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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Sep 27. 2016

글을 쓴다는 것에 관하여

생활자로그: 프롤로그

대학은 꼭 가야 하는 것 같아서 나름 열심이었고, 서울 입성에는 성공했지만 막상 학부시절을 보내면서 그리고 졸업을 하고 나니 뭘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그다지 큰 변화나 발전이 있지는 않다. 다만 20대에 방황을 해서 30대에 이르러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며 안정을 말하는 소수의 이야기를 그냥 믿고 싶을 뿐이다. 내가 저질러놓고 엎어버린 (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엎어버리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의 초석이 되리라고, 나는 그냥 믿고 싶을 뿐. 아무쪼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흥미롭게 생각했던 직업이란 이것이다: 영화 ‘그녀 (Her)’ 에서 주인공 Theodore 의 직업이었던, 고객 대신 편지를 써주는 일. 


스파이크 존즈 (Spike Jonze) 감독의 영화 그녀 (Her, 2013)의 한 장면 


고등학생 때 끝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던 지겨운 수험 생활에도 의례적으로 기쁘게 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친구들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생일 축하해’ ‘우리 우정 영원히’ 정도가 아니라 편지를 주기 위해서 선물을 준비한 것처럼 정성을 들여서 썼다. 그 친구와의 추억을 곱씹고, 그 친구의 성격과 특성을 떠올려보고, 그렇게 편지를 쓰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그 친구만을 생각하면서 썼다. 매년 생일 때마다 으레 편지를 받던 친구 중에 하나가 네 편지는 다시 봐도 참 재밌다고 킥킥대며 장난처럼 던졌던 말에 왠지 모르게 기뻤던 마음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나의 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평은 밑도 끝도 없이 무작정 과대평가를 하거나 자존감이라고는 1도 볼 수 없이 과소평가하는 두 극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개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다. 글쓰기도 그중 하나에 해당한다. 별생각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갈겨쓰는 것을 좋아하고, 결과물이라는 것은 몇 년이 지나고 다시 읽을 때면 온 신경을 오그라들게 만들 뿐이다. 2009년부터 모아 온 다이어리는 순서 없이 마구잡이로 생각 찌꺼기를 남겨놓은 종이 더미에 불과하다.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 잡생각 늘어놓기에 불과했던 내 글쓰기에 변화가 생겼다. 여행기라고는 게으름에 1편까지 작성해본 게 전부였던 나는 베를린 여행기를 통해 여행의 시작부터 끝을 오롯이 담았다. 게으름을 이겨내고 기억이 멀어져 가는 과거를 끄집어내어 어제처럼 기록하는 연습이란 내가 평소에 왜 게으름을 피웠는지 수긍이 갈 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불어서 내가 마주하게 된 것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산. 구독자 수가 늘어나면서 글이 쓰고 싶어서, 즐겁기 때문에라는 이유보다는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끝을 내기 위해서의 이유로 노트북 앞에 앉게 되었고 이 강박관념과 부담감은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연재를 미루는 상황을 낳았다. 



내 편지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나는 편지로 사랑하는 친구를 기쁘게 하고 싶었을 테고, 친구와의 우정을 추억하니 편지 쓰기가 저절로 즐거웠을 테고, 이렇게 만들어진 편지에는 진심이 담겨있었을 것이며 친구는 그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의 심미를 따지는 와중에 마음보다 머리와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습관은 이제 버리려고 한다. 한 치 앞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내게도 글쓰기란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할 때 즐겁고 재밌는 무엇이기 때문에, 나는 이 취미를 이렇게 남겨두고자 한다. 물론 그렇다고 버려진 기저귀(?) 같은 글을 쓰겠다는 것은 아니다! 함께해주는 이가 많다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을 때 글쓰기는 내게 다른 때에는 시도조차 않는 자아 성찰의 기회이자, 기억의 힘을 강화시키는 훈련이며,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될 테니까. 진심을 담을 다짐을 하고 시작하는 생활자로그 매거진은, (흔해 빠진 수식어와 싸구려 위로가 만연한) 생활을 구성하는 주제들에 관해 나의 주변에서 경험하고 머릿속에서 반추한 것들을 나눌 예정이다.  



사진 제공 Micheal Fund: https://www.michaelf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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