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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낌 Jan 28. 2017

4일, 이해하고 이해받기를

Cizul Menor-Puente la Reina

운 좋게도 축제 기간과 겹쳐서, 함께 갈 사람을 구했다. 이 축제를 보려고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오기는 힘드니까. 새벽 비로 날이 어두웠고, 버스를 타려고 뛰다가 비로 흥건해진 아스팔트 길에 슈퍼맨처럼 미끄러졌다. 핸드폰 하단 액정이 산산조각이 났다. 아쉬워한다고 도로 붙을 것도 아니지만, 자꾸 눈길이 갔다.


Plaza de Toros PAMPLONA, Spain


산 페르민 축제를 즐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소를 피해 사람들과 거리를 함께 뛰거나,

2) 소가 달리는 길에 있는 건물 발코니에서 사람들이 달리는 걸 보거나

3) 6유로를 내고 경기장(Plazade Toros PAMPLONA)에서 보는 방법이다.


입장권을 샀다. 화난 소(일부러 화나게 한 소)의 최종 목적지인 이곳에 와보니, 같이 뛰어볼 걸 그랬다. 전광판의 확대된 장면은 방송같아서, 뛰어보면 확실히 현장감이 느껴질 것 같다.


Festival of San Fermin, Spain


축제 분위기는 밝고 즐거웠다. 군악대가 들어와서 흥을 돋우고, 음료 가격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맥주나 콜라를 팔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허겁지겁 뛰어들어오면, 소가 뒤따라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소가 한 마리씩 들어올 때마다 운동장의 빈 곳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굳이 자극하지 않으면 소는 점점 온순해졌다. 어떤 사람들은 소를 화나게 해서 여러 차례 밟혔고, 소를 자극하면서 뿔에 받히거나 밟히지도 않은 사람은 호응을 받았다. 즐거웠지만 동물 학대로 느껴졌다.


Festival of San Fermin, Spain


축제가 끝나자마자 알베르게로 돌아가 간단한 아침을 먹고 다시 순례자가 되었다.




모두 출발해서 텅 비어있는 방에서 혼자 선크림을 바르고 장갑을 끼면서 준비하고 있는 느낌이 오묘했다. 어제 숙소에 도착해 어머니들, 독일인 여자와 스페인 남자랑도 얘기했는데. 갔다 와보니 어느새 그들은 길을 나섰다.


Spanish egg tortilla


같이 경기를 본 이들과 간단한 아침을 먹고 함께 걸었다. 걸음이 빠른 한 명은 앞질러가고, 둘이 5km를 걸었다. 두 번째 순례인 그에게 조언을 얻었다. 가령 어느 도시에 가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한다든지, 어느 알베르게에 묵는 것이 좋은지 등. 그와 걷다가 다시 혼자가 되었다.



출발하기 전에는 막연히, '좀 외롭겠지만 괜찮겠지. 한 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지.' 했다. 왜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을까. 어차피 혼자 출발한 길이라 혼자 걷는 게 당연한데, 대열에서 낙오되어 혼자 가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전날 밤 잔뜩 저장해둔 밝은 느낌의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니 기운이 났다. 꽤 가팔랐는데도 기분이 좋아지니 걷기가 수월했다.


속도를 내어 걸으니,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용서의 언덕(Alto de perdon)에 도착했다. 어떤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곳인지는 모르겠다. 이 곳에서 아까 함께 걸은 이를 만나, 배낭에 매달린 딱딱한 빵(내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을 나눠 먹었다. 돌이켜보면, 걷는 중에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Alto Sierra del Perdon, Navarre, Spain


고개를 내려가며 큰 돌이 많은 진흙 색 땅을 왔다 갔다 하며 걸었다. 그와 가릴 것 없이 원래 알던 사람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비밀을 지켜줄 수 있냐고 묻고서 말했다. 이런 내용을 입에 담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그 대화들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더 많은 역사를 말하고, 그의 역사를 알게 되어 이해하고 이해받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같이 고난을 극복하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사회적인 지위나 상황에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 자체로 평가받는 느낌이다. 나도 상대를 더욱더 그 사람 자체로 느낀다.



힘들어서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는 중에 만나는 가리비 표식은 방향을 알려준다는 그 자체로 힘이 된다. 표식을 따라 뜨거운 길을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면 그렇게 많이 걷지 않은 것처럼, 상쾌한 느낌인 건 닷새째지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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