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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낌 Apr 08. 2017

5일, 꼬불꼬불하게 빛나는 시간들

Puente la Reina - Estella

어쩌면 다시 못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J를 만났다. 어제 H와 슈퍼마켓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 성당 앞 분수대에서였다. 내게 오이를 사다 달라고 하셨던 아주머니 말씀을 듣고 슈퍼마켓에 일부러 갔던 거였는데, 슈퍼에서 돌아오는 길에 J도 만나고, 화학자(?)였다는 백발의 영국인 아저씨도 만난 걸 보면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그 분수대 앞에서 J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J를 만나지 못하고 혼자 걸었을 것 같기도 하면서도, 어쩌면 돌고 돌아서 어디선가 만났을 것 같기도 하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었는데, 우연의 일치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어쩌면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그렇게 우연히 만나 J와 H 그리고 내가 새벽 6시에 성당 앞 분수대에 섰다.



시작부터 힘든 여정이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정신이 멍해져서 흙길을 걸었는지, 포도밭길을 걸었는지, 밀밭을 걸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사진에 찍힌 시간을 보고서야 언제 여기를 걸었다는 걸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다.

 

만약 사진을 찍지 않았거나 글을 적지 않았다면, 이 날을 회상할 때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있을까. 아름다운 풍경은 눈에 담기만 해도 모자란데, 그 순간에는 사진에 담는 시간이 아까운데. 담지 않으면 너무 많은 기억에 흩어져버려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유달리 무거운 걸음에 지쳐 다음 도착한 마을에서 잠시 쉬었다. 물도 마시고,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예쁜 스탬프를 찍는 곳에 줄을 기다려 도장을 찍었다. 우연히 D를 알게 되었다. D는 해박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길가의 풀의 이름도, 꽃의 이름도 아는 사람이었다. 걸음이 무척이나 빨랐지만 걸음이 느린 나를 배려하고 용기를 북돋았고, 그가 알려준 식물의 이름을 쉽사리 외우지 못하고 헷갈려하는 내게 몇 번이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중에는 다른 사람이 내 이름을 발음하기가 어려워서 스페인에서 쓸 이름을 짓고 싶다는 내게, 스페인에서 인기 있고 쉬운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는 내 이름의 뜻을 물어보고, 그 뜻과 비슷한 이름을 고심하더니 '작은 빛'의 의미를 가진 이름을 추천해주었다. 가끔 영어 이름을 써야 할 땐 그가 직접 골라준 이름을 쓰곤 한다.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고,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 느낌이 좋다.



발목이 아파 보이는 L에게 괜찮냐고 말을 걸었고, 이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너무 어려울 것 같아 짐짓 포기했던 일을 L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L은 될 때까지 도전하고 시도하거나 아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다른 방향을 찾았다.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 안 하면 다른 방법이 없는데 뭐, '라고 어렵지 않은 일처럼 말했다. L은 상황이 좋지 않으면 불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사람이었다.



날은 너무 덥고 갈 길은 멀어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다가 L이 냇가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쉬어가겠다기에 당황한 얼굴로 L을 뒤따랐다. 반짝이는 개울가에 몸을 뉘었다. 딱딱한 등산화를 벗고 땀에 젖어 축축한 양말을 벗겨냈다. 가방을 머리맡에 두어 베고 누웠다. 습기에 쪼글쪼글해진 발을 말리면서 여태까지 한 번씩은 인사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평화로웠다. 냇가에 앉아, 햇빛이 반사되어 물방울이 꼬불꼬불하게 반짝거리며 흘러가는 모습을 봤다. 누군가는 가방에 담아온 사과를 냇물에 씻어 껍질 째 한 입 베어 물고, 흐르는 물에 무릎을 담그고 앉아 더위를 식히고, Cizul Menor에서부터 봤던 아버지와 아들은 더워진 몸을 씻어내고 물장난을 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처음 만났지만 정답게 이야기했고,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내게 D가 영어로 통역해주었다. 뒤늦은 웃음이 터졌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분이었다.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이토록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하고 싶어 할까. 어제 빨래를 널면서 어떤 분과 잠시 대화했다. 그분은 번거로워서 내게 부탁을 하셨고, 그 부탁을 들어드리기 위해선 나도 동일하게 번거로웠다. 반드시 그 부탁을 드려야 하지 않는데도, 마음에 부담을 느껴,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그저 3분 대화했을 뿐인데 나는 왜 그 사람을 위해 어려움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드는 걸까. 상황이 된다면 하면 되는 일이었는데도 그렇게까지 부담을 느끼는 게 의아했다.





