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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Oct 24. 2016

리스본에서 찾아온 최초의 평화

포르투갈 20일의 기록 5

"I haven’t got warm with this city yet. "

나 아직 이곳에 따뜻해지지 않았어. 


포르투갈에 도착한 지 벌써 10일쯤이 되었을 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응? 아직 따뜻해지지 않았다니. 이런 표현은 처음 들어봤는데. 그 뜻은 알 수 없어도 대충 따뜻해졌다, 편안해졌다, 좋아졌다, 뭐 이런 뜻 인가, 짐작해볼 수는 있었다. 영어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전에서 찾아보니 독일어에서는 이런 뜻이 있긴 하다. 


an einem Ort(e) warm werden 어떤 곳이 있기에 좋아지다 [편안하다]


당시에는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도 그렇다고 확실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여행지에 가면 으레, 무엇이든지 놀랄 준비가 되어있는 마음 상태를 바탕으로, 여행의 안경 너머에서 펼쳐지는 것들이란 좋게만 보인다. 생활인과 이방인의 경계에서 애매하게 서성이면서, 남의 매일을 나의 것인 양 살아보기도 한다. 어물쩡 거리며 생활의 겉면을 훑어보는 며칠의 시간이 지나면, 괜히 마음이 아른거리고, 떠나기 아쉽고,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이런 마음은 희박한 가능성을 알면서도 오늘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꾸미는, 꼭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 따위로 덮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많은 도시들에서 이 마음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의 뚜껑을 덮어버리고 왔는데, 이걸 독일어에서는 '따뜻해졌다'라고 표현하는구나. 


그래, 어쩐지 이번 여행은 조금은 이상했다. 열 번이나 밤이 찾아오고 아침을 맞았던 이 곳에서, 아직 마음은 아른댈 채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만 같다.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을 멋진 장소들에도,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스위스와도 꽤 다른 리스본 삶의 얼굴에도 우리는 왜 심드렁한 것일까. 페스티벌에다 축구경기, 여행에서는 이례적인 이런 행사들을 다녀와서? 더위와의 사투에 온 몸은 물론 혼이 빠져서? 아침 아홉열 시에나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 일정을 시작해버리니 이곳저곳 제대로 구경을 다니지 못해서?




리스본에 대해 사전 조사도 별로 하지 않은 우리는 그날 역시 차고 넘쳐서 사용되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을 두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빠리를 찾았을 때, 뻬르 라셰즈 묘지(Père Lachaise Cemetery)에서 유명인사들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신기해했던 나의 기억을 반추하며 나는 리스본 지도에서 묘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김없이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올라서 우리가 닿은 곳은 Cemitério dos Prazeres. 주황색 지붕의 주택들이 빼곡하고 촘촘하게 모여있는 리스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만큼 높다. 망자들이 땅 아래에 잠들어있는 이 곳을 거닐다 보니 한 여름의 더위였기에 망정이지 쌀쌀한 날씨였다면 스산함이라고 표현했을, 죽은 듯한 고요가 느껴진다. 이렇게나 높이 위치해있는 죽음의 땅에서는 삶이 시시각각 펼쳐지던 아래의 시가지와 달리, 경적 소리, 응급차 소리 대신에 매미의 울음소리만이 소음의 축에 들 법하다.



폭염의 고요 한가운데, 영원히 잠들어있는 이들과 같이 아스팔트 바닥에 우리는 그냥 누워버렸다. 가만히 누워있자니 이따금씩 비행기들이 무지막지한 굉음을 뒤꽁무니에 남기고 상공을 가른다. 나의 곁, 조용한 영면의 땅 밑에서 그들은 어디론가 날아가는 여행객들을 질투하고 있을까. 아니면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31도의 무더위에 땀을 바가지 채 흘리며 걸어 다니는 행위의 속절없음에 조소를 머금고 있을까.   


리스본만은, 자영업자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도시들이 주택지역, 상업지역으로 나눠져 있는 것과 달리 리스본은 그 경계가 아주 모호하다. 언덕 꼭대기까지 빽빽하게, 개미굴처럼 작은 가게들은 살림집을 곁에 두고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조잡하게 속옷들을 늘어놓은 가게의 무기력한 얼굴을 하고 앉은 주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 작은 일본식 레스토랑에서 손님 수보다 많은 대가족이 함께 일하는 걸 봤을 때, 어떻게 그들이 생활을 영위하는지 의문스러웠다.


그 아래의 땅에서 오늘을 또 내일을, 가게 건너 가게를 꾸리며 살아내는 그들의 삶의 무게에, 한여름의 더위와 더해서 우리는 짓눌러있었던 건 아닐까. 한밤의 골목에도 명향하는 경적소리와 사람 소리, 열심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그 모든 소리가 소거되고 난 이 높은 곳에서, 여행자의 경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의 얼굴을 본다. 


이런 생각에 끝에 비록 '따뜻'해지지는 않았지만, 리스본 여행에서 우리는 최초로 평화를 맞았다. 


Cemitério dos Prazeres (Prazeres Cemetery)

Praça São João Bosco, 1350-297 Lisboa, Portugal





촬영 장비들이 즐비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로 짐작되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분명 묘지 한가운데서 촬영이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멀리서부터 땀에 절은 얼굴로 걸어오는 우리를 보며, 접근을 막으려는 말을 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던 스태프 중 하나에게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무슨 촬영이 진행 중인가요- 하고. 딱 붙은 나팔 청바지, 하이힐, 헝클어진 금발. 보잉 선글라스 너머로 그녀는 20년도 넘은 유명한 프랑스의 드라마를 촬영 중이고, 주인공 중 하나가 부모님을 잃어 묘지를 찾은 씬을 촬영 중이라고 쿨하게 답해준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프랑스에서 포르투갈로 왔다는데, 비행기 삯과 숙박요금 같은 경비들을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그 효용에 의문이 들 때쯤, 드라마에 등장하고 싶지 않다면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걸어가버렸다. 리스본에는 이런 삶도,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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