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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낌 Feb 08. 2018

11일, 빵 냄새를 쫓아가

Santo Domingo - Belorado

이 날은 초반에 J가 속도가 잘 났어. 쭉쭉 치고 나가더라고. 곧 거리가 멀어졌고, 그 거리를 좁히려고 했지만 도무지 안 되겠어서 먼저 보냈어. 그러다가 K를 만나서 이야기하며 걸었어. K는 감자전 먹은 날에 처음 만난 무리에 뒤늦게 합류한 분이야. 그러다가 이후에 같이 커피도 같이 마시고, 이야기하게 되었어.





K와 속도가 맞아서 같이 걷는데 너무 빵 냄새가 맛있게 나는 거야. 양해를 구하고 같이 갓 구운 빵 냄새를 쫒아갔어. 헤매다 보니까 어딘지 알겠더라고. 저 골목까지 가면 냄새가 안 나고, 여길 지나면 냄새가 나니까. 이상하게 거리는 얼마 차이가 안 나는데 냄새는 나고 안 나고 - 가 명확했지. 곧 빵집이 어딘지 알아냈어. 들어가서 바게트랑 이것저것 해서 빵 두세 개를 사서 기뻐하고 있는데, J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J에게 자랑했지. 냄새를 따라가서 빵집을 찾았노라고. 그런 때의 J의 표정이 좋더라고. 장난꾸러기를 보는 장난스러운 표정이라고 해야 될까. 그러고는 셋이 둘러앉아 따끈따끈한 빵을 뜯었어. 맛집이니 유명한 집이니 해도 역시 갓 나온 빵이 제일이야.





곧 또 그늘 한 점 없었어. 메세타 지역이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게, 그냥 같은 장소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특징이지. 난 처음에 지도를 봤을 때 '여긴 좀 걷기 쉽겠네' 생각했어. 거의 굴곡이 없으니까 딱히 어려움도 없고 오히려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 그런데 생각 외로 훨씬 힘들더라. 그냥 계속 같은 풍경이라서 딱히 눈길이 갈 곳이 없기도 하고, 그냥 사진 속을 걷는 느낌이었어. 그렇다고 그 내용을 속속들이 아냐고 하면 그런 건 절대 아니지. 오히려 하나도 모르는데 그저 익숙해서 그렇게 생각되는 부분인 거야. 후기에서는 힘들어서 메세타 지역을 건너뛴다고도 하는데, 오히려 그냥 걷고 싶었어. 걷기 위해 여길 온 거니까. 특이할 게 없으니까 그런 곳을 걸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질까 했는데, 실제로 걸어보니까 도리어 생각이 없어지고 좀 더 멍해지더라고. 풍경을 보면 정말 멋있는데, 그 고정된 풍경에서 나는 걷는데 바뀌는 게 없고 끝이 보이지 않으니까 되게 막막했어. 내가 걸어가고 있긴 한데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감이 안 오니까.


지치긴 해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어. 밀 서리를 해서 밀 낱알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밑 밭 소리도 듣고, 밀 낱알 쪽으로 올라가는 달팽이도 보고.




아, 맞다 해바라기 밭도 있었어. 내가 순례한 시기는 해바라기가 꽃을 피우는 시기가 아니라서 꽃을 보지 못했고, 그냥 초록색 잎만 봤어. 그런데도 해바라기인 줄 알았던 이유는 정말 조사를 많이 하는 J가 말해줬기 때문이야. J는 모르는 게 없지. 나중에 순례 끝나고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해바라기가 핀 걸 확인했어. 내가 그렇게 많이 봤던 게 역시 해바라기구나 싶었어. 다음에 순례 갈 땐 해바라기 꽃이 피는 시기에 가고 싶어. 그럼 여기 드넓은 추수가 끝난 들판에 볏짚이 네모나게 묶여 쌓이고, 해바라기가 노랗게 피어 있을 거 아냐. 파란 하늘이랑 대조돼서 정말 예쁠 것 같아. 언젠가 9월에 순례 가고 싶다.





걷다가 나무 그늘이 나와서 J랑 같이 누워서 쉬고, 시집도 읽고 가끔은 읽어주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어. 그렇게 맨바닥에 가방, 신발을 벗어놓고 그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워서 쉴 때는 어쩜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지. 항상 타이머를 맞춰놓고 쉬었는데 조금 누워있다 보면 10분이 금세 지나 있었어. 알람이 울리면 J는 어김없이 출발하자고 했고, 그 덕분에 치열하게 걸어서 빨리 도착할 수 있었어. J가 없었다면 정말 한 달 반 동안 순례했을지도 몰라.





이 날 근데 진짜 너무 힘들더라고. 그 전날에 쉬려고 했던 도시가 유령도시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많이 걸어서 몸 상태가 안 좋으니까 스스로가 날카로워지더라고. 그럴 게 아닌데도 날이 서서 스스로를 다잡아야 했어. 무릎도 너무 아프고. 항상 도착하기 5km - 7km 전에는 그렇게 아프고 힘들더라고. 항상 그만큼 거리가 조금 짧아서 딱 그전에 도착하면 좋을 텐데.


※ 이번 글은 평소랑 다르게 쓰고 싶어서 말하듯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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