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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Mar 28. 2024

선거운동 첫날, '세번째 권력'이 총선 패배를 인정했다

나이브하고도 망상에 가까웠던 현실인식이 차가운 현실을 마주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024년 3월 28일 '세번째 권력'이 단체 회원들에게 총선 패배를 인정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송했다. 이로써 세권은 제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레이스 시작과 동시에 정치 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

나는 이번 일을 나이브하면서도 망상에 가까웠던 현실인식이 차갑고도 냉정한 이 세상의 진짜 '현실'을 마주한 일로 보고 있다. '세번째 권력'은 조성주 전 정의당 정책위 부의장과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 등이 조직한 단체로 이 단체 구성원들은 정의당을 탈당해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이 만든 새로운 선택에 합류했다. 이후 새로운 선택이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과 합당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구성원이 됐다.

조성주 공동운영위원장은 "개혁신당 합류 이후 세 번째 권력이 원래 추구했던 다원주의적 가치관의 공존은 생각보다 어려운 난관에 직면"했다며 "이준석 대표와 함께 개혁신당에 있었던 주류그룹은 여전히 개혁신당을 보수신당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로 더 많이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선택까지 이어졌던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낡은 사회구조를 개혁하는 정책프로그램들이 실종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지역에서 당선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성주 운영위원장이 비례대표 10번으로 사실상 당선이 어려운 번호를 받게 되었다. 이에 운영진은 긴급운영위를 통해서 냉정하고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하였고 현재 세 번째 권력이 추구해왔던 제3지대 정치가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시인했다.


조 공동위원장은 "세 번째 권력 차원의 국회진출이 사실상 어려워 졌지만 이것이 곧 세 번째 권력이 추구해왔던 새로운 정치의 중단을 당장에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총선 이후의 정치정세와 다양한 상황들을 주시하면서 다시 세 번째 권력이 고민해 왔던 민주주의 정치와 각종 사회개혁 프로그램들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당초 '세번째 권력'은 이번 총선 목표로 국회의원 당선자 30명을 제시한 바 있다. 세권 간부들은 이번 총선의 최대 의제를 '양당제 극복'으로 봤고 이를 위해서는 이준석과의 연대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두 세력은 상당히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로 구성돼 있었음에도 세권은 그들과의 연대에 골몰했다.

그것은 이준석 신당의 초기 지지율 때문이었다. 이준석 대표의 신당 창당 전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이준석이 신당을 차릴 경우 지지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15.9%에 달했다. 그렇다 보니,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지친 시민들이 제3지대에 표를 던지게 되면 상당한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당시 세권 사람들의 동향을 전해 들은 것만 종합해 봐도 이것은 단순한 계산을 넘어 들뜬 '확신'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아, 이렇게 가면 이렇게 된다!"

류호정 전 의원이 그토록 '뻔뻔한' 방식으로 정의당을 나간 건 이와 같은 강력한 집단 확신에서 비롯됐다. "야, 저기만 가면 너도 국회의원이고 나도 국회의원이야"라는 기대감이 집단 내에서 강화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나가기만 하면 잘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본인이 속한 단위에서 비례대표 1번을 받고 의원이 되었음에도, 당의 현직 의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세력과 함께 신당을 차리겠다고 한 뻔뻔함은 여기서 나왔다.


세번째 권력은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비전발표회에서 페미니즘 문제에 대한 질의를 받았었다. 조성주 위원장은 "아마 그 부분이 이준석 대표와 제일 거리가 있는 지점"이라며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이 전 대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정당을 같이 못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얼굴 맞대고 논쟁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럴 일은 없었다. 이번에 개혁신당 비례대표 1번을 받은 이주영 후보는 "여성이 아니었다면 인정받지 못할 능력으로 국회의 일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며 비례대표 여성할당 폐지를 주장했다. 이는 이준석이나 천하람 등이 늘상 펼쳐 온 주장으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금태섭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며 "엄연하게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이 논의는 시기상조라 생각한다"고 했다.


선거가 끝난 후, 개혁신당이 페미니즘 관련 논의 테이블을 마련하고 치열하게 당내 이견을 좁히기 위해 노력할 날이 올까? 안 올 것이다. 선거 후 이준석 대표는 당선자들을 데리고 보수신당 입지를 굳히기에 바쁠 것이다. 총선 결과 국민의힘이 참패해 한동훈의 입지가 위협받게 되면 오세훈이나 유승민 같은 이들이 다시금 부각될 것이며 이후 언론에는 스멀스멀, '국민의힘-개혁신당 통합 논의' 보도가 나올 것이다.


세권은 이번 총선 목표로 국회의원 당선자 30명을 제시했었다.


제3당으로써 이 이상의 목표를 달성한 세력은 손에 꼽는다.


제14대 총선 당시 통일국민당의 정주영은 국회의원 당선자 31명을 만들어냈다. 그는 왕회장이라 불리던 재계의 1인자로 현대그룹을 만든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제15대 총선 당시 자민련의 김종필은 국회의원 당선자 50명을 만들어냈다. 김종필은 박정희에게 5.16을 제안하고 중정부장과 총리, 민주공화당 총재 등의 자리를 오갔으며, 9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DJP연합을 통해 김대중의 정권교체에까지 기여했다. 그는 전무후무한 경력을 가진 정계의 거물이었다.


제20대 총선 당시 국민의당의 안철수는 국회의원 당선자 38명을 만들어냈다. 안철수는 박원순에게 서울시장직을 양보하고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해 대권에까지 다가선 바 있다. 그는 한때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문재인을 제치고 차기 대통령 지지도 1위를 달렸다. 제20대 총선 당시 국민의당에는 천정배, 박지원, 박주선 등 호남 민주당계 세력의 거물들이 합류했었다.


길가는 한국인들에게 이 3명의 이름을 대고 이들을 아느냐 물어본다면, 이 셋을 다 모른다는 사람은 정말 간첩이 아닌 이상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30석을 이야기했던 세번째 권력에는 이 같은 거물들은커녕 각자의 당에서조차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밀려나거나 이번 총선 출마조차 간당간당한 인물들뿐이었다. 여론조사에 이름도 못 올리던 상황에서 30석을 얻겠다고 한 호언장담은 안타깝지만 흑역사로 남을 것 같았고, 오늘 현실이 됐다.


이 세상은 언제나 차갑고도 냉정한 숫자의 세계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았음에도 대단한 사람으로 소개되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은 늘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했다. "정치는 수이고, 수는 힘, 힘은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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