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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tyi Knony Aug 25. 2019

남자도 아는 하이힐의 비밀

변태 같을까 봐 조심스럽게 꺼내는 이야기


나는 여성분들이 즐겨 신는 힐을 최고의 패션 아이템으로 꼽는다. 스커트나 블라우스와 같은 의류 아이템들의 전체적인 조합, 맥락 그리고 분위기까지 아우르고 조절할 수 있는 신발의 강력한 힘을 잘 알고 있다. 누가 처음에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다’라는 말에 매우 동의한다. 




하이힐 안에 숨겨진 과학

신발은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성적 본능을 자극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라마찬드란 V. J. Ramachandran 박사가 발표한 연구 결과는 제법 흥미롭다. 그는 특정 자극을 신체의 여러 부분에 동일하게 부여한 후 나타나는 반응을 자기공명영상 뇌 사진으로 찍어 성적 흥분이 어디에서 빠르게 나타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제일 빨리 반응이 나타난 부위는 입술이었다. 뇌를 자극하는 부위가 차지하는 면적도 상체 전부가 반응할 때의 면적과 맞먹을 정도로 컸다. 놀라운 것은 성기보다 발이 뇌를 더 빠르게 자극했다는 점이다. 발이 성기보다 더욱 강력한 성적 암시와 떨림을 뇌에 전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어떤 신발을 신는가에 따라 활성화되는 신체의 성감대 부위도 달랐다. 엉덩이와 가슴, 팔과 다리의 흔들리는 폭과 떨림의 정도가 보폭과 걸음걸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패션 칼럼니스트 김홍기 씨는 서양의 신발이 다양해진 것은 발의 에로티시즘과 내밀한 매력을 전달하기 위한 진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신발 디자인의 진화는 여성의 발로 대변되는 신체를 어떻게 감추고 드러낼지를 결정해온 역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루이 14세 때 파워 드레싱*의 일환으로 처음 등장했던 하이힐은 일반적인 신발에 굽을 올려놓은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의 심미적 욕구를 반영하고 기능적 요구사항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고 있다.  

하이힐이 뿜는 매력

하이힐이 여성들에게 주는 효과가 상당하다. 키가 작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옷맵시에서의 2%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기능이다. 부족함을 충전함으로써 생기는 자신감과 당당함은 덤으로 얻는 이득이다. 


인체가 주는 아름다움은 곡선이 만들어내는 조화에서 나온다. 남자와 여자를 가릴 것 없이 오똑한 콧날, 계란형 얼굴, 잘록한 허리, 볼록한 팔 근육을 갖기 원하는 이유! 사람을 흘리게 하는 ‘그 곡선’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위험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안면 성형수술을 하는 것, 라면을 끓여 먹고 싶지만 밤 9시 이후라 참는 것, 피트니스 센터에서 인상까지 쓰며 무거운 아령을 드는 것은 모두 ‘그 곡선’을 획득하기 위한 욕망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걷기 불편할 뿐만 아니라 발목과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가지만 하이힐을 끊을 수 없다. 일정한 재화만 지불하면 ‘그 곡선’을 욕망을 억누르는 노력 없이도 추가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보시(하이힐 밑창에서 위 방향으로 꺾이는 부분)에서 굽까지 이어지는 아찔한 S-line! 하이힐을 직접 신는 여성들은 매혹적인 선에 중독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남성들도 신발이 만들어 내는 ‘그 곡선’을 보고 환호한다.   


하이힐은 캐주얼과 클래식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해주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만능 치트키인 셈이다. 편하게 나온 일상의 옷차림도 하이힐과 함께면 제법 힘을 주고 나온 옷차림으로 변신한다. 남녀 모두 청바지, 흰 티셔츠, 검은색 블레이져로 소개팅을 나간다고 해보자. 남자의 아이템만으로는 이 조합을 캐주얼 이상으로 만들기는 힘들다. 로퍼를 포함한 일반 구두를 신으면 패션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히고 스니커즈를 신으면 너무 편하게 나왔다는 컴플레인을 들을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여자의 하이힐은 다르다. 가정했던 위의 조합도 품격 있는 옷차림으로 승격시킬 수 있다.



철저하게 주관적인 하이힐 102% 활용법

5cm 굽의 하이힐을 신어도 7cm만큼 다리가 길어 보이고 싶다면 디테일한 선택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종류의 하이힐이 동일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바지나 치마를 입었다고 가정했을 때, 발등에서 시작하여 발목과 종아리까지 이어지는 살색의 연속성 여부가 부가적인 다리 길이 연장 효과의 핵심이다. 같은 색상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되어 보이면서 발등 부분까지 다리로 편입되어 보이게 하는 착시를 이용하는 것이다. 발등에 끈이 있는 메리제인 힐, 발목에 끈이 있는 이브닝 힐이나 스트랩 힐은 원래 누리고자 했던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없게 한다. 살색과 다른 색을 가진 끈이나 장식물이 연속성을 해치면 발등과 발목, 종아리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연출한다. 착시에 착시가 얹히면서 오히려 다리가 더 짧아 보이게 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더욱이 아찔함에서 비롯되는 섹시함도 뭔가 반감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지난여름, 강력한 폭염에도 발가락이 보이는 샌들 대신 슬링백 힐*이나 블로퍼*를 고집하는 여성분들이 있었다. 발등에서 종아리까지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게 이어지는 단일한 색의 흐름이 주는 비밀을 이미 알고 계신 것 아닐까?  


웻지 힐*은 우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매력의 원천인 가보시를 통으로 가려놓았으니 말이다. 발의 편안함을 유지하고 안정적인 걸음걸이를 가능하게 하는 웻지 힐이지만 여성적인 느낌은 확실히 일반 힐보다 떨어진다. 겨울철 여성들의 완소 아이템인 어그부츠가 남자들로부터는 크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이제 곧 가을이다. 슬슬 FW season을 화려하게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왔다. 남성들은 옷장에서 셔츠나 블레이져를 먼저 꺼낸다. 여성들은 신발장에서 하이힐을 먼저 꺼낸다는 것이 여자 친구가 알려 준 정보이다. 성별 가리지 않고 간지 나게 연출된 fit을 보는 것과 입는 것 모두 좋아하는 나는 이미 재킷을 밖으로 내놓았다. 여성들도 하루라도 빨리 하이힐을 신발장에서 뺐으면 좋겠다. 하이힐이 가진 '노골적인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남성들도 변태라고 오해받을까 봐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지, 하이힐의 은밀한 매력을 잘 알고 있다. 이미 남성들은 기다리고 있다. 하이힐의 우아한 등장을!



* 파워 드레싱: 자신의 지위와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격식을 드러내는 옷차림

* 슬링백 힐: 오픈 백(open back) 힐. 발 뒤꿈치 부분이 노출된 형태의 구두.

* 블로퍼: 앞부분은 일단 로퍼지만 발 뒤꿈치 부분이 노출된 형태의 구두.

* 웻지 힐: 쐐기형의 굽이나 힐이 붙은 구두. 이 굽이 밑창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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