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희대 대법원장은 '여중생 사건' 무죄 선고 안 했다

사법부에 대한 의견과 별개로 사실은 명확히 하자.

by 김동규

최근의 대법원 논란과는 좀 다른 이야기다.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각종 비판과 비난을 보는데, 그가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성을 중학생 시절부터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서 그 관계를 '사랑'으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 조 대법원장은 매우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 글의 제목에 해당 사건을 '여중생 사건'이라 언급하게 된 점이 안타깝지만 짧은 제목 속에 그 일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정확히 하자면,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성을 중학생 시절부터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 사건'이 맞다.


이 사실을 처음 접한 직후엔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보니 납득하기 어려웠다.


언급된 사건의 피고인은 자신보다 27살 어린 여성을 임신시켜 강간죄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낸 100여 장의 편지를 비롯한 모든 증거를 검토한 후 재판 내내 무죄를 주장한 피고인의 유죄를 확신하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정황상 피고인이 피해자를 완전히 물리적·실력적 지배관계 하에 두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는 민일영, 박보영, 김신, 권순일 대법관이 관여했고 전원합의체에 가지 않고 만장일치 판결이 났다. 여기서 박보영 대법관은 헌정사상 3번째 여성 대법관이었고, 김신 대법관은 장애인 대법관이었다. 권순일 대법관은 대법원 판례를 통해 '성인지 감수성' 판결 기준을 세운 사람이다.


판결문을 면밀히 봤는데, 피고인의 죄명이 '의제강간'이었다면 강간의 범행이 발생한 것으로 의율할 수 있기 때문에 판결이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강간죄로 유죄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 의심의 여지 없이 성립되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을 것이다. 대법관 4명은 확신에 이르지 못했다. 만약 이 사건이 최근 사건이었다면 현재는 의제강간죄의 연령이 만 16세로 상향되었기 때문에 고민이 필요한 사건은 아니다. 그냥 유죄 받고 감옥갔다.


그러나 피고인은 강간죄로 기소됐고 이 경우, 사법부는 피고인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유죄인지 아닌지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정의로운 판결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당대의 대법관들이 당대의 법리를 완전히 어기고 판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 중요한 건, 이 같은 상고심 판결에 조희대 대법원장은 관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사건을 무죄로 보고 파기환송했고 이후 사건은 고등법원으로 돌아갔다. 고법은 새로운 증거나 피고인의 무죄를 뒤집을 만한 추가적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새로운 증거가 있을 경우엔 대법원의 파기환송에도 불구하고 다시 유죄를 선고할 수도 있다. 이 분야에서 유명한 사건인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의 경우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했으나 파기환송심이 김형태 변호사의 주장을 수용해 다시 한번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선 그렇지 못했다. 다른 정황이 없어, 파기환송심은 대법원 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기속력은 임의로 대법원 판결을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 없도록 돼 있음을 뜻한다. 이후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이때 사건 주심은 조희대 현 대법원장이었다. 파기환송심에 이은 재상고심(5번째 재판)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법원 가이드라인에 따른 판결이 올라왔을 경우 상고를 기각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조희대, 조재연 등 관여 대법관들은 만장일치로 이 사건 상고를 기각했다. 무죄를 선고한 게 아니라, 법리상 검찰의 상고는 이유 없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기속력 법리 등을 따져 볼 수 있을 뿐이다.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 무죄 취지 환송을 결정했고,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이 그대로 무죄 판결한 걸 대법원 재상고심이 다시 변경할 수는 없다. 조 대법원장이 언급한 것처럼 국회가 만든 법에 의해 인정된 기속력에 따라 임의로 대법 판결을 변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페미니즘적인 재판관 4명에게 이 사건 재상고심을 맡겼다고 해도 다른 결론이 나올 수는 없는 사안이었다. 만약 새로운 증거나 정황 변화 없이 대법원이 이 사건을 다시 뒤집는다면 그건 현행 법률을 어긴 오판이다.


조 대법원장은 이 사건의 당부를 판단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계속 언급한 것처럼 애초에 그럴 수 없게 돼 있다. 그 일을 '사랑'으로 판단한 건 김신 전 대법관 등이 관여한 첫 상고심 판결이다. 조 대법원장이 사건을 맡았을 때 그에겐 그와 같은 판단을 할 권한조차 없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이번에 대법원이 속전속결로 이재명 선거법 사건을 처리한 일과 별개로, 이 일을 가지고 "역시 개저씨였다. 성범죄자에 가깝다"고 비판하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억까다.


이 사건 재상고심 당시 주심은 조희대 현 대법원장이었지만, 재판장은 조재연 전 대법관이었다. 조재연 대법관은 여야 합의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후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됐다. 그러나 그 누구도 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여중생에 대한 40대 남성의 범죄를 사랑으로 봤다는 비판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보이스피싱을 당해 2억 원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