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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Oct 01. 2016

C'est beau, la vie.

포르투갈 20일의 기록 3 

포르투갈로 떠나기 전에 나름 여행 준비를 하면서 검색을 해보니 포르투갈만을 여행하는 사람들보다는 스페인을 가는 와중에 포르투갈을 잠깐 들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스페인과 세트로 묶이지 않는 이상 여간 찾을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포르투갈. 우리는 왜 한 달에 가까운 긴 기간 동안 오롯이 이 나라에서만 머물게 되었을까?




때는 바야흐로 3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영상통화였지만 우리는 곧 다가오는 오랜만의 재회에 마음이 부풀어있었고, 함께 있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 계획들 중 하나가 바로 5월 주말을 이용한 리스본 여행이었다. 서유럽 국가들과는 꽤나 다르고 이국적인 목적지를 찾는 와중에 안전과 비용의 이유로 터키나 모로코는 진작 제외시켰고, 머리를 굴리던 침묵의 순간 이후에 우리 둘이 동시에 내놓은 대답은 바로 리스본이었다. 학기 중인 그가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말을 낀 3-4일 정도에 불과할 테니, 3박 4일의 리스본 여행. 숙소 예약을 위해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르려는 때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할 때면 언제나 스멀스멀 올라오는 주저함에 더해서 뭔가 불확실한 마음이 들었지만, 퇴사며 출국 등 큰 변화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려니 하고 넘겨버렸다. 


삶은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으며 불안한 직감은 맞았더랬다. 그의 학교에서 우리가 리스본을 떠나기로 한 주말을 포함하여 터키 이즈미르(İzmir)로의 필드트립이 잡혀버린 것. (더군다나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해야 했던 그 터키를!)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를 해야 했지만 숙소는 이미 예약이 되어있었고 비행기는 워낙 저가항공이었던지라 취소에만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때 내 머리를 스친 건 7월에 리스본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Nos Alive에 간다던 한 친구의 이야기. 그때 얼핏 보았던 라인업이란 라디오헤드(Radiohead), 테임 임팔라(Tame Impala), 포올스(Foals),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부터 이어스 앤 이어스(Years and Years), 투 도어 시네마 클럽(Two Door Cinema Club), 같은 요즘 핫한 밴드들까지 정말 화려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케이드 파이어 (Arcade Fire)까지. 한국에 있을 때 해외 뮤지션들의 공연 영상을 계속 찾아보기만 하면서 그들이 잘 내한하지 않는 반도의 시민임에 자주 슬퍼했었던 나로서는 꿈만 같은 이 라인업이 내게 오기 위해서 여행을 변경하게 되었구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그것도 이 모든 뮤지션들을 다 볼 수 있는 3일권이 무려 내한 공연 한 티켓 값에 불과한 119유로!) 그렇게 우리는 계획에 없었던 긴 포르투갈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내가 3일권을 예매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앞으로 삶에서 이들을 볼 수 있는 다른 많은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었을까. (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가슴이 찢어지기 때문에..) 라디오헤드, 테임 임팔라, 파더 존 미스티 등이 공연하는 둘째 날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되면서 하늘은 내게 3일권을 허하지 않았고 우리는 마지막 날 티켓만을 사수하고 말았다.  


별로 마음에 가는 뮤지션이 없었던 첫째 날과 다르게 둘째 날, 우리는 페스티벌 사이트 주변에서 티켓을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를 품어보며 아쿠아리움 구경을 마치고 행사장이 위치한 Algés로 돌아왔다. Algés역은 벨렘 성을 가기 위해 타야 하는 기차와 같이 Cascais 방향의 노선에 위치한 역으로, 행사장을 제외하고서는 구경거리가 그다지 있지는 않은 곳이었다. Cais do Sodré에서 출발한 기차는 포르투갈은 물론 주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전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꽉 찼고 Algés 에 이르러서 승객의 대부분을 쏟아내었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티켓을 팔기는커녕 구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우리는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저녁거리를 챙겨 알 제스 역 주변의 해변 Praia de Algés로 향했다. 해변은 행사장과 아주 가까운 위치였기에 공연하고 있는 팀의 소리를 멀리서나마 들을 수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싸게 구입한 포르투갈 산 질 좋은 와인을 비우고, 공기에 실려오는 Father John Misty 의 가장 좋아하는 노래 'I love you, honey bear'에 맞춰서 달빛 아래에서 우리는 발이 닿으면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래의 촉감을 느끼며 춤을 췄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불운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던 밤. 



