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하는 사물에 대하여 ( 스웨디시 아티스트 연재 1)
내 삶은 나보다 오래 지속될 것만 같다.
신해욱, 「축, 생일」 中
언젠가 요한손을 두고 "허공을 깁는 사람"이라 쓴 적이 있다. 비단 요한손에게만 붙일 수 있는 말은 아니겠지만, 나는 여전히 이 수식을 그에게만 쓰고 싶다. 그의 물체는 단지 텅 빈 공중을 메우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허공 그 자체가 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들은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으며 *공동의 허공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공동의 생일을 맞는다.
*앞으로 쓸 공동의 개념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 Riner Maria Rilke의 예술론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예술의 지향점을 논하며 공동의 영혼, 공동의 시간, 공동의 폭풍, 공동의 멜로디를 언급했다.
우리가 외딴 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만든 것처럼, 요한손은 각자 불룩하게 떨어져 있는 사물들을 이어 공동의 삶을 만든다. 이 삶의 자리는 알다시피, 사물이 자신의 기능으로부터 멀리 날아올라 안착한 곳이다. 마치 기능과 구실이 끝나야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고 말하려는 것처럼, 요한손의 사물은 공중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누군가의 의도대로 살았던 시간들과 개체로 살았던 경험들은 이제 혼자선 도저히 이를 수 없었을 거대함을 마주한다. 불교의 태란습화胎卵濕化(4가지 탄생 -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을 아울러 이르는 말)에 비유하면, 요한손의 사물은 마치 난생卵生처럼 시간 속에서 자신의 묵은 계통을 다 먹고 새로 깨어난 것 같다. 이들은 자신이 깨어난 후에도 자기의 앞과 뒤, 옆, 위, 아래에서 일어나는 부화를 계속해 기다린다. 그의 작품에서 사물의 계보는 다시 쓰인다.
최근 연예인의 어지러운 집을 정리해주는 TV 프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잡동사니로 가득한 공간이 환하게 비워지는 장면은 쉽게 질리지 않을 정도로 극적이다. 시청자들은 아마도 다시 우아하게 자리하게 된 물건들을 보며 자신의 유예된 변화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한손의 일명 <리얼 라이프 테트리스 Real-life Tetris> 연작을 보는 관객들도 이와 비슷한 쾌감을 느끼는 걸까? 그의 작품을 소개한 글에 달린 댓글의 대부분은 평화와 안정감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실상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정돈의 미학이라기보단 여럿이 함께 이루는 전복의 질서에 가깝다. 평범성과 정형성으로 만든 이 전위적 질서를 통해 우리가 얻는 위안은 무엇일까? 우리는 과연 어떤 좋은 기억 때문에, 제한된 공간에서 사방을 의지하며 물구나무 선 사물의 삶을 보며 안정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작품 속 사물이 여러 단계에서 연결되는 건 중요합니다. 색상과 모양의 개념이 합쳐질 뿐만 아니라 시간의 기원이나 정신 등의 측면에서도 이해되어야 하죠. 그러나 제 작업이 관객들과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세대가 '물건'에 갖고 있는 집착을 다루는 것도 물론 제 작업의 주요한 측면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기능과 효율, 질서와 혼돈 사이에 있는 가느다란 경계를 질문하는 게 흥미롭습니다. 제 작업이 오늘날의 생활 방식에 대한 논평을 담고 있지 않다면, 제가 이렇게 시간을 쏟고 있진 않겠죠. 그러나 작품 해석은 각자의 성격과 경험,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켈 요한손
요한손은 불우한 사물들을 소집한다. 불우함은 크게 두 가지다. 별다른 걱정이나 욕망 없이 외따로 떨어져 있던 '불우(不憂, carefree)'한 사물들과 늘 자신의 때를 기다렸지만 그때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불우(不遇, unfortuate)'한 사물들. 아무래도 상관없는(혹은 그렇게 보이기로 한) 삶과 끝없이 소망하지만 그것을 이뤄본 적 없는 삶은 어떻게 교류할 수 있을까? 단순한 사교를 넘어 이들이 공동의 영혼처럼 반짝일 수 있긴 한 걸까? 요한손의 작품에서 불우한 사물들은 서로를 지탱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서 물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독립된 삶의 모양이 어떤 것인지, 내가 어떤 사물이며 어떤 종류의 불우함에 가까운지, 내 옆의 불우함은 무엇인지, 나와 다른 불우함과 어떤 식으로 공동의 작업을 할 수 있을지를 말이다. 적어도 요한손은 다양한 불우함에서 공동의 멜로디를 듣는 것 같다.
