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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Oct 03. 2016

사랑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

포르투갈 20일의 기록 4

러브 액츄얼리: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는 질문에 스노비즘도 이길 수 없이 손꼽아버리게 되는, 영화는 좀처럼 두 번 이상 보지 않는 나조차도 다섯 번은 넘게 본 영화. 옴니버스 형식의 이 영화에서 모든 커플이 사랑스럽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는 제이미와 오렐리아의 이야기다. 서로를 이해도 할 수 없는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내용의 말을 한다던지 하는 설정이야 작위적이라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지만, 런던의 학원에서 포르투갈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급기야 크리스마스 당일에 포르투갈로 날아가는 그를 보자면 귀엽다는 형용사가 어울리지 않은 듯해도 꼭 그로써만 설명이 될 것 같다. 


프로포즈를 하기 위해 오렐리아가 일하는 레스토랑으로 찾아가는 제이미. 한두 명씩 따라붙은 사람들은 행렬을 이루고, 큰 무리의 사람들은 레스토랑 입구를 막아선다. "Say 'Yes', you skinny moron"이라고 윽박지르는 미스 던킨 도넛. 제이미와 오렐리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늦게까지 레스토랑의 불을 밝히는 손님들. 제이미가 택시에서 내리고 사람들과 함께 걷던 오르막 그리고 내리막. 거칠고 투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솔직하고 꾸밈없는 포르투갈 사람들의 말. 비록 영화는 프랑스 마르세이유 지방에서 촬영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내가 경험한 리스본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상상한 그대로, 영화에서 표현된 그대로 살아 숨 쉰다.




여동생과의 여행에서는 게으름의 정도, 배가 고파지는 속도, 음식에 얼마간의 금액을 지출할 용의, 늦잠을 잘 여유 등 여러 기준에 대해서 우리는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다지 고민하고 결정할 일도 없었고 불만이 생기지도 않았다. (여동생=물론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운 직장인이라는 전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와의 여행에서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이런 기준들에 있어서, 사소하지만 마음에 섭섭함의 잔향을 일으키는 그런 것들이 맞지 않았을 때가 있었고 나중에 가서는 여행이 조금은 예상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 초연하게 되기까지 이르렀다. 


그 사소한 기준의 첫 번째란 그와 나의 해산물에 관한 기호. 바다에서 먼 스위스에서 해산물을 구하기란 정말 비싼 가격을 지불하지 않는 이상 어렵고, 이로 인해서 해산물의 맛이란 가끔 그리울 때 상상하는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된 나에게 포르투갈 여행에 대한 기대란 실은 해산물 먹방 여행에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작년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같은 기대를 품었다가 처절하게 산산조각 났던 기억이란 어딘가에 묻어놓았으나, 직면하게 된 현실이란 작년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의 입맛은 육류보다 해산물을 더 선호한다. 가을이면 뼈 채로 씹어먹는 전어의 고소함이란, 겨울이면 살이 올라 입안에서 터지는 생굴의 맛은 또 어떤가. 게는 내장에 밥을 비벼먹는 맛으로 먹는 것이거늘. 그러나 그는 오징어나 새우, 게를 보면 입맛을 다시는 대신 인상을 찌푸린다. 잔뜩 기대하고 찾았던 제주도의 해물라면집에서 탐스럽게 나온 오징어와 새우에 젓가락을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저녁으로 찾은 횟집에서 시켰던 매운탕에는 생선 대가리가 들어있었는데, 번들거리는 흰 눈의 그 머리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리면서 ‘이게 맛있다고?’ 말하던 그의 실체(?)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와의 만남에 생각이 달라졌을까. 나는 바다가 한 때 키운 딸(?)이라는 소개를 왜 진작 하지 않았는가. 한 때 페스커테리안(Pescetarian)으로 고기 대신 유일하게 식(食)의 낙(樂)을 일깨워주었던 해산물의 세계를 그는 정녕 어찌하여 발도 디뎌보지 않고 부정해버린단 말인가. 


사실 그와의 첫 데이트는 바르셀로나의 한 유명한 타파스 집에서였는데, 메뉴를 읽지 못하는 우리에게 웨이터가 대신 주문해주었던 타파스 세트 메뉴에는 오징어 몸통과 홍합 등 각종 해산물을 올리브유에 절인 요리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라미를 먹지 않았던 나는 살라미 접시를 그에게 들이밀었고, 그리고 그는 내게 그 해산물 접시를 양보했다. 내가 먹지 않는 음식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때에 받은 인상이란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데이트라지만 연인 관계를 상상도 않던 때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게 바다의 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아직 사실을 절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너의 권유로 나는 해산물만 먹던 페스커테리안의 식생활도 이제 포기해버렸는데 너는 어째서 해산물을 아직도 멀리하는 것이냐.


