는 삶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나?


Pgs로 시작한 고민은 끝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이 어두운 터널에 끝은 있을지, 언제까지 배주사를 맞고 채취와 이식을 해야 하는지.

결국 우리도 수십 번의 시험관과 여러 시술을 거친 후 임신을 포기해버린 여느 부부처럼 되지는 않을지.


깊은 고민 끝에 우리 부부는 우리만의 인위적인 끝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 딱 7번까지가 우리의 시험관 마지노선이다. 만약 7번 시험관 시술을 해도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사는 게 낫다. 더는 몸과 마음을 혹시시킬 수 없다.


채취나 냉동 개수가 잘 나오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적절하지 않아 보이는 Pgs 대신, 우리는 7번으로 어떻게든 우리만의 끝을 내는 그라운드룰 세팅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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