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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tyi Knony May 04. 2018

냉정한 듯 따뜻한 어떤 판사의 외침

'개인주의자 선언' 서평  

사회성과 융통성이라는 포장용 단어로 조직으로의 충성을 강조하는 집단 문화에 찌든 한국 사회 시민들에게 한 부장 판사가 외친 ‘개인주의자 선언’은 제법 당돌하게 느껴진다. 개인이 누릴 수 있는 행복보다 조직이 거두는 성과가 우선시 되고 갑질과 억압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은 헬조선에서 ‘탈집단’을 의미하는 듯한 책 제목은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책 안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냉철함이 아닌 따뜻함이다. 집단이 부여하는 정신적 압박과 눈치로부터 자유로운 당당함을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책 내용이 실망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저자는 당돌한 선언과는 다르게 집단을 버린 사람이 아니다. 사회를 향한 관심과 시선이 전혀 냉소적이지 않다. 개인주의자 치고는 타인에 대한 연민도 많다. ‘제목에 낚였어’라는 평가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것도 형용모순이 섞인 책 제목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책에는 일상과 관련된 문유석 씨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담은 글들이 담겨있다. 굳이 개인주의자 선언을 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서술되어 있다. 호기롭게 외친 첫 선언이 줬던 감명과 울림이 끝까지 남아있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대략적인 맥락을 이해하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1부에는 개인을 초점으로 한 이야기들을 담아 놓았다. 저자는 수직적 가치관과 치열한 인정투쟁의 장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로부터 받는 개인의 스트레스를 불필요하다고 단정 짓는다. 무차별적인 비교와 경쟁을 통해 남는 것은 획일화된 기준에 의한 서열화밖에 없는데 이것은 개인의 행복감을 갉아먹는다. 개인의 존재가치를 행복감 추구로 보는 그는 다양한 개인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성숙한 개인주의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싫은 것을 싫다고 하는 것이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지는 미국과 스칸디나비아 사회의 배척 없는 개인주의 문화를 으뜸으로 평가한다.    


2부에는 우리의 이웃과 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저자는 사회 공동체에는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계층이 존재하는 것도 개별 인간의 복잡 다양함을 나타내는 양상 중의 하나라고 본다. 그는 이들을 향한 존중과 배려를 강조한다. 타인을 완전하게 배제하는 개인주의자 선언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부에는 개인주의자가 당면한 집단과 사회가 가진 불편한 진실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담겨있다.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여러 북유럽 사회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소개되어 있다. 다른 사회과학 서적에도 등장할 만한 지식의 단순한 나열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개인 간의 연대감 강화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문유석 씨가 최종 발언하고 싶은 것은 개인주의자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존 측면에서 개인의 생득적 불리함을 인정하는 것과 거대 집단과 타협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면 아니 된다. 사회를 향한 관심은 바꿔보면 다른 개인에 대한 애정이다. 약한 개인을 챙기는 것은 결국 개인밖에 없다. 공정한 규칙을 적용하고 자유로움의 일부분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개인끼리 타협하고 연대하는 것. 이것이 저자가 지향하는 합리적 개인주의의 진면목이다. 집단은 절대로 개인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러니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책임져주면 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자신의 신념을 파악한 독자들이 함께 ‘개인주의자 선언’에 동참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략)…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가 에필로그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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