그러니 우리가 포르투갈에서 먹었던 음식들이란 상상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우리의 경제적인 한계도 얼마간 영향이 있었겠지만,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면서 햄버거를 사 먹기도 했던 우리의 지난 식사들을 떠올려보면 그 영향은 다소 미비했던 것 같다. 그릴에 구운 새우며 생선 등의 해산물 요리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고, 내가 오기를 부려 겨우 해산물을 먹었던 경험이란 슈퍼마켓에서 산 정어리 통조림으로 (혼자) 만들어 먹었던 샌드위치와, 포르투갈을 떠나기 직전에 우겨서 먹었던 생선구이 정식 단 두 번에 불과했다.



해산물에 관해서만은 이견 차이가 있었지만 숙소에서 가까워 우연히 찾은 에그타르트 집에 대한 감상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바삭거리는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면 포실포실하고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의 향이 입안에 퍼진다. 이곳 Fábrica da Nata를 발견한 이후로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고민할 것 없이 이곳으로 향했다. 에그타르트뿐만 아니라 카페라테와 함께 세트로 판매하는 햄치즈 크로와상도 신선하고 맛있었으며, 맛은 물론 살인 물가에 치를 떨던 스위스와 다르게 4유로 정도의 착한 세트 메뉴 가격도 이 집의 플러스 포인트였다.

 

Fábrica da Nata

dos 68, Praça dos Restauradores 62, 1250-110 Lisboa, Portugal 

지하철 Restauradores 역에서 매우 가깝다. 



베를린 여행에서 처럼 젊은 층과 힙스터(?)들이 많이 찾는 그런 곳들을 방문하고 싶었는데, 이곳 타임아웃 마켓(Time Out Market)을 방문하면서 이후에 더 이상 같은 종류의 욕구가 일지는 않았다. 타임아웃(Time Out)은 문화, 엔터테인먼트와 각종 이벤트/행사에 관한 정보를 다루는 매거진으로 한국에서도 발행되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타임아웃 마켓은 그들이 리스본에서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 푸드 마켓이다. 이 레스토랑의 내부는 세련된 감각으로 디자인되었고, 메뉴들은 트렌디하면서 포르투갈 전통 음식을 구현해냈다. 하지만 불운이 따랐던 우리였는지 주문한 음식은 대개 차갑거나 짰고, 특히나 한 그릇당 10유로를 선회하는 가격이란 3유로도 안 되는 가격에 배를 채워주는 돼지고기 샌드위치를 구할 수 있었던 내가 아는 리스본과는 달랐다. 오히려 비싼 물가와 세련된 분위기 따위는 리스본 보다는 런던을 상기시켰는데, Time Out 잡지가 런던 출신의 회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곳을 찾은 순전히 나의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련된 런던 풍의 인테리어와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음식의 만남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주머니 사정이 여유 있고 (나와 달리) 도전이 삶의 모토(?)인 당신이라면 꼭 놓치지 말기를! 나의 방문은 그저 불운이었기를 그리고 자금이 부족한 여행자의 불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시라.   


Time Out Market

Av. 24 de Julho 49, Portugal 

기차역 Cais do Sodré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인더스트리얼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던 우리의 숙소는 발견하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는 사실 거짓말이고 이 리스팅은 여행까지 반년도 넘는 기간이 남은 시점에 다른 리스팅을 예약했다가 새해에는 집 계약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호스트의 사정으로 인해서 이전 예약이 취소되어 내리게 된 차선책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잠결에 벌레를 놓칠 수 있는 것인가) 후기의 수나 내용들에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호스트의 풋풋함이 느껴졌지만 시간을 초월하는 인테리어란 정말 매력적인 부분이었기에 우리는 주저 않고 예약을 진행했다. 자쿠지나 세탁기만 잘 작동하게 된다면(?) 정말 다시 찾고 싶은 숙소다. 위치는 Avenida역 근처로 중심지에서 꽤 가깝다. 


숙소 정보: https://www.airbnb.com/rooms/6280950



LX 팩토리(LX Factory)는 스카프가 흩날리는 자전거를 타는 소녀의 설치물로 유명한 서점 Livraria Ler Devagar가 위치한 복합 문화 상업 공간이다. 공식 사이트에 의하면 이 공간은 “Companhia de Fiação e Tecidos Lisbonense”라고 불리던 실과 천을 만들던 공업단지가 1846년에 Alcântara 에 자리를 잡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이 공간은 이제 LX 팩토리로서 패션, 커뮤니케이션, 미술, 건축, 음악 등 여러 분야의 회사와 전문가들을 끌어들이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힙한 레스토랑부터 작은 예술 오브제를 파는 상점, 디자인 문구류를 파는 상점, 특이한 기념품을 파는 상점, 미술 작가의 작업실, 밴드를 위한 스튜디오 등 각종 예술 분야의 작업과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을 굳이 사지 않아도 구경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공간이다. 


LxFactory

R. Rodrigues de Faria 103, 1300 Lisboa, Portugal

자세한 설명은 공식 사이트 참조: http://www.lxfactory.com/EN/welcome/






리스본에는 유난히 고양이들이 많았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와서 한 여행자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는 우아하게 걸어가버렸던 그들. 


"사랑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 Love is actually all around." (영화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Photography by Michael Fund. All rights reserved.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https://www.michaelf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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