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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유 Oct 21. 2024

소가 되새김 하듯 생각을 곱씹고 있을지도

나는 왜 쉽게 지칠까?

아무리 생각없어 보이는 사람도 하루에 꽤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캐나다 퀸즈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약 6,200개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하루 중 수면 시간을 제외한 14시간을 깨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약 8초에 한 번씩 생각이 전환되는 셈이죠. 우리 뇌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하루 전체 에너지의 20%가 사용됩니다. 여기에 복잡한 사고와 집중도가 더해지면 에너지 소모량은 더욱 커지지요.

      

HSP(Highly Sensitive Person) 경우는 어떨까요? 이들의 뇌는 본인들 의사와 상관없이 수많은 정보를 자동적으로 처리합니다. HSP는 상대방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매우 잘 알아차리는 특성이 있어요. 대화 도중 상대방의 미세한 감정 변화도 금세 알아차리곤 하죠. 이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감정이 단순히 인식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 감정에 쉽게 전이된다는 점에 있어요. 주변 사람의 감정에 압도되거나 휩쓸리곤 합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인 사고를 불러오기 때문에 정서적 소진이 더 빨리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화를 내면, ‘아, 화가 났구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나에게 화를 내는 거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집니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하듯 생각을 씹고 또 곱씹는 것이죠. 이런 생각 곱씹기는 반추 사고라는 심리적 현상을 만들어 내는데, HSP(매우 민감한 사람)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반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반추 사고 : 감정 소진의 악순환     


HSP(Highly Sensitive Person)들에게 반추 사고는 흔히 경험하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반추란 과거에 있었던 일이 현재에 반복적으로 떠올라 후회와 슬픔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반추는 쉽게 끝나지 않아요. 끝이 있다면 대부분 파국으로 결론 나고, 무력감에 빠지게 되지요. 반추는 ‘생각의 늪’과 같아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요. 심지어 긍정적인 생각마저 밀어내고, 행동할 기운조차 사라지게 만듭니다. 이 때문에 반추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납니다. 반추가 지속되면 무기력과 번아웃, 심하면 우울증까지 이어질 수 있어요.


인턴 심리상담사로 수련 받을 때의 일입니다. 선영 씨(가명)는 고부 갈등 문제로 상담실을 찾아왔어요. 분가했지만 시어머니 명의로 된 집에 살고 있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황이었죠. 그 때문에 시어머니의 눈치를 많이 보며 고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분가 후 첫 명절날, 시댁을 방문한 선영 씨는 시어머니가 준비해 둔 재료로 전을 부치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는 음식을 사 오시던 시어머니가 이번 명절에는 직접 준비하시겠다고 했거든요. 그로 인해 선영 씨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분가한 것이 못마땅해서 일부러 일을 시키려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죠. 불편한 마음으로 전을 부치던 중, 시어머니께 한 소리를 듣게 됩니다.  

   

“전 모양이 이게 뭐니? 친정에서 안 배웠니?”


이 말에 선영 씨는 억장이 무너졌어요. 평소에도 시어머니가 친정을 무시하는 것 같다고 느껴왔는데, 그 느낌이 확인된 순간이었죠. 친정에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당한 기분이 들었고, 친정 부모님까지 무시당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웠죠.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시어머니 명의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거실에서 TV만 보고 있던 남편의 눈치도 보였고요. 선영 씨는 매일 시어머니 생각에 사로잡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라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선영 씨와 같은 반추 사고는 현재의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지요. 우리는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추 사고는 마치 과거에 갇힌 것처럼 우리의 감정을 묶어두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마저 앗아갑니다. 반추 사고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반추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란 쉽지 않습니다.     


반추 사고에서 벗어나는 방법     



반추 사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반추 사고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어떤 생각이 2분 이상 반복된다고 느껴지면 다음 두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세요.   

  

(1) ‘생각을 반복하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떠 올랐니?’

(2) ‘생각을 계속하니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니?      


