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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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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Jan 22. 2017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4)

2014.09.06.~09.07. 나미비아

 “가까운 숙소를 찾아야겠다.”

 오늘 화이트 레이디를 들르고, 내일 방문할 예정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산, ‘트위펠폰테인 암각화 지대’에 가는 도중에 숙박을 해결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 타카코 누나가 운전대를 잡고 오던 길을 역방향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곧 왼쪽 길을 가리키는 표지가 하나 나타났다. 표지에는 [브란트베르크 휴식 캠프]라고 적혀 있었다. 길은 매우 울퉁불퉁했으며 마치 시골의 트랙터들이 다니는 길과 흡사했다.

 “저기 들어가 볼까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시선이 멀리 있는 낮은 산맥에 다다르기까지의 모든 지역에 노란 풀들만이 무성했다. 그나마 몇 그루 보이는 나무들만이 그 지루한 풍경에 장식을 입히고 있었다.

 “그래도 표지가 있으니까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요?”

 아마 그렇다고 해도 당장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우선 그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아까 이쪽으로 올 때도 이 표지가 있었나?”

 “글쎄요, 못 봤던 것 같은데.”

 석연치 않은 느낌을 품은 채 거의 반 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을 달렸다. 해가 어느덧 산 뒤로 숨으려 하고 있었다.

 “이거 좀 이상한데요.”

 계속 같은 풍경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무도 되돌아가자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차 안을 메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으아아아앗, 으아아악!”

 운전을 하던 타카코 누나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우리도 그녀와 함께 비명을 질렀다. 차가 좌우로 마구 움직이고 있었다. 타카코 누나는 운전대를 주체하지 못하며 왼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마구 급회전을 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유키 형이 기어와 운전대를 잡으며 타카코 누나를 제어했다. 차가 겨우 움직임을 멈췄다.

 “와아.”

 “휴우.”

 차 내에는 한숨과 안도가 퍼졌다. 빙판길에서 차가 미끄러지는 것처럼 흙길에서 빠르게 달리다가 차가 미끄러져서 제어가 어려워 생긴 문제였다.

 “그냥 돌아 나가죠. 이러다가 고립되겠어요.”

 타카코 누나는 차를 돌려 오던 길을 따라 나갔다. 이번에는 천천히 달려서, 나올 때는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위스 마을 세 번째 방문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 세 번이나 들르게 될 줄을 생각도 못 했는데.

 마을 초입에 있던 게스트하우스의 문에는 [닫힘] 표지가 붙어 있어 안쪽의 주유소 방향으로 향했다. 마침 왼쪽에 [브란트베르크 로지]라는 이름의 숙소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루 묵는데 얼마죠?”

 계산대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묻자 곧 대답했다.

 “사람당 도미토리는 200 나미비아 달러, 캠핑은 100 나미비아 달러예요.”

 “알겠습니다. 일행이랑 상의해볼게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주머니에게 이야기하니, “200이면 조금 비싼데?”라고 대답했다. 빈트후크와 스바코프문트에서 묵던 숙소들이 모두 150이었으니 조금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이었다. 

 “그럼 조금 더 둘러볼까요?”

 아까 주유했던 주유소까지 가서 좌회전하니 [화이트레이디 로지]라는 이름의 숙소가 있어, 마당에 서 있는 할아버지에게 가격을 물었다.

 “여기는 도미토리는 없고 조식 포함 방값은 820 나미비아 달러요.”

 “820이요?”

 놀라서 소리치듯 외쳤다. 1층짜리 작은 숙소 하루 방값이 8만 원 이상이라니. 허겁지겁 나와 브란트베르크 로지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다섯 명 모두 합한 가격인지 아니면 1인당 가격인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브란트베르크 로지 계산대에 금액을 계산하고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신 아주머니,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저씨까지 도미토리를 이용하기로 하고 나머지 셋은 텐트를 치기로 했다. 야영장은 건물 뒤 쪽에 있어서 차를 타고 야영장을 돌아봤는데 바닥의 모래도 곱고 지면도 평탄해서 묵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1인용 텐트를 설치해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타카코 누나의 도움을 받았다. 연결한 장대 두 개를 텐트 외벽 고리에 집어넣고 엑스 모양으로 겹친 뒤 텐트를 펼치자 작지만 훌륭한 숙소가 완성됐다.

 식사 준비를 위해 차 트렁크에서 식재료들을 꺼내놓으니 이미 주변이 어두워졌다. 여행을 출발할 때 쇼고 씨가 하나둘씩 모아놓았다는 각종 취사용품들이 담긴 보따리를 빌려와서, 이번에 그것도 열어보았는데 아쉽게도 냄비 밖에 쓸 만한 게 없었다. 드디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사 온 부탄가스가 능력을 발휘할 시간이 왔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휴대용 미니 버너와 가스를 연결하고 그 위에 냄비를 올린 뒤, 가지고 온 생수를 이용해 파스타 면을 위한 물을 끓였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열지?”

 재료들을 준비하던 타카코 누나가 문제의 물건들을 가져왔다. 우리는 출발 전에 마트에서 사 온 토마토 갈릭 소스, 옥수수 통조림 등을 처량하게 바라보았다. 그 일용할 양식이 들어있는 알루미늄 캔에는 열 수 있는 고리나 손잡이가 달려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왜 살 때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

 “저 친구들한테 부탁해볼까요?”

 야영장과 야외 주방 사이에 위치한 공터에서 젊은이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술을 마시며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딱 엠티를 온 분위기였다. 그중 한 명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곁눈질로 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친구들끼리 놀러 왔나 봐요?”

 “네, 우린 나미비아 국립 대학교 학생들인데 다 같이 수련회를 왔어요.”