불우한 사물들 사이에 가늘게 새겨진 허공의 층위는 언제든 더 능동적으로 세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단, 어떤 것도 구겨 넣어지거나, 어떤 자리도 비워두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공동의 균형과 공동의 삶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러나 균형은 무엇이고 그것이 깨어지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할까? 단정하게 맞아 들어간 불우한 사물의 자리는 동시에 여타의 불우함이 채우지 못한 무한한 공간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의 물체가 다시 허공으로 돌아간다 했던 것은 이런 의미에서였다.
1975년 스웨덴 트롤헤탄 Trollhättan에서 태어났다. 노르웨이와 독일, 스웨덴의 예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2005년 스웨덴 룬드 Lund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노르웨이 예술위원회 Art Council Norway와 스웨덴 말뫼 뮤지엄 Malmö Konstmuseum을 포함한 많은 공공 컬렉션과 개인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독일 베를린 Berlin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학업 초반엔 뭐가 되든 페인팅을 하려고 했어요. 당시엔 그게 아티스트가 되는 길로 보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인내심이 없어서 붓 세척을 제대로 안 했더니 캔버스가 전부 회색으로 변하더라고요. 그땐 실패라고 느꼈는데, 결국 그 덕분에 지금의 제 길이 된 다른 매체들을 시도하게 된 셈이죠.
일상의 물건을 조각 작업의 디딤돌로 재발견하게 된 건 사진을 탐구하면서부터였습니다.
미켈 요한손
요한손은 기성품을 재구성하여 직사각형이나 큐브로 압축시킨 작품을 만들어 왔다. 주로 벼룩시장이나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상의 고고학이 담긴 작업'이라는 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틈 자체보다는 틈을 메우는 물건들을 관리하는 방법에 더 집중했습니다. 초점이 좀 바뀌었는데요. 장소와 관련된 물건을 모아 현장의 이미지를 추상화하는 것에서 시작과 끝이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관심이 옮겨졌습니다. 이런 작업 과정에서 사용한 아이템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꼬리를 물게 됩니다. 일종의 거울 효과나 반복을 통해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 작업을 시작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미켈 요한손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독특한 모양을 가진 물건 한 쌍을 찾으면 단숨에 마음을 뺏깁니다. 이미 다른 벼룩시장에서도 샀었던 쓸모없는 물건인데도 말이죠. 쓸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똑같이 생긴 물건을 두 개 갖고 싶은욕구가 너무 강해서 쉬이 지나치지 못합니다.
미켈 요한손
테트리스 작업 옆에 형제처럼 서 있는 또 다른 연작이 있다. 평범한 물건을 실제 사이즈의 조립 키트 형태로 만든 것인데, 이 역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라 기회가 될 때 새로 다룰 예정이다.
왼쪽 :<TOYS'R'US - Dingy scale 1:1>, 2006,
Mixed media : dinghy, boat equipment, welded metal frame, spraypaint
가운데 :<Engine Bought Separately - Hugin II>, 2007,
Hair dryer, welded metal frame, spray paint, 0.6 x 0.75 x 0.1 m.
오른쪽 :<Assorted Garden Assembly>, 2010,
Spade, rake, scythe, welded metal frame, spray paint, 1.1 x 1.6 m.
그는 한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에도 여러 차례 참여한 바 있다. 2013년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와 함께 광고 캠페인 작업을 했고, 2019 청주 공예 비엔날레 및 2020 창원 조각 비엔날레 야외 전시장에 작품을 전시했다.
최상의 사물과 사건들이란 그들의 본래 근원을,
겸손해서든지 아니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서든지,
두 손으로 가리는 것들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참고 사이트
https://www.michaeljohansson.com/
https://www.gamescenes.org/2010/08/interview-playing-tetris-with-michael-johansson.html
http://hahamag.com/featured-artist-michael-johansson/
https://www.coeval-magazine.com/coeval/michaeljohansson
https://www.yatzer.com/michael-johansson-alternative-readings
https://www.michaeljohansson.com/juxtapoz-m_johansson.pdf
https://www.dailymotion.com/video/x6fjqx7
https://www.yellowtrace.com.au/michael-johansson-installation-art/
제목 배경
Michael Johansson, <Chameleon>, 2014, Ordinary items, 3 x 3.5 m, Fubon Art Foundation, Taipei (TW)
*아트렉처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