한참을 걷다가 J를 다시 만나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새벽에 일어나 출발해서 여유가 있었다.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J가 점심을 해주기로 했다.(그렇다고 요리를 잘 못하는 내가 주도적으로 요리한 적은 없지만.)

씨에스타가 되면, 시내에 있는 가게가 슬슬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한다. 씨에스타가 되기 전에 얼른 먹거리를 사두지 않으면 씨에스타가 끝나기 전까지 요깃거리를 살 수가 없으니 서둘러 마트로 갔다.



작은 마트가 다행히도 닫지 않았다. 오늘 점심에 먹을 하몽 멜론(Jamon y Melon)을 해 먹기 위해 이베리코 하몽을 잘라달라고 했다. 스페인에서는 하몽을 미리 잘라 진공 포장해두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두께와 원하는 조각만큼만 잘라준다. 자른 고기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고, 기름종이로 포장해서 가격표를 붙여서 준다. 신기하게도 작은 마을에서도 하몽을 잘라서 팔았고, 바르셀로나 같은 큰 도시에서는 까르푸에서도 하몽을 잘라줬다.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는 문화(?)는 하몽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요플레에도 적용되었다. 마트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어떤 마트는 4개가 붙어있는 요플레를 하나씩만 사는 것도 허용되었다. 마트마다 조금씩 다르다 보니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신기하게 느껴졌다.



J와 작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까르푸에 가서 한 병의 와인을 샀다. 마을도 구경하고 나무 아래 그늘이 지는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목구멍에 걸려 있던 갈증이 가셨다. 햇빛 아래 있으면 뜨거웠지만 그늘에만 앉아있으면 서늘했다. 맥주를 마시며 쉬는 시간엔 아까까지만 해도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걸었던 일이 없었던 것만 같이 느껴진다. 걷고 난 후의 꿀맛 맥주와 와인을 적지 않게 마신 덕분에 순례하는 동안 주량이 늘었다.



분수대에서 물을 떠 오자고 말을 잘못한 J를 놀리는 게 재밌어서 장난꾸러기처럼 행동했는데, 알베르게로 돌아갈 때 보니 사람들이 분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수돗물을 마시는 일도 많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는 밖에 있는 약수터(?)가 보이면 물통에 손부터 간다. 자연스럽게 물통이 비어있으면 불안하고, 심지어는 물을 사서 마시는 게 사치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J와 이야기하고 걷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때를 떠올리면 행복한 기분과 소중한 순간, 재미있는 시간들이 떠오른다. 길에서 고민했던 내용들이나 스쳐 지나갔던 생각들은 흔들면 일어나는 모래처럼 다시 가라앉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날들을 걸으면서의 감정을 되살아나게 하는 시를 알게 되었다. 포기할 수 있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그 길을 느꼈던 희망과 고난, 그때의 희열까지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밤길 / 이덕규


조금만 참아라

다 와간다 좋아진다

이제 따뜻한 국물 같은 거

먹을 수 있다


멀리서 가까이로

개 짖는 소리 들리고

언뜻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도

지척에까지 가까워졌다가는

이내 다시

아득히 멀어졌다


어머니

누비 포대기 속에서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마흔 아홉 번째 겨울이 간다  


[놈이었습니다],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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