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자세히 보면 얼룩말 뒤에 얼룩소가 있다
<얼룩소>가 '글 값 현금 보상'을 중단한 일은 '쏘카'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이재웅씨에게 준 유동성 리스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심증이 든다.
이와 같은 '자본의 논리'를 거론하지 않고, <얼룩소> 내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하면 뻔한 진단만 나올 것이다. <얼룩소>에 투입될 돈의 규모는 애초부터 예상 범주 내에 있었고, 제대로 된 수익이 나지 않을 것 또한 예상된 일이었다.
<얼룩소>는 처음부터 지속될 수 없는 비즈니스였으나, 이재웅씨는 거금을 들여 이 프로젝트를 멱살 잡고 3년을 끌었다. 직원도 40명 가까이 채용했다. 정혜승 전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과 천관율 시사인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 인사들도 영입했다.
'돈'은 이재웅 대표에게서 나왔다.
<얼룩소> 사무실은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2길 20' 건물 4층에 위치한다. 등기부등본을 봤다. 이곳은 원래 벤처투자회사 'SOQRI' 소유 건물이었고, 이후 이재웅씨와 가까운 이들의 건물이 됐다. 현재는 건물 지분의 66%를 이씨의 두 여동생이 나누어 소유하고 있다.
언론에서 이씨는 <얼룩소>에 '투자'한 인물로 소개되곤 하는데, 3년간 수십 명의 고용을 유지하고, 막대한 현금을 글 값 보상으로 지급하고 여동생들이 점유하고 있는 건물에 사무실까지 내줬다. 이건 단순한 투자를 넘어서, 그가 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시도한 일이다. 이건 그에게 '제2의 쏘카' 후보였을 것이다.
이재웅씨는 알려진대로 다음(DAUM)과 쏘카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다음 대표에서 물러난 직후인 2009년 벤처투자회사 'SOQRI'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지분은 이씨가 100% 보유하고 있다. <얼룩소> 사무실 건물 역시 한때 이 회사 소유였다. 이 과정에서 'SOQRI'는 쏘카 초기 투자에 참여했고, 현재 쏘카 지분의 18.98%를 보유하고 있다.
2008년에는 이씨가 만든 '소풍벤처스'가 문을 열었다. '소풍벤처스'는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2길 20' 건물 3층에 위치한다. <얼룩소>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는 것이며, 이 건물의 66%는 앞서 언급한대로 이재웅씨의 두 여동생이 소유하고 있다. 'SOQRI' 소유 건물이 가족들에게 넘어간 후, 그 건물을 소풍벤처스와 <얼룩소>가 나눠 쓰고 있는 것이다.
투자 중개사 '소풍벤처스'는 지난해까지 운용자산 410억 원을 마련했고, 주로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지난해 기준, 130여 개 종목 가운데 40~50개 종목이 기후위기 관련 회사였다.
지난해 연세대 <연세공감>과 인터뷰를 가진 '소풍벤처스' 한상엽 대표는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그만큼 임팩트가 있다"며 "임팩트가 크면 재무적 수익도 크게 따라온다는 이른바 하이 임팩트(큰 혁신), 하이 리턴(높은 수익)의 철학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 대표와 이재웅 대표는 연세대 동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혁신을 다른 곳에서 이루고 싶은 것 같다. 현재의 다음이 포털 점유율 4%에 그치는 점과 별개로, 그것은 확실히 세상의 변화를 촉발하긴 했다. '소풍벤처스'가 투자한 곳들은 이재웅씨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준다.
- 차량 공유 플랫폼 '쏘카'
- 곤충 스마트팜 솔루션 개발 '반달소프트'
- 미세조류 스마트팜 기반 바이오 업체
- 유통 혁신을 통한 라오스와의 무역 업체
- 여성을 위한 성지식 플랫폼 '아루'
- 비건을 위한 식품 커퍼스 '채식한끼(비욘드넥스트)'
나무위키에는 이재웅씨가 녹색당 당비의 상당 부분을 내주는 큰 손이라는 서술이 있는데, 이쯤 되면 단순한 후원자라 보기 어렵다. 그는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일종의 운동을 시도하고 있다. 노동당의 김길오씨가 용혜인이라는 '인물'을 내세웠다면, 이재웅씨는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템(모델)'을 바탕으로 한 변화를 내세우고 있다. (물론 같은 급은 아니다)
이재웅씨는 <얼룩소>에 쓴 글에서 "보상 시스템의 판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가치있고 유의미한 정보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더 많은 좋은 뉴스와 정보가 생산될 수 있다"며 "자신이 쓴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수익도 비례해서 늘어난다면 좋은 글을 생산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글이 수익과 연결되는, 가치있는 글로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 광고 중심의 미디어 기반이 확립되면서 망가졌던 시스템을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얼룩소>의 모든 일은 자본을 가진 Powerful한 개인의 결단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형태를 갖게 됐다. 그가 지갑을 닫으면 플랫폼이 닫힐 수밖에 없는 지나치게 나약한 구조였다. 예상된 일이었으나, 그 예상을 넘어 '수익'을 창출할 가능성을 조금도 보여주지 못했다. <얼룩소>가 <뉴욕타임즈> 만큼의 영향력과 구독자를 확보하지 않는 한 유료 구독 등으로 지금껏 투입한 자본을 회수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단순한 출판사가 될 거라면 이 나라에 출판사가 얼마나 많나. 게다가 애당초 진입 장벽이 높은 플랫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런치'만 가도 <얼룩소>에서 볼 법한 좋은 글들 많다. 구글링하면 관심 있는 사안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그인해서 <얼룩소>의 글을 봐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얼룩소>의 월간 고유 방문자 수는 지난 2월에 2만1000여 명, 지난 3월에 2만7000여 명, 지난 4월에 2만4000여 명이었다. 이건, 유명 네이버 블로그 방문자 수에도 못 미친다. 계속할 이유가 없는 비즈니스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견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얼룩소>가 '지금에 와서' 급하게 현금 보상을 중단하고 직원 30여 명 중 20여 명을 권고사직시킨 데에는 '쏘카' 관련 이슈가 개입돼 있다는 심증이 든다.