그렇게 또 다른 밤이 지나고 Nos Alive의 마지막 날, 즉 우리가 입장할 수 있었던 유일한 날이 밝았다. 한 번 입장한 이후에는 퇴장 및 재출입이 불가능하다는 걸 3일권만 끊어본 내가 어찌 알았으랴. 다들 팔목에 하나씩 차고 다니던 자유 입장 팔찌는 바다 건너 이야기가 되었고 이 사실을 모른 채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입장해버린 우리는 뙤약볕 아래에서 저녁 여섯 시에 시작하는 첫 공연을 기다리며 사투에 가까운 근 다섯 시간을 버텨냈다. 동행인이 많이도 기대한 호세 곤잘레스를 시작으로 그렇게 우리는 새벽 세시까지 Algés 의 행사장에 갇혀있었다(?). 호세 곤잘레스는 기대와 달리 넓은 무대에 사람 키보다 큰 스피커를 통해서 증폭되기에 어울릴 법한 종류의 음악은 아니었고, 우리는 아케이드 파이어의 차례가 돌아오기까지의 몇 시간을 또 하염없이 기다렸다. 불볕더위에 기름진 감자튀김이 잔뜩 올라간 퍽퍽한 핫도그를 입에 밀어 넣으면서. 그리고 마침내, 짧은 키로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발목이 아릴 때까지 까치발을 들고 보았던 아케이드 파이어의 공연. 수십 개의 거울이 천장에 달려 있었고 통일된 색조의 조명이 무대를 밝히면서 공연은 시작되었다. 첫 곡의 첫 소절부터 무대를 둘러싼 셀 수 없이 많은 관객들(나를 포함한)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는 노래가 없는 이들도 저절로 춤추게 만드는,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페스티벌 끝판왕'처럼 느껴지는 아케이드 파이어. 점처럼 보이는 거리에서도 그들의 에너지는 그 넓은 공간을 가득 메웠고 나는 신이 나는 가운데 그들의 음악이 내게 유일한 위안이었던 지난날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도 하여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죽기 전에 다시 보고 싶다는 말을 되뇌며 다른 하루가 갔다. 


비록 페스티벌은 1일권에 불과했지만, 비용을 이유로 우리는 페스티벌의 캠핑장에서 4일을 보냈다. 시내 구경 후에 멀쩡한 정신으로 텐트에 돌아와 잠을 청하고 나면 새벽 다섯 시쯤 밤새 페스티벌을 즐기고 돌아온 취한 이들의 소음으로 얼마나 시끄러운 아침을 맞았었는지. 공용 세면대에서 열을 내며 화장을 하던 소녀들도, 사용 중인 콘센트 주변을 서성이며 순서를 기다리던 무언의 경쟁도, 하늘이 뻥 뚫린 샤워실에서 아침저녁으로 버텨야 했던 찬물 샤워도 뒤로하고 축제의 감동만을 안고서 우리는 미리 예약해두었던 에어비앤비 숙소로 향했다. 