만약 이 두 질문 중 하나라도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면, 반추 사고에 빠져 있으니 당장 자신을 구원해야 합니다. 이때 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행동은 자신에게 ‘컷’이라고 외치는 것이죠. 마치 감독의 ‘컷’ 소리에 극에 몰입한 배우가 연기를 끝내는 것처럼요. 앞서 퀸즈 대학교 연구에서 우리의 생각은 수시로 전환됨을 알 수 있었어요. 영화 속 장면처럼 반복되고 있는 생각의 흐름을 끊고 새로운 시나리오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반추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컷’을 외쳤다면 이제는 ‘액션’을 외쳐야 해요. 반추를 인식했다면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게 좋습니다. 몸의 움직임은 생각의 흐름을 바꾸는데 큰 도움을 주니까요. 전문가들은 종종 산책이나 가벼운 신체 활동을 추천합니다. 무릎이 튼튼하다면 달리기도 좋고요. 그러나 산책이나 달리기를 하는 여유를 느끼기 힘든 사람들은 이것마저 부담일 때가 많습니다. 갑자기 시간을 내는 것도, 안 하던 일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이럴 때는 단순한 일이나 가벼운 집안일이 도움 될 수 있어요. 선영 씨처럼 과거의 상처를 되새기며 힘들어할 때, 간단한 설거지나 세탁물 개기 등의 행동은 복잡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니까요. 미뤄놨던 집안일을 이럴 때 해보자는 겁니다.      


또한, 글쓰기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단순히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을 글로 적어보면, 그동안 얽혀있던 감정들이 한결 정리됨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부정적 감정을 글로 쏟아내고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시각전환에 초점을 맞춰보는 거예요. 보다 자세한 방법은 뒤쪽에서 다시 이야기할게요.     


생각 곱씹기에서 생각 나아가기로
     


반추 사고는 감정적으로 민감한 사람들, 특히 기혼 여성들에게 자주 찾아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정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함께, 과거에 대한 후회나 자책이 겹쳐질 때 우리는 쉽게 그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지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 정신적으로 지치는 경험이 일어난다면 지금 생각을 되돌리며 반추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반추를 스스로 멈추지 못한다면 정신적 에너지 소진은 계속 일어나게 되니까요.

     

에너지 소진의 끝은 다른 일을 할 힘 마저 없어지고 무의미, 무가치, 무기력을 불러옵니다. 바로 번아웃의 증상이죠. 세계건강기구 WHO는 번아웃을 정식 질병으로 보지 않지만 방치되면 우울, 불안, 공황 장애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어요. 반추 사고가 불러오는 감정적 소진이 번아웃 상태를 만들고 길어지면 정신 질병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연탄재는 다른 사람을 위해 하얗게 자신을 불태웠어요. 그 열정이 너무도 뜨겁고 고귀하기에 누구도 함부로 차지 못할 존재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반면, 반추 사고는 열정적으로 자신만 불태울 뿐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 사라지게 만들지요. 이왕이면 연탄재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생각의 방향은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흐르는 물에 둑을 쌓아도 옆으로 물길을 틀어 나가려면 물살의 힘이 강해야 하죠. 물살이 약하면 둑에 막혀 고이게 됩니다. 생각도 자기만의 힘이 있을 때 능동적으로 방향을 틀 수 있어요. 생각으로부터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컷’을 외칠 수 있다는 사람은 자긍심으로 내면 에너지가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반추를 알아차리고 제어할 수 있다면 HSP(Highly Sensitive Person)도 지금보다 덜 피곤하고 균형 잡힌 삶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잘 돌보는 것이 그 시작이고요.  

    

지금 한 가지 생각에 머물러 소처럼 되새김질하고 있다면 당연히 지칠 수밖에 없어요. 스스로 소모되길 자처하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소모되기를 멈추고 우리를 충전해야 할 차례입니다. 내 삶에 감독이 되어 ‘컷’을 외치고 새로운 장르로 바꾸는 힘을 키워보는 거예요.


반추 사고는 감정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고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만, 이 반복되는 생각을 끊어내고 다른 이야기로 만들 힘 또한 우리 안에 분명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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