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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낌 Oct 21. 2016

당연해져야 하는 것

막상 되어보니 별 것 없지?

한 문장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울컥해서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평소 같으면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톡 떨어뜨린 후 손으로 쓱쓱 닦았을 거다. 울 수 없었다. 울면 화장이 번지니까, 까만 눈물이 흘러 감당할 수 없어지고, 그런 몰골로 집까지 갈 수 없으니까. 눈을 감으면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아 고개를 쳐들고 가득 고인 눈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화장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 화장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울면 화장이 무너지듯, 누군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힘들다고 말하면 내가 무너질 것 같다. 혼자서 삭이고 흐느껴야 한다. 비웃음 받지 않고 손가락질받지 않으려면. 지금도 쉽지 않은데 자꾸만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순간도 있지만 털어놓고 공감받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예전에는 '안 해도 돼!'를 당당하게 말했는데, 가끔은 화장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눅이 든다. "넌 왜 화장 안 해?"라는 말을 듣거나, "이젠 좀 해야 하지 않아?"라는 이야기를 들을 게 뻔하다. 고등학교 때는 화장하는 게 문제가 되었는데, 지금 나이에는 화장을 하지 않는 게 문제가 된다. 도대체 이 기준은 누가 정했을까.




선배를 만났다.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막상 되어보니 별 거 없지?"


지금의 내 나이가, 처음 선배를 만날 때 선배의 나이와 같았다.

선배는 말했다. 그때는 우리가 뭐가 있어 보였겠지만, 막상 되어 보면 알듯이 별거 없다고. 스무 살 때랑 똑같다고. 그러면서 하나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술을 그때만큼은 못 마셔. 이젠 다음 날이 너무 힘들거든." 그때의 그 선배는 술을 참 좋아하고 잘했었는데. 



나는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감당해야 하는 것들,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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