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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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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Feb 12. 2017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7)

2014.09.08. 나미비아

 “자, 이러면 계산 끝인 건가?”

 빈트후크를 나선 이후 첫 번째 정산이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타카코 누나, 유키 형, 그리고 나까지 다섯 일행은 그동안 함께 지불했던 주유비, 입장료 등을 각자 정산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운전을 맡은 유키 형이 계속 내던 주유비를 다섯 명이 공평하게 나눠서 유키 형에게 돈을 돌려 준달지 하는 식이었다.

 “네. 맞네요. 그럼 출발하죠.”

 어느덧 태양은 북쪽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한국에서 늘 보던, 태양이 남쪽 하늘을 지나 서쪽으로 기우는 것과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슬슬 길을 나서야 했다. 오늘의 목적을 이루기에 살짝 빠듯한 느낌도 들었다. 모처럼 느긋하고 평화롭게 아침을 보낸 탓이다. 접어놓은 텐트와 각자의 배낭, 식재료 등을 능숙하게 차에 싣고 유키 형은 페달에 발을 올렸다.


 오푸우는 모래 바람의 마을이었다. 노란 대지에 피어난 마을은 주민들로 북적대었다. 낡아버린 트럭과 먼지를 뒤집어쓴 당나귀가 눈에 띄었다.

 오푸우에는 힘바족이라고 부르는 남아프리카 전통 부족이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나 아주머니가 오푸우에 걸고 있는 기대는 남달랐는데, 모든 것이 첨단화되고 한편으론 서구화된 21세기 시대에 과거의 풍습과 생활방식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꽤나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 하루 머무르며 그들과 더 많이 접해볼 예정이었다.

 문제는 미리 염두에 둔 ‘아바 게스트하우스’라는 숙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쪽인가?”

 “아니, 이쪽인 것 같은데요.”

 “이상하네. 지도로는 여기 같은데.”

 GPS라는 신문명의 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이 작은 마을의 숙소 하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문 닫은 거 아니에요? 아니면 이사 갔거나.”

 유키 형이 한동안 운전대를 붙잡고 오푸우 시내를 달렸으나 결국 우리 중 누구도 ‘아바 게스트하우스’라는 숙소를 찾지 못했다.

 “일단 그냥 힘바족부터 보러 가자.”

 아주머니의 말에 따라 우리는 숙소 찾기를 멈추고 그 부족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따라서 차를 아마도 주차장인 것으로 보이는 공터에 주차하고 한 가게에 들어섰다.

 가게에는 철제 가판대가 앙상하게 놓여 있었고, 글씨가 희미하게 적힌 종이 가격표가 가판대에 붙어 나부꼈다. 물건은 생필품부터 신선 식품까지 고루 있었으나 내부는 꽤나 어둡고 황량한 느낌이었다.

 “힘바족 만날 때 아이들한테 줄만한 걸 가져가야 한다던데.”

 아주머니는 사탕 보따리를 집어 들었다. 타카코 누나도 그 모습을 보며 사탕을 몇 개 챙겼다.

 “여기 힘바족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유키 형과 나는 정보 탐색 담당이었다. 매장의 종업원은 작은 종이에 힘바족이 살고 있는 가장 가깝다는 마을 이름을 적어 주었다.

 “이 마을이 가장 가깝기는 한데, 사실 관광객이 진짜 힘바 마을을 가려면 북쪽으로 100 킬로미터는 더 가야 해요. 그리고 이 근처의 힘바족 만나서 사진 찍으려면 20 나미비아 달러씩은 줘야 할걸요.”

 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불러서 상황을 이야기했다.

 “시간도 늦었고, 100 킬로미터나 더 가기는 힘들잖아? 일단 가까운 데로 가보자.”

 매장에서 사탕을 사서 나온 뒤, 다시 차에 몸을 싣고 앙골라 국경으로 이어지는 C43 대로를 달렸다.


 북서쪽으로 수십 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은데도 계속 허허벌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래 가득한 땅 위에 드문드문 나무들이 서 있었고 초록 풀들이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저기 집 있다."

 아무것도 없는 길을 달리다 보니, 길에서 꽤 떨어진 곳에 나무와 흙으로 된 작은 집 몇 채가 서 있었다. 마을이라고 보기에는 빈약했으나 한 집에서 사람 한 명이 나와 우리도 차를 멈추고 내렸다. 그의 뒤로는 아이들도 몇 명 집에서 따라 나오고 있었다. 다른 집에는 사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사진, 사진, 200 달러, 200 달러.”

 아, 이런 거였구나. 아까의 가게 직원이 멀리 가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200 나미비아 달러면 2만 원, 아까 직원이 일러준 가격과 비교해도 열 배 차이이다. 다시 말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다. 우리는 흥정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사진도 찍지 않고 그냥 뒤따라온 아이들에게 사탕만 몇 개 건네주었다.

