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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야 Jul 26. 2021

팽할머니를 만나다

<소성리를 쓰다>

군산, 사라지고 있는 하제마을에 600년을 살아낸 팽나무가 보고 싶어서 다녀왔다. 팽나무의 뒷편에는 거대한 미공군기지가 있고, 전투기의 활주로가 있고, 탄약고가 있다. 그리고 미군이 있고, 마을을 잠식할 만한 엄청난 소음이 도사리고 있다.


언제였지, 사드가 소성리로 들어오기 직전인 2017년 봄날에 일본 교가미사키를 다녀왔고, 여름날에 제주 강정으로 가서 7박 8일간, 제주를 가로지르는 장정을 했었다. 2018년 봄날에 오키나와에서 헤노코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현장을 비롯해서 카데나 미공군기지 그리고 오키나와민중들이 미군기지를 철거하기 위해서 희생을 감내하면서 싸웠던 현장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해 가을부터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미군기지를 둘러보고 싶어서 군산을 찾았고, 평택을 찾아갔었다.


처음 군산을 도착했을 때만 해도 팽나무의 존재는 알지 못했고, 하제마을에 커다란 굴착기가 군데 군데에서 멀쩡한 집을 부수고 있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사람들은 떠나가버렸는지, 식기도구며 가정살림살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집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흘러 코로나가 터지고, 하제마을에서 600년을 살아낸 팽나무의 존재가 알려지고, 팽나무를 보존하자는 평화바람이 일면서 다시 군산을 찾았던 작년 가을 쯤에 하제마을은 거의 다 사라져서 집터의 흔적을 남겨두지 않았다. 너른 풀숲에 팽나무만 덩그러니 남아있었고, 보상문제가 정리되지 않고, 미군에게 화가 난 두 가구만이 아직 집터를 보존하면서 허허벌판에 우두커니 남아있었다.


군산미공군기지,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가 건설한 군공항은 군산의 시민들이 태어날 때 부터 이 땅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시설이라 마치 군산의 역사이기도 할텐데, 3만평으로 시작한 군공항은 380만평(대략 들은 이야기)로 확대될 동안, 기지 주변의 수많은 마을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 하제마을이 사라졌고, 사라진 후에야 팽나무의 존재가 알려졌다. 드러난 거지.



내 손에 닿은 팽나무의 껍질은 600년의 모진풍파를 다 겪어낸 할머니의 손등처런 까실까실하고 쩍쩍 갈라져서 거칠고 단단하기만 하다. 이 팽나무마저 사라져버리면 하제마을을 누가 기억해줄까. 누군가에겐 고향이고 살아온 날의 전부였을 마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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