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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씨 Apr 16. 2024

습작 3

내 인생은 이상무!

석양이 비쳐 들어 홍조를 띤 얼굴로 아이들이 그려 보이는 미래는 하나같이 터무니없었다.

- 여름의 빌라. 백수린. 고요한 사건 중 -


9년의 세월을, 버킷리스트들을, 담장 없이 뻗어나가던 모든 가능성들을 콘크리트 닭장 한 칸에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사실에 이르자 눈이 번쩍 뜨였다. 버스는 여전히 터널 안, 가지런히 모은 다리만이 지루한 흑백영화처럼 변하지 않고 계속 눈앞에 펼쳐졌다. 얼빠진채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계속 흑백을 응시했다. 아랑곳 않는 버스는 계속 터널 속을 달렸다. 원하지 않아도 매일 타야만 하는 버스,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매캐한 냄새가 차내로 베어 들었다. 디젤 매연, 이제와 내리고 싶다고 맘대로 버스를 멈출 수도 없다. 이 나이까지 되어서도 버리지 못한, 어른이란 명사에 붙이기엔 터무니없어 보이는, 나에게만은 찬란한 꿈들이 이젠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니, 벌써 사라지고 없다. 현실에 치여 돌보지 못한 사이 윤곽과 명암만이 남았다. 이대로 괜찮은 거야?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다 버리고 떠날 거야? 꼭 이래야만 하는 건가? 고작 이러자고...

야, 야아, 뭐 해 너! 7교시 시작했어. 얼른 일어나.

어, 어. 고마워. 몇 교시라고?

7! 교! 시! 정신 안 차릴래? 아무리 앞시간이 담탱이었기로서니 이렇게 정신을 잃을 수가 있냐? 너 죽은 줄!

그 정도였어? 계속 깨웠었나? 난 전혀 못 느꼈는데.

너 헛소리 하고 식은땀 흘리고 이상했어 하여간. 무슨 악몽이라도 꾼 거야?

뭐라 했는데 내가?

닭장이 어쩌고 저쩌고, 그, 또... 아 몰라. 어쨌든 이상해서 깜짝 놀랐잖아!

미안. 깨워줘서 고마워.

그게 말이야,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 난 분명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거든? 너 알잖아. 나 고등학교 들어오고는 잠을 더 줄여서 하루에 다섯 시간도 못 잤어. 그렇다고 수업시간, 자습시간에 졸았던 적이 있나? 당연히 난 성공한 인생, 행복한 삶이 보장되어야 해. 이 지긋지긋한 시골바닥 탈출도 당연할 텐데, 내가 번 돈으로 당당하게 차도사고 집도 사고 유학도 갈 텐데. 그렇게 초라하게 자신을 위한 건 아무것도 남지 않고 혼이 다 빠진 시체 같은 모습의 버스 출근길이라니, 말도 안 되지. 그런 모습은 저기 학교 와서 하루 열두 시간 잠만 자고 가는 애들 얘기지. 10등 안에 들기도 버거워하는 애들 얘기지. 그럼, 당연해. 괜히 학교에서 시험경쟁 시키겠어? 일찍부터 거름망으로 계층을 나누는 거야. 나? 당연히 초상류지. 개꿈을 너무 생생하게 꿨을 뿐야. 노을이 드리우는 시간이라 좀 깊게 잠든 것뿐, 내 인생은 이상무! 오늘도 야자 끝나고 새벽 두 시까지 독서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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