 잠시 볼 일을 보러 풀숲으로 떠났던 타카코 누나가 신발에 뭐가 붙었는지 계속 찔리면서 아프다고 중얼대며 차로 돌아오기까지 가격은 참 많이도 떨어졌다. 그에게 반응도 하지 않으며 아이들만 챙기다가 떠나려고 하자 가격은 100으로, 다시 50으로 내려갔다.

 “안녕.”

 우리는 시원하게 그에게 작별을 고한 뒤, 다시 차에 올랐다.


 오푸우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는 보지 못 했던 많은 아이들이 보였다. 임시 학교 같은 느낌을 주는 허름한 컨테이너 앞이었는데 아마도 아까는 아이들이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지나쳤던 것 같았다. 20여 명은 되는 것 같은 아이들과 어른 몇 명이 컨테이너 앞에 모여 있는 것을 보자 아주머니와 타카코 누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여기 좀 세우고 들렀다 가자.”

 “또 돈 달라고 하면요?”

 “좀 주지, 뭐.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주머니와 타카코 누나는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한 명 찍는데 200이요.”

 담합이라도 한 걸까. 일단 200은 부르고 보는 그들이었다.

 “너무 비싸요.”

 “그럼 100이요.”

 음, 아무래도 이쯤 되니 그냥 막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머니는 그들이 팔고 있던 팔찌 다섯 개를 사며 흥정에 들어갔다. 결국 아이들에게 사탕을 좀 물려주고 3분 동안 아이들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받았다. 사탕을 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아주머니와 타카코 누나가 담을 동안 아저씨와 유키 형, 나는 뒤에 서서 지켜보았다. 서쪽으로 접어든 태양과 구름 없이 눈부신 하늘 아래, 노란 대지와 검은 사람들과 검은 사진기와 다섯 이방인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기분이 왠지 이상했다. 한 건 없지만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킨?”

 “치킨.”

 손가락을 옮겼다. 눈을 씰룩거려 질문을 대신했다. 상대방은 곧장 대답했다.

 “비프.”

 “오케이.”

 손가락을 움직여 필요한 식사를 주문했다. 서로 간에 짧은 영어는 때때로 아주 훌륭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된다. 알고 싶은 정보만, 단순하고 명쾌하게.

 곧 다섯 접시에 소고기 혹은 닭고기가 밥과 함께 나왔다. 따로 주문한 커다란 콜라 한 병도 따라왔다.

 “꽤 훌륭한데요.”

 고기들은 적당한 양념이 배어 있었다. 토마토와 양파, 후추 등을 이용해 만든 양념인 것 같았다.

 “오늘 잠은 어디서 잘 까요?”

 “굳이 여기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에토샤로 떠나자.”

 손목시계를 흘끔 확인했다.

 “에토샤까지 들어가기는 시간이 좀 빠듯할 것 같은데요.”

 “그럼 도중에 있는 마을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들어가는 게 어때?”

 “그게 좋을 것 같네요.”

 휴대전화로 지도를 확인해보니 도중에 오샤카티라는 마을이 있어 그곳에서 오늘 밤을 보내기로 했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식사는 한 접시에 20 나미비아 달러에서 25 나미비아 달러 수준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여기 뭐야?”

 운전대를 잡은 유키 형이 곤란한 목소리를 냈다. 뻗어있던 도로가 난데없이 사라지고 휑한 갈림길이 나타났다. 주변 풍경을 보니 도로 공사를 하다가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난잡했다.

 “일단 이쪽으로 가볼까.”

 유키 형은 브레이크를 밟고 주변을 둘러본 뒤 왼쪽 길로 향했다.

 “어어어어!”

 길이 갑자기 울퉁불퉁해지자 불안감을 탄성이 튀어나왔다.

 “여기 길 아닌 것 같은데?”

 “그러네요. 다시 돌아가죠.”

 유키 형은 당황해하며 도로 차를 유턴한 뒤 다시 빠르게 아까의 갈림길로 돌아왔다.

 “그럼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속도를 내며 오른쪽으로 꺾는 우리를 어디에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제지했다. 그들이 나타난 방향을 보니 천막 하나가 휑하게 지어져 있었다. 차로 다가온 아저씨가 창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시죠?”

 창문을 내리고는 질문했다. 그는 손끝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크고 빠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당신네들 지금 법을 위반했소.”

 “뭐라고요?”

 “지금 당장 차에서 내려요. 모두.”

 험악해진 분위기에 주변을 둘러보니 그 사람들 중 몇몇은 총을 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익숙한 글자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옷에 [경찰]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다.

 “이 무슨. 하아.”

 갑작스럽게 당한 일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일행들도 어안이 벙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단 내려 보죠.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차를 도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천천히 대고 우리들은 차에서 내렸다. 주변을 널찍이 에워싼 그들은 우리를 천막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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