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갈리시아에서의 일주일 1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공항. 탑승객 중 제일 꼴찌로 입국장에 들어선 우리는 한참을 기다렸을 세자(Cesar)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를 찾았으나 웬걸. 공항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그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열한 시 반을 가리키던 시계는 벌써 한 시를 향해가고.
‘실은 스페인이 고향이 아닌 것 아닐까'
'우리한테 사기를 친 건가'
'맛있고 신선한 식재료 장을 보느라 늦는 걸 거야’ '라고 믿고 싶겠지..'
공항 밖 입구에서 서성이며 오만 상상을 하다 끝내 반쯤 체념하고 입국장으로 다시 들어와 벤치에 엉덩이를 좀 뉘려고 하니 왠 스페인 할아버지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딱 봐도 수상해. 돈 구걸할 것 같은 직감이 스쳐갔고 어쩌고 말을 거는데 스페인어 못한다는 변명과 함께 도망쳐버렸다. 호기심 많은 미카엘이 뭐라고 하셨냐 되묻는 걸 보며 또 골치 아프게 왜 말을 붙일까 한숨 쉬려는 찰나, 그의 입에서 나온 서툰 영어는 예상치도 못했던,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던 이름 두 자 세자! 알고 보니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데, 우리는 현지 번호가 없었고 세자는 인터넷이 안 되니 인간 메신저를 보낸 모양이었다. 주유소에서 충전을 하다 열쇠를 안에 두고 차를 잠갔다나. 입국장에서 웬 백인애랑 아시안 여자애의 조합을 기다리며 한참을 서성거렸을 그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은 더해지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째려보던 고작 수분 전의 내가 머쓱해져 할 수 있는 대로 크게 웃어 보이며 감사를 전했다. 왓츠앱 메신저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며 세자를 기다리던 우리 앞에 갑자기 등장한 이 인간 메신저가 비행기를 타야 된다며 손인사를 하고 멀어져 가는 모습이 어쩐지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쩐지 이 하나의 상황은 참으로 '세자'스럽다. 우리의 여행이 세자로 시작해서 세자로 끝났던 만큼 세자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세자는 4년 전 갈리시아를 떠나 스위스로 '갔다.' 한 때 갈리시아에서 페인트공이었던 그는 이제 베른의 한 청소업체에서 일하며 창문을 닦고 건물을 청소한다. 그는 4월부터 12월까지는 스위스 베른에서 거주하고,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그의 살던 집에서 짐을 빼고 스위스 초콜릿과 치즈를 잔뜩 이고서 다시 갈리시아로 향한다. 이듬해 3월까지 그는 스페인 갈리시아에서 머물지만 태국, 아르헨티나 등 다른 나라로 짧게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는 돌아오는 4월부터 또 9개월간 지낼 곳을 구해야 한다. 그의 살림은 정규직으로 채용된 같은 갈리시아 출신 회사 동료의 집에 맡겨져 있다. 매 년 스위스와 갈리시아를 오가며 그 중간 어디쯤의 지점에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그이기에, 그가 스위스로 ‘이민’을 간 것인지 ‘이사’를 간 것인지 구분하기가 영 명확치가 않다. 그는 올해 3월 말이면 또 스위스로 ‘갈’ 것이다.
일의 특성이 중노동인 만큼 이 청소업체에는 스위스 현지인들보다 언어가 되지 않아 다른 일을 찾을 수 없는 이민자들이 주를 이룬다. 3년 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미카엘이 종일 앉아있는 일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선호해 찾게 된 업체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세자를 만났다. 세자가 영어를 할 줄 몰라 그들은 스페인어-독일어 사전을 항상 곁에 두고서 말보다는 몸짓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첫 만남 이후로 세자는 매 해 미카엘을 자신의 고향 갈리시아로 초대했다. 2년 전, 마침내 세자를 만나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났던 미카엘은 바르셀로나에서 하필 나를 만나는 바람에(?) 갈리시아 대신 한국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그렇게 3년을 미뤄온 초대에 드디어 응하게 된 것이 이번 갈리시아 여행이다.
나 역시 그를 미카엘과 함께 몇 번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그는 어김없이 갈리시아에 초대를 잊지 않았고, 초대의 끝에 그는 언제나 바깔라오(bacalao, 대구) / 깔라마르(calamar, 오징어) 같은 해산물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하여 나로서는 이번 여행이 스위스에서 해소할 수 없었던 해산물에 대한 갈망을 이룰 수 있는 기회였다. 포르투갈에서 해산물 먹방 여행의 좌절과 미카엘의 밭은 입을 생각했을 때 약간의 걱정이 들기는 했으나 결국 이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번 여행에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먹기만 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갈리시아 음식은 다음 편에 따로 다루고자 한다. 왜냐면 그만큼 중요하니까!)