 “빈트후크에 있는 학교요? 공부 꽤 잘했겠네요?”

 “음, 조금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리처드예요.”

 “소비아예요.”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다가 해야 할 일을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 혹시 이것들 좀 열어 줄 수 있나요?”

 소비아 씨는 친구들을 부르더니 무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곧 한 친구가 상당히 기다란 칼을 가지고 와서 캔 가장자리를 푹 찌르고는 외곽을 따라 빙빙 돌리며 캔을 열었다.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드디어 얻게 된 식재료들을 이용하여 파스타와 샐러드를 만들었다. 빈트후크에서 사 온 메를로 품종의 적포도주 한 병도 열었다.

 “이야, 별 많이 떴다.”

 식사를 마치고 고개를 올려보니 화성, 목성이 밝게 빛나고 알타이르, 베가, 안타레스를 선두로 펼쳐진 독수리자리, 거문고자리, 전갈자리가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남십자성과 센타우루스자리도 합류하여 밤하늘은 더욱 다채로웠다.

 “성민아, 저건 무슨 별이야?”

 보통 천문학이나 우주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별자리나 별 이름을 물어보면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천문학은 별, 행성 등 각종 천체와 우주의 탄생과 발전 및 종말, 그리고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들의 성질을 물리학과 수학으로 풀어내는 학문이다. 그것을 위해서 요즘은 컴퓨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물리학, 수학, 그리고 컴퓨터를 주로 공부하게 된다. 또한 우주과학은 인공위성과 로켓의 개발 및 태양에 의한 지구와 지구 주변 환경을, 마찬가지로 물리학, 수학, 컴퓨터를 이용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다. 별을 관측하거나 별자리를 외우는 사람들은 보통 우주와 별, 그리고 관측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나 별 보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이다.

 다행히도 나는 우주과학 전공자이기 이전에 별 보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따라서 나는 아주머니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었다.

 “저건 ‘베가’라는 별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직녀성이라고 부르는 별이죠.”

 “그럼 견우는 어디 있어?”

 “견우는 조금 복잡한데요. 원래는 염소자리의 ‘다비흐’라는 별이라고 하는데 이게 상당히 어둡거든요. 요즘 학계에서는 그냥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라는 별을 견우성으로 취급해요. 저기 보이는 저 밝은 별이요.”

 고구려 시대 평양의 하늘을 담은 천문도 비석의 탁본을 바탕으로 조선 태조 때 돌에 새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 하늘을 담은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면 다비흐에 해당하는 별은 ‘견우’, 알타이르에 해당하는 별은 ‘하고’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때문에 견우성이 원래 다비흐였다가 현대에 들어서 알타이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았으나,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한동안 하늘의 별을 살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날 생각에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샤워를 위해 건물 앞문으로 들어갈 필요 없이, 야영장 쪽으로도 샤워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씻고 침낭 하나를 꺼내어 누웠다. 밖은 학생들이 피워놓은 불로 인해 환했다.


 밤에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나미비아 대학생들은 꽤나 격렬하고 활기차게 밤을 즐겼다. 언어를 알아듣지는 못 하였으나, 우리나라의 술 게임과 비슷한 것을 새벽 한 시까지 끊임없이 진행하였다. 그 이후에도 한 시간에 한 번 단위로 계속 깨며 뒤척였는데, 바닥이 생각보다 딱딱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베개로 쓰고 있는 얇은 침낭을 다음부터 매트리스로 써야겠다.

 문제는 또 있었다. 손목시계는 4시 반을 가리키고 있는데, 휴대전화 시계는 5시 반을 가리키고 있던 것이다. 6시 15분에 출발하기로 했었기 때문에 우선 일어나기는 했는데, 매우 혼란스러웠다. 텐트 지퍼를 열고 밖을 보니 타카코 누나는 이미 텐트 정리를 마친 채, 샤워장에서 다 씻고 나오고 있었다.

 텐트에서 기어 나왔는데 잠들기 전 밤에는 아마도 모닥불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쏟아질 것 같은 많은 별들이 보였다. 커다랗게 하늘을 매우고 있는 오리온자리, 수많은 별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빛나는 시리우스, 눈부시게 아름다운 플레이아데스가 눈에 맺혔다. 보통 하룻밤을 꼬박 새우면 세 계절의 별자리를 볼 수가 있다. 그중 저녁에 남쪽 하늘에 보이는 별자리를 그 계절의 계절 별자리로 부른다. 북반구에서 봄철 별자리는 사자자리와 처녀자리, 게자리 등이 있으며, 여름철 별자리는 백조 혹은 고니자리, 독수리자리, 거문고자리 등이 있다. 또한 가을철 별자리는 페가수스자리, 페르세우스자리 등이 있고, 겨울철 별자리로는 오리온자리, 큰개자리, 쌍둥이자리, 황소자리 등이 있다.

 오늘 밤 빈트후크의 하늘에는 북반구를 기준으로 여름철 별자리, 가을철 별자리, 겨울철 별자리가 지나갔다.

 별들을 잠시 감상하고 텐트를 정리한 다음 씻고 나서 가지고 다니는 사진기로 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휴대전화 인터넷을 통해 도대체 시간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아보았는데, 오늘 9월 7일을 기준으로 나미비아에 서머타임이 해제되어 시간이 한 시간 늦어진 것이었다. 서머타임은 해가 일찍 뜨는 기간에 표준 시간을 1시간 앞당기는 제도로 나미비아에서도 1년 중 약 5개월 정도를 적용하고 있었다.

 휴대전화 시계로 6시 15분이 넘어갔는데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나오지 않아, 주무시는 방의 창문을 두드렸다. 마찬가지로 시간 때문에 혼란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나눈 뒤, 유키 형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는 부드럽게 마을을 빠져나왔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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