최근 이재웅 대표는 '쏘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막대한 현금을 들여 '쏘카' 주식을 매입하고 있다. '쏘카' 2대 주주인 롯데렌탈 측이 SK가 보유했던 '쏘카' 주식을 인수하는 등 지분을 확대해 32.9%가량의 주식을 확보했거나 확보할 예정이다.
이에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부터 '약 400억 원'을 들여 '쏘카' 주식의 7.1%를 매입했다. 지난 4월 19일부터 5월 17일 사이에는 12.3만 주를 샀다. 13일 종가를 기준으로, '쏘카' 12.3만 주는 23억 원이다.
이와 같은 공격적인 매수에는 현금이 필요하다. 정치에 나서지 않은 개인의 자산을 정확히 아는 건 불가능하지만, '400억 원'에 달하는 큰 금액을 현금으로 동원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재벌이라고 해도, 보유 중인 주식을 팔거나 대출을 얹지 않고 '개인 명의 돈' 400억 원을 바로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사실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게 금융 영역에서의 현명함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카카오 주식 185.4만 주를 보유했었고 현재는 공시 의무가 없기 때문에 팔았는지 아직 들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카카오의 최고점은 17.3만 원이었고, 현재는 4.3만 원으로 고점 대비 74% 하락한 상태다. 압도적 재력을 가진 그이지만, 400억 원의 현금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보유한 '자산'을 매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창업에 관여한 회사 지분을 이렇게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처분하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이번에 400억 만드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상당한 힘을 들였을 것이다. 이 경우, 당연한 듯 들어가던 많은 현금 흐름도 줄이게 된다. 상당한 돈을 몇 년간 투자했음에도 이렇다 할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얼룩소>, 고민됐을 것 같다.
<얼룩소>의 서비스 중단 공지는 갑작스러웠다.
"6월 1일부터 기존 및 신규 콘텐츠에 대한 보상 지급이 정지된다. 6월 30일까지 얼룩포인트 인출이 가능하니 얼룩커님들은 기한 내에 보상액을 모두 인출하시기 바란다. 7월 1일에 모든 얼룩포인트가 소멸된다."
그야말로 정리였다. 그리고 <기자협회보> 보도에 따르면 이달 안에 보상액을 모두 빼가라는 안내가 나간 직후 직원 30여 명 가운데 20여 명에 대한 권고사직 처리가 있었다. 모든 게 너무도 갑작스럽게 결정된 느낌이 난다. 수십 명이 일했음에도 실질적 권한은 돈을 가진 자에게 있었던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그럴 의무는 없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사이에 400억 원을 동원할 재력이 있는 사람에게 <얼룩소>에 들어간 돈은 그리 큰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30여 명의 연봉, 홈페이지 운영비, 글쓴이들에게 지급한 보상비 정도만 쓰면, 건물 임대에도 별다른 지출이 없었을 것이니 월간 3억 원 정도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해 <얼룩소>에서 10억 원 정도 손해가 났다는 재무 상태 관련 글을 봤는데, 신용분석보고서를 찾아 보니 아직 내부자가 아니면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 일은 단순히, SNS의 글쟁이들이 돈을 벌었던 플랫폼의 서비스 종료(완전한 종료는 아니지만)에 불과한 일일 수 있지만 정말 많은 걸 보여준다. 자본력을 가졌음에도 신좌파적 세계관을 가진 이가, 스스로 믿기에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준다는 일을 했음에도 그의 의지가 모든 걸 좌우하게 되면 때론 이런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걸 보여준다. <얼룩소>의 끝은 그 시작과는 너무도 달랐고,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그가 더 많은 돈을 여기 들였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조금은 달랐을 것 같다. 돈을 내는 만큼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음이 계속해서 확인된다면 초기의 보상 제도를 5년간 유지한 후에라도 결국에는 같은 결말을 맞았을 것 같다. 자본은, 성과 없는 곳에 지속적으로 투여되지 않는 법이다.
<얼룩소>는 정보의 파편이 아닌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미디어 플랫폼을 지향했다. <얼룩소>의 일부 서비스 종료 소식에 대해 생각하며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았음, 이외의 맥락이 있지는 않을지 고민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