언제 그런 축제가 있기라도 했냐는 듯 과일을 팔고, 버스를 몰고, 출근을 하는 이들로 북적이는 리스본 시내로 돌아온 그 날은 공교롭게도 7월 10일, 바로 포르투갈과 프랑스 간에 Euro 2016의 결승전이 펼쳐지는 날이었다. 축구팬이 아니라고 할 지라도 우리나라로 치면 2002년 월드컵 4강 경기가 있는 날과 다를 바 없음을 생각할 때, 함께 어울리며 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엄청난 기회를 놓쳐버린다는 것은 당연지사. -라고 나 역시 생각하였으나, 전날 새벽까지 체력을 완전히 소모했던 나로서는 아무리 축제의 기운이 온 도시에 넘쳐난다고 해도 더 이상 눕지 않은 상태로 긴 시간을 견디는 것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3일권이 내게 오지 않은 것은 3일 연속 밤샘을 나의 몸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실망에 어깨가 쳐진 축구광인 동행인을 어르고 달래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의 골목마다 레스토랑은 TV를 야외에 설치해놓았고 손님들은 축구 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포르투갈의 선전에 목소리가 높아졌던 반면에 프랑스에게 골 찬스가 오기라도 하면 환호성이 일었던 일부 레스토랑도 있었다. (관광 중에도 어찌 자국의 결승 경기를 놓칠 수 있으랴.) 숙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의 마지막 레스토랑을 지나치는 찰나에 레스토랑을 메우던 사람들에게서 득점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유로 2016 결승 결과를 결정한 골을 놓쳤다. 숙소에 돌아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동행인의 따가운 눈초리를 모른채하고 TV를 틀어보니 우리가 방금 떠나온 로시오 광장에서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하는 관중의 모습이 보인다. 닫힌 창문의 틈새 사이로 승리의 기쁨을 쉬지 않고 만끽하는 이들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도, 그리고 세기의 경기를 또 축제를 눈앞에서 놓치게 만든 것에 대해 미안할 겨를도 없이, 피곤함에 눈을 감는 동시에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리스본 시내 관광을 위해 나온 우리는 공기 중에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는 어제의 승리에 아연했다. 왠지 활기차 보이고 태양이 더욱 뜨거운 것처럼 느껴졌던 건 아마도 어제의 흥분을 도처에서 경험했던 우리의 기분 탓이라고 할 정도로 생활자들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이 감상이란 아마 나의 무심한 일견이 만들어낸 착각일지도 모른다. 경기날의 흥분이 출근하는 직장인, 등교하는 학생의 상기된 얼굴만으로도 명백했던 2002년의 월드컵을 떠올려보면, 우리를 지나쳐 간 무심한 표정의 직장인은 친구들과 메시지로 한참을 어제의 승리에 대해서 얘기했을지 모른다. 



두 개의 축제를 연이어 통과해버리고 나니 여행의 시작에 불과한 첫 주임에도 불구하고 온 몸에 힘이 주욱 빠진 기분이다. 화려한 축제와 말간 일상의 두 얼굴의 확연한 대비를 보고 있자면 어제가 오늘이자 오늘이 내일인 끝이 없는 일상은 당연하고 축제란 꿈이나 허상에 다를 바가 없는 예외의 먼 날들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구절이 있다. '삶은 곧 축제다.' 익숙하기 그지없지만 언제고 가슴에 와 닿은 적은 없는 이런 구절. 비관론자에 가까운 내가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공통점이란 찰나처럼 지나간다는 시간의 속성 하나일 뿐이다. 학생의 삶이란 성적에 어른들의 잔소리에 그리고 사회가 마음대로 정해놓은 서열에 까이고, 직장인의 삶이란 고객에 상사에 월세에 깨지며, 이외에도 많은 이들의 삶이란 아프고 상처받고 깨지고 까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삶이 곧 축제라는 명제는 폭력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학교에서 깨지는 와중에도 쉬는 시간 매점에서 사 먹던 싸구려 아이스크림, 석식 시간에 학교를 뛰쳐나가 급식 대신으로 때웠던 토스트와 떡볶이, 그리고 갓 데뷔한 연예인 얘기만으로도 기뻤던 날들. 회사에서 까이는 와중에 소주에 안주 삼아 곁들였던 연애 얘기, 사는 얘기, 세상 이야기, 그리고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밤들. 그 치열하고 애달프면서도 즐거운 시간들을 과연 나의 비관을 들어 삶이란 축제가 아니라고, 지겨운 일상의 반복일 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미카엘 하네케 (Michael Haneke) 영화 아무르(Amour)는 뇌졸중 이후로 시들어가는 안느와 그의 남편 조지 두 노부부에 관한 이야기다. 제일 마음에 남는 장면이란 증세가 깊어가던 병을 한참 느끼고 있었던 안느가 젊었을 때 찍었던 그들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훑어보며 나눴던 다음의 대화다. 


Anne: C'est beau. (It's beautiful.)

Georges: Quoi? (What?)

Anne: La vie. Si longtemps. La longue vie… (Life. So long. Long life...)

안느 : 정말 아름다워. 

조지 : 뭐가? 

안느 : 인생. 참 길어. 긴, 인생… 


삶은 축제일까? 내일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매 초를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화를 불러일으키는 질문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질문에 '지옥!'이라는 대답이 바로 튀어나오지 않고 잠시라도 고민할 수 있는 당신은, 실은 매 순간 아름다운 삶이라는 축제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끝을 앞에 두고서야 그 찬란함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축제를.


답이야 무엇이건 오늘은 웃자. 사랑하는 이들과 좀 더 바보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지를 걱정하지 않는 오늘의 우리의 삶을 즐기면서. 



Photography by Michael Fund. All rights reserved.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https://www.michaelf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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