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옆에 붙어서 분홍색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가 깡총깡총 뛰며 매장에 들어온다. 다섯 살, 여섯 살쯤 되어 보인다. 나는 매장 안에서 고객님이 안으로 들어오려는 모습을 이미 봐서 맞이할 준비를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객님을 보며 밝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여기 있는거 만지면 안 돼”. 엄마는 아이에게 단단히 단속시킨다. 아이는 뛰어다니며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이거는 분홍색이네”. “이거는 뭐야?” 엄마는 아이가 이끄는 쪽을 따라다니며 “만지면 안돼”라고 주의를 주며 매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아이는 아이의 눈높이에 위치한 식물들을 쳐다봤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휙 돌아서는 생화도 살펴보며 신기해한다. 이것저것 잠시 구경을 하더니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순간 어리둥절하다. 나는 잠시 투명인간이 되었다가 땡 하고 정신을 차린다. 이상하다. 뭐 물건을 함부로 만지거나 파손한 것도 아니고 나에게 욕한 것도 아니고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이런 기분이 뭘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합리화해보기 시작한다. 안 사고 바로 나갈건데 굳이 직원이랑 인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건 아닐까, 오히려 인사하면 뭐라도 사야되나 하는 압박감이 있는건 아닐까, 아니면 나를 못 본 걸까? 내 목소리가 안 들린걸까? 목적이 매장을 구경하는 것이었으니 그저 매장을 구경하고 나갔을 뿐인걸까.
나도 인사를 안 할 때가 있었다. 정확히는 안했다기 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지 않았던 때가 많았고, 사실 지금도 자주 있다. ‘세요’다. ‘세요’가 인사였다. ‘안녕하’까지 말하긴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상대방은 아마 ‘세요’만 들렸을 것이다. 큰 소리로 인사해서 혹시라도 나에게 시선이 집중될까 하는 걱정도 있고, 어떤 편의점에서는 오히려 손님이 내가 인사하고 직원이 인사를 안 하거니와 심지어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의 무안함을 사전에 어느 정도 방지하는 용도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구호를 외쳐서 인사하기가 뻘쭘해져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나를 맞이하면서 인사하는 경우에 내가 인사를 안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 괜히 이유 없이 변명하는 기분이 든다.
이 동네 근처는 실제로 무인 매장이 많다. 우리 매장 건물 1층만 해도 무인 매장이 여러 개다. 8층에 스터디카페가 있다.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문구류를 파는 무인매장도 있고, 라면을 파는 무인 매장도 있다. 각자 알아서 물건을 고르고 각자 알아서 물건을 계산한다.
그런데 꽃집은 무인 매장과는 달리 물건을 골라서 각자 알아서 결제하는 게 대부분 어렵다. 왜냐하면 꽃 상품은 하나하나의 상품이 대부분 일대일 맞춤 제작상품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그냥 보기 위해서 꽃을 사서 둘둘 말아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다 포장해서 선물로 나간다. 한 줄기 한 줄기를 한 땀 한 땀 잡아서 엮고, 묶고, 포장지 색상을 고르고, 사이즈에 맞게 재단해서 포장한다. 직원과 대화를 통해서 상품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항상 직원은 고객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 매장은 그렇다.
꽃, 안 사면 어떠랴 안 산다고 안 잡아먹는다.
겁먹지 마시라.
동네 단골 가게가 하나만 있어도 동네에 정을 붙이는데 도움이 된다. 내가 그랬다. 나는 그게 꽃집이었다. 꽃집이 아니어도 좋다. 김밥집도 좋고 마트도 좋고 옷가게도 좋다. 소극적으로 조그맣게 ‘안냐세요’하는 하는 고객님도 다 기억하고 있다. 그 분이 부담스러우실까봐 다음에 오셨을 때 반갑게 인사는 해드리되 모르는 척 할 뿐이다. 인사해도 괜찮다. 여러분들의 마음 편한 동네 마실 라이프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