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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Oct 02. 2016

농부의 식탁

음식에 관한 고찰 2

스위스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란 새삼 자부심이 드는 일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는데, 스위스 음식 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수긍이 갈 것이다. 


스위스는 역사적으로 농부들의 나라로, 스위스 전통 음식은 소박하고 감자나 치즈와 같은 간단한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스위스의 음식은 기본적으로 많은 다른 지역들(주변에 위치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특히 언어권에 따라(스위스는 크게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식 문화는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그런 반면에 이 지역 간 경계를 넘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그야말로 스위스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은 메뉴들도 있는데, 그들은 아래와 같다. 


치즈 퐁듀(Cheese fondue)

네모난 빵조각과 함께 녹여서 먹는 치즈를 뜻한다. 긴 포크로 빵조각을 집고 Caquelon이라고 불리는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퐁듀 냄비에 치즈에 녹이고 휘휘 저어가면서 먹는다. 퐁듀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염소치즈, 와인, 밀가루의 조합으로서 기원전 800-725년경 호메로스(Homer, 고대 그리스의 서사 시인)의 일리아드(Iliad, Troy 전쟁을 읊은 서사시)에서 퐁듀는 처음 언급되었다고 한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스위스 요리책(Anna Margaretha Gessner의 Kochbuch)에서는 치즈를 와인을 함께 요리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고 한다. 일부는 스위스 산맥의 소작농들이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추운 계절에 남은 빵과 치즈를 이용해서 만든 음식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원이야 어찌 되었건 진짜 퐁듀의 맛은, 고소할 것만 같은 외양에 의외로 쌉싸름하고 시큼한 맛이 끝에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만드는 과정에서 버찌를 양조, 증류해서 만든 키르슈(kirsch)라는 술을 가미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잘 나누어 먹지 않는 문화에서 한 냄비에 다 같이 포크를 사용하기 때문인지, 자신의 포크에서 빵을 치즈 안에 실수로 떨어뜨리면 노래를 불러야 하는 술 게임과 같은 놀이가 있기도 하다.

 


라클렛(Raclette)

녹인 치즈를 껍질째 삶은 감자(Gschwellti, jacket potatoes)와 함께 오이피클, 양파 등의 채소와 함께 먹는 치즈 요리를 뜻한다. 라클렛의 기원은 독일어권 스위스의 수도원들에서 만들어진 중세시대의 저술물들이나 텍스트에서 스위스와 사보이 지방(현재 프랑스) 산맥의 소작농들이 영양가 있는 식사로서 많이 먹었던 음식으로서 언급되었던 129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스위스의 독일어권에서는 구운 치즈(Bratchäs, roasted cheese)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목동들은 소들을 몰 때 치즈를 챙겨서 다녔는데, 저녁이면 불을 지펴 불 옆에 둔 치즈가 부드러워졌을 때 이를 긁어서 빵 위에 얹어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삼겹살 불판처럼 다 함께 라클렛을 간편하게 해 먹기 위한 기계가 프랑스나 스위스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다. 



앨플러마그로넨(Älplermagronen)

그라탱의 한 종류로 감자, 마카로니, 치즈, 크림과 양파로 만든다. 가장 중요한 특징이란 뭉근히 조린 사과와 함께 차려낸다는 것. 한 현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 음식은 전쟁 기간에 먹을 음식이 별로 없었던 사람들이 집에 있는 재료들을 하나씩 가져와서 만들게 된 것으로 이로 인해서 그라탱과 사과라는 특별한 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앨플러마그로넨에 곁들이는 사과 스튜는 가공된 상태로 스위스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뢰스티(Rösti)

우리나라 감자전과 비슷한 납작한 생김으로 간 감자를 버터나 기름에 구워내는 감자요리다. 감자에 포함된 전분 이외엔 모양을 잡기 위해 첨가하는 것이 없다고 스위스 공식 사이트에서는 얘기하지만, 기호에 따라 우유가 들은 계란물을 첨가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아침식사를 위한 음식으로 베른 지방의 농부들이 많이 먹었던 음식이었지만, 이제는 스위스는 물론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응용 음식으로 크림소스에 요리된 송아지의 간과 버섯이 뢰스티와 함께 내어지는 취리히 지역의 특선 요리, 송아지 고기 요리 취리히 게슈네첼테스(Zürcher Geschnetzelte)가 있다. 



뷔르헤 뮈슬리(Birchermüesli)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뮈슬리의 기원이 실은 스위스다. 1900년경 스위스의 의사 막시밀리언 오스카 비르헤-벤너(Maximilian Oskar Bircher-Brenner)가 신선하고 영양이 풍부한 과일이나 채소의 섭취가 치료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그의 환자들을 위해서 개발한 음식이다. 귀리 플레이크, 레몬주스, 농축 우유, 간 사과, 헤이즐넛과 아몬드가 들어있다. 많은 스위스 가정에서 입맛이 떨어지는 더운 여름이면 요구르트, 신선한 과일, 꿀 등을 뮈슬리에 곁들어 저녁 식사로 간단하게 해결하기도 한다.

 


과연 스위스의 음식은 12첩 반상의 한정식에 비하면 소박하고도 간단하다. 


베른에 위치한 스위스 알파인 뮤지엄(Swiss Alpine Museum)을 지난번에 찾았을 때, 전시는 필름 꼴라쥬의 형식으로 알프스 산맥을 오르는 이들의 두려움에 가까운 경외와 좌절, 그리고 극복을 조명하면서 알프스로 대표되는 거대 자연에 도전하는 스위스인의 지난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자연에 싸움을 걸기도 하고 지기도 했던 이들. 길고도 질긴 대항의 끝에 오늘의 그들이 오를 수 없는 산맥은 아마 없을 정도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다는 융프라우요흐에 우리는 조금도 고생치 않고 케이블카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오를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로 결론짓는 것만큼 우매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알프스 산맥을 지척에 두고서, 자연이 오랫동안 생활에 스며든 이들의 삶이란 되려 자연에 대한 순응이며 존경에 가깝다. 짧고도 긴 시간을 보내면서 관찰한 이곳의 사람들은 주말이면 숲을 걷고 산을 오르며, 강에서 유영한다. 저녁 시간이면 산에서 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식구들의 배를 채운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함이라는 눈 먼 평가를 내리는 대신, 존외를 마음 한편에 지니고서 매일을 살아가는 스위스인들과 자연의 조화를 이 소박함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Swiss_cuisine

http://www.myswitzerland.com/en-ch/typical-food.html

http://www.bbc.com/travel/story/20130212-tracing-fondues-mysterious-origins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86079&cid=48182&categoryId=48270

https://en.wikipedia.org/wiki/Raclette

https://en.wikipedia.org/wiki/Rösti

https://en.wikipedia.org/wiki/Mues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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