한 시간 반 만에 나타난 세자는 그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차를 그냥 그 주유소에 세워두고 왔다고 했다.(응?) 원래 첫날 공항에서 가까운 산티아고 도심에서 하룻밤을 머무려고 했던 계획은 급 수정되었고 우리는 한 시간 가량이 걸리는 그의 고향 비미안쪼로 향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주유소를 지나는 데 노여운 사람들의 무리 사이에 있어야 할 차가 없다. 본래 차주인 세자의 여동생이 다행히 세컨드 키를 찾은 모양이었다. 이 여행, 괜찮을까(...) 괜한 노파심이 든다.
산티아고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작은 마을 비미앤쪼에 위치한 세자의 집에 도착했다. 이 세자의 ‘집’이란 사실 세자네 가족들의 집이다. ‘집’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공간의 현재형이라면, 아마 세자의 ‘집’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다른 워딩이 필요할 것 같다. 집의 과거형, 한 때 집이었던 곳을 나타내는 어떤 단어. 올해 마흔아홉의 세자 위로 세 명의 다른 형제자매가, 그리고 세자의 아래로 세 명의 또 다른 형제자매가 나고 자란 곳. 문을 열고 장난스럽게 Hola!(안녕!) 하면서 들어서는 세자의 인사는 허공에 맴돌고 우리를 맞는 것이라고는 온기가 마른 텅 빈 집. 세자의 본가는 긴 복도를 따라 4개의 방과 주방, 2개의 화장실, 다이닝 룸과 거실 등이 늘어져 있다. 현재 이 큰 공간을 채우는 사람이라고는 몇 개월 잠시 머물다가는 세자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비미앤쪼라는 작은 마을에 남은 것도 여동생 내외뿐, 다른 남매들은 모두 갈리시아 곳곳에 흩어져 있거나 외국에 있다고 했다. 세자가 아직 청춘의 언저리에 있을 때 일찌감치 돌아가신 어머니와 꽤 오래 일곱 남매 곁에 남으셨던 아버지, 두 분의 흑백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다. 이제는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빠일 남매들도 여덟 살 학생으로, 스무 살 군인으로, 서른 살 신부의 모습으로 집안 곳곳에 사진에 남아 있다. 주방 한가운데 어울리지 않게 놓인 18세기에서 온 듯한 화목난로에 불을 계속해서 지펴도, 예전의 모든 웃음과 이야기들과 사람들이 빠져나가버린 이 오래된 집에 맴도는 쓸쓸한 한기가 여전히 가시질 않는 것만 같다. 세자는 새어버린 머리와 수염에도 여전한 사진 속 스무 살의 얼굴에서 묻어나던 밝은 에너지로 내게 Que tal? (어떻게 지내니/괜찮니)이라고 스페인어로 묻는데, 청승맞게 왜 슬픈 마음이 드는지.
세자의 집에 짐을 두고 나온 이후로는 그야말로 5분마다 세자 지인 마주치기의 연속이었다. 작은 동네에서 외식을 나갈 때면 꼭 아는 사람이 있는 아버지의 고향보다 이건 뭐 훨씬 익스트림한 버전 같았다. 저 친구는 바르셀로나에서 일하는 친구, 이 친구는 숲에서 일하는 친구, 저 친구는 약물중독이었던 친구, 또 이 친구는 스위스에서 일하다 은퇴한 친구. 코 앞의 슈퍼마켓에 가는 길목을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든 친구만 몇인지. 세자가 데려간 그의 집의 바로 맞은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세자는 레스토랑 들어서자마자 바에 앉아있는 한 손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종업원도 아는 사이인 듯 친한 내색을 해왔으며, 또 다른 지인의 지인들이 줄지어서 들어왔다. 처음 본 우리에게도 볼을 맞대며 인사를 하는 그네들의 친밀함이란.
재미있는 것은 비단 이 비미앤쪼라는 마을뿐만 아니라, 갈리시아 지방 대체적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게 이곳 문화의 일부인 듯 보였다는 점이다. 이 소셜라이징이란 단지 ‘나의’ 친구들과 혹은 ‘나의’ 지인들과 이따금씩 저녁 약속을 만드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하루 내내 일상에 녹아있는 삶의 한 방식에 가깝다.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면 그 높이가 어느 곳보다도 낮은 듯한 느낌. 특히 레스토랑이나 바는 그들의 일상적인 공간처럼 보였다. (‘집-회사-집' 대신에 '집-바-회사-바-집’과 같은.) 이곳의 레스토랑이나 바는 오전에는 커피를 찾고 점심, 그리고 오후가 저녁으로 접어들수록 가볍게 와인이나 맥주를 한 잔씩 마시는 이들로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굳이 약속이 없어도 들르는, 혼자서 가볍게 커피를 마시거나 와인을 걸치고 있으면 지인들이 오고 가기도 하고 많은 이야기 끝에 또 혼자 문을 나서도 이상할 곳이 없는 그런 공간.
바틀째 시킨 와인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갈리시아에서 우리의 첫날밤도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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